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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마라 Nov 17. 2019

열정을 담아 이직한 스타트업은 왜 망했는가

내가 선택한 스타트업이 빠르게 무너진 이유


첫 직장을 5년 가까이 다녔다. 직장인이라는 역할에 익숙해지느라 마음을 쏟던 시간이 지나자 슬슬 남들처럼 이직을 고민했다. 그간 했던 업무를 활용해 스타트업에서 일해보고 싶다고 마음의 방향을 정한 뒤 2주쯤 지났을까. 몇 달 전 퇴사한 옆 팀 팀장님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본인이 이직한 스타트업에 함께 하지 않겠냐고.

 
회사는 이제 막 서비스 오픈을 앞두고 있는 IT커머스로, BM(business model)이 특허를 얻어 독점 경쟁력 있었을 뿐 아니라 서비스 오픈 전임에도 투자를 꽤나 많이 받은 주머니 두둑한 스타트업이었다. 서비스 오픈 전 입사한 멤버들에게는 스톡옵션까지 준다고 하니 이런 비전 있는 스타트업에 몸 담지 않으면 바보인 것 같았다. 마침 이직을 한다면 스타트업이라고 생각했던 찰나 스타트업 이직 제안이 오다니! 운명이다!


그 운명 같았던 스타트업을 1년 3개월 만에 퇴사했다. 정확히 퇴사의 마음을 정한 건 1년이 안된 세월이었고 5개월쯤 온몸과 정신이 아플 때까지 버티다 퇴사할 수 있었다.
 

나의 열정을 담았던, 비전 있던 스타트업은 이렇게 망해갔다. 


 1. 신입보다는 경력이 많은 직원으로 채우려 했다.
위에 말한 대로 서비스 오픈 전부터 BM만으로도 투자를 많이 받았던 (나름) 부자 스타트업이었다. BM에 자신이 있었던 만큼 사업을 빠르게 성장시키고자 했고, 그 방법으로 IT/커머스 업계의 날고 긴다는 시니어들을 고용했다. 팀장 이상의 임원들은 업계 1,2위의 대기업 팀장급을 높은 연봉으로 불러들인 경우였다. 대표와의 트러블로 누군가 퇴사하면 그다음은 그보다 더 높은 연봉의 팀장을 불러들이고, 또 퇴사하면 그 보다 더 높은 연봉의 업계에서 이름 날린 팀장이나 임원을 부르는 방식이었다. 대표는 높은 연봉의 경력자가 서비스 대박을 만들어줄 거라 기대했다.
 
그러다 보니 실무를 할 직원보다 지시하는 리더의 수가 더 많을 지경이었다.
총 30명 정도의 인원 중 1-2년 차 혹은 신입이라곤 아르바이트생 3명(그 마저도 명문대만 뽑았더랬다) 정규직 2,3명 정도에 그쳤고 5-6년 차가 10명쯤 그리고 나머지 15명은 40대의 시니어였다. 생각해보라. 전 직원 30명의 스타트업에서 절반이 팀장 또는 C레벨의 직책을 달고 있는 모습을.
 


 2. 섣부른 정치가 회사를 병들게 했다.
대표는 서비스의 대단한 청사진을 그렸고 끝없이 강조했다. 그 청사진에 희망을 가지고 업계 1,2위 기업의 팀장급이 이직을 했다. 아직 서비스가 오픈도 하기 전이고 수익화하기도 전인데 회사가 성공하는 건 당연한 전제인 것처럼 여겼다. 그러고 나니 자연스럽게 시니어들 간의 세력다툼, 주식 다툼, 팀원 확보 다툼이 일어났다. 웃긴 일이다. 직원 300명도 아니고 30명의 회사에서.
 
남의 팀 업무는 쉽게 깎아내렸고 대표를 구슬려 별도로 주요 프로젝트를 손에 얻어냈다. 마음에 드는 팀원은 조용히 불러내 현 팀장이 얼마나 무능력하며 팀 이동을 할 경우 어떤 베네핏을 줄지를 속닥였다. 우습게도 수익 1원 내지 못한 스타트업인데 서비스를 성공시키려는 노력보다 성공했을 때의 이익을 챙기는 노력이 우선 되었다.
 


