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4월, 무미건조하던 인간이 욕망으로 들끓었을 때
스토리움 한 줄 공모 기간이 돌아왔다. 나로 하여금 '성공하고 싶다'는 욕망을 들끓게 해준 이벤트가 있은 지 벌써 1년이 지났다는 뜻이 된다. 그동안 무슨 일이 있었느냐에 대해 회고하기 시작하면 큰 성과가 없어 우울에 빠질 것이 뻔하므로, 그 대신, 1년 전 이맘때의 기대감과 열정을 복기하고자 한다.
23년 스토리움 한 줄 공모 때 제출한 작품은 이미 애저녁에 시놉시스와 1-2부 대본을 완성했었다. 마침 공모전을 알게 되었고 분량도 적은 편이라서 하루만에 신청 후 잊고 살았는데, 내 기억에 장려상을 받아 스타벅스 5만 원을 받았던 것 같다. 당시에도 나의 강점은 반짝이는 아이디어요, 약점은 스토리를 이어나가는 섬세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어쩌면 될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는 했지만, 정말 될 줄은 몰랐다. 누군가에는 별 것 아닌 장려상, 소소한 기프티콘이겠지만, 생각해 보면 나에게는 글을 쓰고 처음 받는 상이었다. 심지어 장려상에게도 오프라인 미팅에 참석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너무 광고 같은 느낌ㅋㅋ) 작가 카페에서 여러 후기를 살펴 보니, 미팅은 말 그대로 미팅일뿐이라서 가벼운 분위기인지라 작품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나누지 못하니까 큰 기대는 걸지 말라고 했다. 실제로, 시놉시스조차 읽고 오지 않는 제작사가 있었다는 후기도 있었고.
하지만 경제학과를 전공하고, 입시학원을 비롯해 시식코너 알바를 전전하며 경리 및 총무로서 회사를 몇 년 근무한 경험밖에 없는 나로서는, 다시 말해 집에 틀어박혀 혼자 글을 쓰기만 하는 나에게 제작진을 대면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대단한 이벤트였다. 게다가 운이 좋게도, 미팅을 신청해 준 제작사가 많아서 나는 연이틀 연속으로 미팅에 참가하게 됐다. 들뜬 마음에, 가족들에게 대뜸 '나 서울 가!!!!' 하며 외쳤던 때가 생각난다. ㅎㅎ
지방에 사는 사람으로서 차편을 마련하는 게 급선무였다. 더군다나 서울은 평일이든 주말이든 자리가 부족했는데, 문제는 목요일 미팅인데 월요일까지도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 차표가 거의 매진이라서 초조한 와중에서 결국 스토리움 담당자님께 전화로 문의드렸다. 그렇게 미팅 첫 시작 시간과 마지막 시간을 안내 받았고, 실시간으로 새로고침을 한 덕분에 취소표를 예매할 수 있었다. ㄷㄷㄷ 그 이후에는 미팅 준비에 매진했다.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일단 줄거리, 시놉시스를 포함한 기획안을 인쇄했다. 아무리 스토리움 사이트에서 내 작품의 시놉시스를 읽고 오더라도 줄거리를 기억하기는 어려울 거라 생각했다. 그렇다고 '나중에 메일로 다시 보내드리겠습니다'하기는 좀 그렇고, 또 그 자리에서 핸드폰으로 줄거리를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집에는 프린터가 없어서 인터넷으로 주문했고, 택배를 받아 스테이플러로 찝었다. 더 잘 보이고 싶어서 중학생 때 도덕 선생님께서 알려주신 제본 테이프도 붙였다.
명함은 스토리움에서 준비해 주시는데, 필명 외에는 정보가 없기도 해서 내가 따로 팠다. ㅋㅋ 진짜 명함을 제작하지는 않았고, 간단히 "내 실명+연락처+메일 주소+스토리움에 등록된 내 작품 정보 QR"을 담아 시놉시스 맨 첫 페이지에 첨부했다. QR을 만드는 방법은 정말 쉬운데, 난이도에 비해 정성스럽게 보이니까 다른 분들도 시도해보면 좋겠다. (네이버에 검색하면 알아서 해준다)
그때 알았다.
