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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미준 Jan 20. 2021

몸을 쓰는 취미가 좋더라

《취미가 Vol.2》 eBook 출간에 부쳐

전력으로 달리다 갑자기 정지하면 고꾸라진다. 사물에는 관성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정지상태의 관성을 체험하고 있다장기간 집콕 생활이 이어지자 몸이 완전히 집에 딱 달라붙어서 이제는 움직여지질 않는다. 집 밖으로 한 발 떼는 일에도 전보다 많은 에너지가 든다. 1년 전만 해도 내 작업실 하나 갖고 싶어서 공유 오피스를 알아볼 정도였는데, 운 좋게 작업실이 생긴 지금도 집안 거실 바닥에 침낭을 던져 놓고 그 속에 달팽이처럼 들어가 엎드려 글을 쓰고 있는 게 내 현실이다. 집 안에 있는 동안 속으로 '답답해'를 연신 부르짖으면서도 정작 밖으로 나가기 위한 노력은 하지 않는 집 찰거머리가 되었다.


예전에는 밖에 나가 자전거도 타고 산책도 하고 도서관에도 다녔다. 작년부터 도서관에는 갈 수 없게 되었다. 마스크를 쓰고 자전거를 타면 숨이 가빠서 자전거 타기는 포기했다. 그나마 공원을 가끔 산책하는 정도인데 요즘은 너무 춥다. 몸을 움직이는 게 왜 이리도 엄두가 안 날까. 혈기 왕성하던 시절에는 죽도를 들고 얼굴이 시뻘게지도록 바닥을 쿵쿵거리며 검도장을 누볐었건만, 만사가 귀찮은 요즘에 자주 하는 건 영화, 드라마 보는 것과 프리셀 카드게임이다.


나는 원래 장시간 집중이 어려워서 영화나 드라마를 즐겨 보는 편이 아니다. 좋은 작품을 만나면 그대로 빠져들어 몇 시간 내달리기도 하지만, 시작 버튼을 누르려면 단단히 각오를 해야 하기에 애초에 TV를 켜지 않는다. 장기간 집순이가 되는 바람에 예전보다는 감상 횟수가 그나마 늘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방영한 <퀸스 갬빗>까지 봤으니 전보다 자주 보는 건 확실하다.


프리셀 프로젝트. 압도적으로 아름다운 한국인의 승률을 보라


프리셀 카드 게임 비교적 최근에 다시 시작했다. 캔디 크러쉬며 루미큐브 같은 게임들을 다시 깔아서 하다가 어쩐지 금방 질려버렸다. 질리지 않는 고전 게임이 뭐가 있을까 생각하다 떠오른 것이 프리셀. 윈도 기본 프로그램에 탑재되어 있던 프리셀을 과거에 재미있게 했던 기억이 있다. 인터넷에 프리셀을 검색했더니 '프리셀 프로젝트'라는 페이지가 나왔다. 내가 요즘 거기에 빠져 있다. 게임에서 이기면 모눈종이 같은 게임 지도에 내 자리가 만들어진다. 지도상에서 원하는 자리를 선택해 그림 그리듯 판을 깨나갈 수도 있다. 게다가 매일매일 전 세계 이용자들의 순위가 매겨지고, 개인 기록까지 집계해준다. 내 승률은 45%. 아직은 승리 횟수보다 패배 횟수가 많고, 질 때마다 화가 나고, '난 왜 이리 머리가 나쁠까' 자학하지만 그러면서도 꾸역꾸역 또다시 카드 패를 펼친다.


그러나 이런 류의 중독성이 있는 것은 늘 허망하다. 역시 손을 쓰고 몸을 쓰는 게 좋다. 언젠가는 그 갈망이 찾아온다. 손으로 뭔가를 만지면서 그 사물의 거칠음과 매끈함, 차가움, 따뜻함, 딱딱함, 말랑말랑함을 직접 느껴보고 싶다는 갈망. 시청각에 의존하는 콘텐츠를 계속 마주하고 있다 보면 머리가 띵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 기분이 썩 좋지 않다. 그것들에게서는 카타르시스를 얻을 수 없다. 집 안에서 내 몸을 움직여 할 수 있는 취미... 뜨개질? 별로 관심 없고, 요리? 나에게 그건 중노동이다. 그렇다면 역시, 악기뿐이다.



한동안 악기를 먼지 쌓이도록 방치해 두었다. 활동하던 밴드도 해체되었고, 연주보다 감상이 더 좋은 요즘이다. 금방 싫증 내는 성미 탓이기도 하다. 어려우면 포기한다. 그래서 끝까지 연주하지 못하고 때려치운 곡들도 많다. 나와 남편은 함께 했던 8인조 밴드가 해체된 후 악기를 거의 장식품 취급하며 지냈다. 다시 기타를 꺼내고 베이스를 꺼내게 된 계기는 엉뚱하게도 나에게 들어온 원고 청탁이었다.


작가들의 취미를 다룬 전자책을 시리즈로 출간하는 출판사 '에이플랫'으로부터 연락을 받고 나서 내 취미에 관해 어떤 글을 써야 하나 고민했다. 여러 취미가 있지만 역시 나는 음악이다. 투고할 원고를 쓰고 악기를 꺼내 책에 실을 사진을 찍는 동안, 잊고 지냈던 흥미의 불꽃이 팍 튀었다. "여보, 우리 둘이서 밴드 할까?" 그 말에 남편은 당장 친구에게서 기타 이펙터를 빌려왔다. 다시 악기를 품에 안았다. 어느 주말, 우리가 한때 즐겨 들었던 록 음악을 리스트로 만들어 틀어놓고 남편은 베이스를, 나는 기타를 신나게 잡아 뜯었다. 곡을 정해서 합을 맞추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원곡에 오버랩하는 게 전부였지만, 정신 차리고 보니 두 시간이 지나 있었다.

《취미가 Vol.2》 참여작가들의 취미 내공이 상당해서 나는 그만 기가 죽고 말았네


관심 있는 사람에게 꼭 한 번은 이렇게 물어보지 않는가.

"취미가 뭐예요?"

나는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곤란해했었다. 잘하지도 못하는데 감히 취미라 할 수 있나 말이다. 잘하지 못하면 할 줄 안다고 말하지 말자는 식이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런 사고방식이 꽤나 고리타분하고 삭막하게 느껴졌다. 직업도 아니고 취미로 하는 건데 좀 어설프면 어떠냐고, 내가 즐거우면 그걸로 된 거라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러자 그동안 열심히 연습하지 않았던 것에 대한 죄책감이 덜어졌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악기 연주도, 프리셀도, 당구도, 노래 부르기도 참 어설프기 짝이 없는 실력이지만 그 모든 건 나를 즐겁게 한다. 일 년에 한 번 손댈지언정 나에겐 소중한 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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