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사랑받고 싶다면, 이 직업에 뛰어들지 마라’
지난달 18일 MBC 기자와 윤석열 대통령 사이 언쟁을 두고 여전히 말이 나오고 있습니다. 해당 사건이 발생하고 며칠 후 이와 관련해 글을 쓸까 하다 너무 지난 얘기 아닌가 싶어 말았는데요, 얼마 전(11월30일) 한겨레 칼럼(MBC 기자는 ‘난동’을 부렸는가?)에도 이번 일에 관한 글이 올라왔습니다. 여전히 이슈라는 얘기겠죠.
이 사건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크게 두 가지 측면에서 비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기자 질문이 무례하다'이고, 다른 하나는 '슬리퍼를 신은 게 무례하다'입니다. 이러나저러나 결국, "저 기자 대통령 앞에서 참 예의가 없다"라는 말이겠죠.
무례하지 않은 질문이란 무엇일까요? 이번 사건으로 '헬렌 토머스' 기자가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50년간 백악관 출입 기자였던 그는 '권력자에게는 거친 질문이 무례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조지 부시를 "내가 경험한 최악의 대통령"이라 뒷담한 사실이 알려져, 3년간 조지 부시에 의해 백악관 출입 금지를 당한 그가, 출입 금지 조치가 풀린 첫날 했던 질문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헬런 토마스는 조지 부시 대통령에게 "당신의 이라크 침공 결정은 수천 명의 미국인과 이라크인의 죽음을 초래했고 미국인과 이라크인들에게 평생의 상처를 입혔다"라며 전쟁을 벌인 이유를 꼬치꼬치 물었습니다. 3년 만에 헬렌 토마스를 마주한 조지 부시는 그날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오바마는 2013년 7월20일 헬렌 토머스가 사망한 직후 “토머스 기자는 정치 지도자들의 책임을 추궁하는 냉정한 질문을 통해 민주주의가 가장 잘 구현될 수 있다는 강한 신념을 가진 인물”이라고 평했다. 사진은 헬렌 토머스의 2009년 8월4일 89번째 생일날 백악관. (사진=Flickr)
헬런 토마스의 또 다른 명언이 있습니다. ‘당신이 사랑받고 싶다면, 이 직업에 뛰어들지 마라’입니다. 기자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말일 겁니다. 실제 헬런 토마스는 자신이 역대 미 대통령들에게 질문을 던진 일화들을 이야기하며 기자가 되고 싶은 젊은이들에게 이런 충고를 했다고 합니다. MBC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과 설전을 벌인 기자가 보도한 <대통령 나토순방에 민간인이 동행…1호기까지 탑승?>을 두고 우수상을 시상했다고 합니다. 보도에 따르면 해당 기자에 대해 '성실한 근무 자세와 적극적이고 비판적인 기자정신으로 타 기자들의 모범이 됐다'고 하네요. 헬런 토마스가 실현한 '기자정신'과 MBC가 말하는 '기자정신'이 다른 것 같지는 않습니다.
'슬리퍼 논란'도 짚어봅니다. 저는 법원 출입 기자로 법원 내 기자실로 출근합니다. 출입처가 정해진 기자들은 보통 기자실에 머뭅니다. 그곳에 가방, 텀블러 등 개인용품을 두고 재판 등 취재 현장으로 갈 때는 노트북만 들고 갑니다. 저는 기자실 내에서는 발 편한 슬리퍼를 신고, 재판에 들어갈 땐 구두로 갈아신습니다.
하지만 때로 갑자기 어떤 사건이 터졌고, 그곳에 갈 때는 구두로 갈아신어야 한다는 경황이 없습니다. 촌각을 다투는 일이니, 나가기 바쁜 거죠. 이는 대다수 기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사건이 터졌을 때, 기자가 누군가에게 보이는 행색을 고민해야 할까요? 아니면 사건을 고민해야 할까요? 제가 독자(국민)의 눈을 대신한다고 생각한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게 무엇인지 분명해집니다. 물론 정식 만찬과 같은 시각과 장소가 정해진 곳에서 TPO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또 다른 얘기일 수도 있겠죠.
슬리퍼 논란과 관련해서 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이 페이스북에 쓴 글(<기자의 연대 그리고 예의>)을 공유합니다. "기자 출신 정치인들이 MBC 기자의 예의를 운운하는 것에 저 역시 분노했습니다. 그 매체는 기자들에게 슬리퍼 신지 말라고 가르쳤나요? 저는 “회사 밖에서 취재원을 만나면 네가 한국일보를 대표하는 것이니 주눅 들지 말고 당당히 질문 해라”는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 고위직이라고 눈치 보지 말고 취재 똑바로 하라는 취지입니다."
*참고
<MBC 기자는 ‘난동’을 부렸는가?>임재성 변호사·사회학자
https://www.hani.co.kr/arti/opinion/column/1069472.html?fromMobile
<기자의 연대 그리고 예의>김희원 한국일보 논설위원
https://www.facebook.com/heewon.kim.94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