나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 회사를 다닐 땐 내가 부여받을 일도 (마지못해) 하고, 쉬는 시간이 생기더라도 (마음이 불편해서) 일거리를 찾아내서 하기는 하지만, 스스로 열정적이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었다. 열심히 산다는 생각도 물론 해본 적 없었고. 하지만 미팅 준비는 어떤가? 한 타임 당 고작 20분(맞나?)에 불과한 미팅을 위해 열과 성을 다하는 스스로가 낯설 지경이었다.
순조롭게 진행되면 재미가 없는 법. 흥미진진한 서울 나들이 겸 인생 첫 제작사 미팅을 위해 몸이 아프기 시작했다....내 동의도 없이... 목요일 아침에 출발해야 했는데, 수요일 아침 댓바람부터 아팠다. 머리가 핑 돌면서 어지럽더니, 온 세상이 빙글빙글 돌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그런 어지럼증은 살면서 처음이었는데, 일어나서 토를 한 세 번 정도하니, 웬만하면 병원을 안 가는 사람이지만 미팅을 위해 병원으로 나섰다. 차로 5분 이동 후,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토해주고, 약받고 토하고, 의사의 진단이 영 신통하지 않아 다른 병원으로 이동 후 또 토하고, 집으로 출발하기 전에 한 번 토했다. ㅎ
다음날 아침. 다행히 구토는 멈췄지만, 하루를 쫄쫄 굶을 상태로 기차에 몸을 실었다. 노트북 가방이 따로 없어서 숄더백에 노트북을 넣고 갔는데, 그날따라 그게 그렇게 무거웠다. 마치 10kg짜리 쌀 한 포대처럼 느껴졌더랬지.
미팅 마지막 날까지도 나는 밥을 전혀 먹지 못했다. 이틀 후 집으로 돌아와서 확인해 보니, 서울에 있는 48시간 동안 겨우 2만 원을 썼더라. 메모지 산 것+마지막 날 당이 너무 떨어져서 도넛 하나 사먹은 것이 전부였다.ㅋㅋ
아침에 스토리움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팅하기로 한 제작사 중 한 분이 코로나 진단을 받아 미팅이 취소됐다는 문자였다. 해서, 첫날에 3팀, 둘쨋날에 2팀 총 5팀을 만나기로 결정됐다.
코엑스에 도착한 후, 건물과 박람회 규모에 놀란 상태로 길을 찾아 헤맸다. 난 길치니까! 생각보다 한가운데에 자리잡은 미팅장에 감격하면서 입구로 들어서자 스토리움 직원분들이 친절하게 맞아주셨다. 웰컴 키트처럼 명함+명찰+핸드폰 보조 배터리+쿠키를 주셨는데, 기대하지 않았는데 정말 맛있었다. 쿠키는 그다음날도 주셨다.. 매우 중요...
미팅 장소는 대학교 강의실 느낌이었다. 커다란 파티션으로 공간을 분리해 두었고, 왼쪽은 작가 대기실, 오른쪽은 미팅장으로 쓰고 있었다. 분위기 자체는 엄숙하다-에 가까웠는데, 나는 미팅 시간이 연달아 붙어 있기도 해서 다른 작가님들과 담소를 나눌 기회도 없긴 했다.
운영 방식은, 대기실에서 기다리다가 미리 정해준 미팅 시간이 되면 바로 옆으로 건너가서 딱 20분 대화하는 시스템이었다. 20분이 끝나면 옆테이블로 옮겨 약속된 제작사와 대화하거나 혹은 다시 대기실로 돌아와서 다음 미팅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시간이 끝나기 5분 전, 2분 전마다 마이크로 말씀해 주시기 때문에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됐고, 진행이 상당히 깔끔했다.