3. 회사는 투명성을 잃어가기 시작했다.
대표는 30명 규모의 회사에서 공통의 목소리를 내기보다 개별로 대화했다. 함께 담배를 피우는 자리나 식사자리, 특히 저녁 시간 회의실로 불러내 해줬으면 하는 일을 말하고 타 직원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험담까지 해가며 특별히 기대하고 있으니 잘해달라. 네가 원하는건 모든 서포트해줄거다. 하고 비밀 커뮤니케이션을 했다. 개인에게 특별한 미션을 줌으로써 책임감과 동기부여를 주고자 하는 어리석은 방법이었다.
그런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얼마 시간이 지나지 않아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A한테 이거 따로 해보라고 했다던데, B에게 거액의 비용 승인을 별도로 해줬다던데, C에게는 인센티브를 줬다던데, D가 팀장들보다 주식을 더 받기로 했다던데!
 
직원들의 관심사는 이제 '누가 몰래 대표를 통해 이익을 어떻게 얻었는가'였다.  반대로 말하면 대표와 개별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회사 절차나 프로세스 혹은 조직의 반대 없이 쉽게 원하는 바를 얻을 수 있었다. 업무를 열심히 하는 것보다 저녁 시간 회의실에서의 개별 토크 또는 식사자리를 만들어내는 게 더 효과적이었다.  
 


4. 결국, 가장 큰 문제는 대표에게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문제는 대표에게 있었다. 그는 뚜렷한 방법 혹은 방향은 제시하지 못하지만 청사진만은 확고했다.  그는 청사진으로 가기 위한 스텝을 나누어 구상하지 않고  눈뜨면 짠! 하고 꿈꾸는 청사진을 만들어낼 팀원을 필요로 했다. 청사진에 도달하기 위한 그 어떤 단계별 전략도, 실제 케이스 만들어와도 모두 반대했다. 단계별이 아닌 쨘! 하고 청사진을 만들어 내길 바랬기 때문이다. 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 말인지 모르겠지만 실제 그러했다
 
데이터를 바탕으로 한 설득, 경험을 통한 회유, 직원 단체 의견을 모은 교섭, 이대로면 서비스가 6개월 내 망할 거라는 협박도 소용없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아니, 절대 바뀌지 않는다.
세 달이 멀다 하고 대표를 상대로 쿠데타와 대거 퇴사가 일어났다. 유능한 사업팀장, 꿋꿋이 해냈던 개발팀장 모두 질색하고 퇴사했다. 그럴 때마다 더 높은 연봉의 사람으로 교체될 뿐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높은 연봉과 화려한 경력의 새로운 팀장, CSO, CTO를 뽑아도 소용이 없었다.
 
대표는 그 비싸고 유능한 직원을 뽑아놓고 결국은 책에 의존했기 때문이다.
'0원으로 마케팅하기라는 실리콘벨리 베스트셀러를 읽었는데.. 그런 혁신적인 방안으로 마케팅을 해야지, 투자금에 기대서 비용을 태우는 마케팅을 하는 건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번 주에 하기로 했던 그 마케팅은 일단 접고..! 비용 없이 마케팅할 수 있는 혁신방안을 다시 고민해보세요'
 
  

일 년을 채우지 못하고 퇴사를 다짐했다.
퇴사한 뒤 6개월쯤 지났을 땐 나와 함께 일했던 모두가 떠났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로 대체되었다. 하지만 1년을 못 채우고 결국 도메인 문을 닫았다. 아는 사람이 모두 퇴사했기에 자세한 소식을 들을 방법은 없었지만 어떻게 도메인 종료까지 가게 되었을지는 뻔히 그려졌다.




결국 도메인을 닫고 말았다





서비스의 성공을 위해서는 수많은 요소가 필요하지만 스타트업의 성공은 BM, 투자, 비전보다 "사람"이다. 대기업보다 대표나 직원 단 한 명이 회사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내가 몸담았던 열정의 스타트업은 그렇게 CEO RISK로 인해 무너져 내렸다.


이 글을 관심 있게 읽었을 스타트업 업계 종사자나 스타트업으로의 이직을 마음에 둔 사람, 혹은 경영을 고민하는 미래의 CEO에게 가장 신경 써야 할 부분은 '사람과 조직'이라고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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