그래서, 결과는?
1번 제작사는 이름만 들어도 아는 대기업이었다. 그래서 왜 내가 간택되었는지 의아했는데, 미팅하러 오신 담당자께서 작품의 등장인물 이름을 기억하고 계셔서 상당히 감동했다. 심지어 내 필명을 검색하고 다른 작품도 줄거리를 읽어 보고 오신 상태였는데, 나만큼 미팅에 대비해주신 것 같아 정말 감사했다. 이후에 또 서울에서 한 번 더 뵐 기회가 있었는데, 계약까지는 연결되지 않았다.
2번 제작사에서는 각본 겸 연출을 맡는 감독님이 직접 와주셨다. 필모그래피 중에는 아주아주 유명한 작품이 있어서 마찬가지로 대면할 때 설렜는데, 내 작품의 줄거리를 짚어 주셔서 또 한 번 감동했다. 1번 제작사가 작가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미팅에 참여했다면, 2번 제작사는 좀 더 작품 자체를 보고 참여한 느낌이었다. 이곳에서는 내가 지방에 산다는 점을 배려해서 이후 온라인 미팅을 가졌는데, 화상 회의에서는 오히려 작가의 성향에 대한 질문이 많았다. 하지만 작품 개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여기는 내가 까인 게 맞는 것 같다. ㅠㅠ 긴장해서 그런지 평소보다 살짝 업된 상태였기 때문에 좀 아쉬움이 남는다.
나머지 제작사의 미팅은 실망한 부분이 있다. 작품의 주제, 장르조차 확인하지 않고 오셨기 때문에 '왜 나와 미팅을 하고 싶다고 하셨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무엇보다 나는 20분 동안 내 작품의 모든 것을 보여주기 위해 최선의 준비를 하고 왔기 때문에 1분 1초가 소중했는데, 한 제작사에서 5분 정도 지각을 했다. 덕분에 목 마른 사람은 나뿐이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왜 이런 간극이 벌어졌는지 생각해 보니, 스토리움에 스토리를 등록할 때 '희망하는 컨텐츠' 같은 항목이 있는데, 해당하는 컨텐츠로 신청한 작가는 일단 모두 만나보려고 나온 것 같았다. 예를 들어 A 작품을 1지망은 영화, 2지망은 뮤지컬로 만들고 싶다고 신청했다면, 뮤지컬 제작사인 B 기업이 A작품을 컨택해 보는 것이다. 가능한 많은 작가를 만나서 대화해보는 것이 목적인 것 같았는데, 그래서 더욱이 내가 가져간 시놉시스와 대본을 꼭 읽고 싶게 만드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사전에 염두에 두고 간 여러 후기 처럼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가를 찾으러 오는 이유가 가장 큰 것 같다. 실제로, 다른 출간작으로는 어떤 게 있는지, 어떤 성격의 글을 잘 쓰는지, 글을 쓰게 된 계기를 묻는 분도 계셨다. 그래서 한 번의 미팅으로 계약을 따내고자 했던 작가는 실망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스토리움 미팅은 정말 좋은 기회다. 나도 평생 만날 수 없을 줄 알았던 제작사와 그 이후로 두 번이나 더 만났으니까.
"하지만 계약 따낸 건 없잖아?"
-라고 한다면 할 말은 없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 햇병아리 드라마 작가 지망생으로서 그때 느꼈던 건, '아... 내 고집을 100%담아서 드라마화하는 건 정말 어렵겠구나'였다. 길게 말하진 못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그 작품은 1차적으로는 소설로 출간하기로 마음 먹었다. 이것 또한 도전하기를 두려워하는 내 무의식 때문일 수도 있으니 경계하고는 있다.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고도 까이느니 차라리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게 낫다는 게으름... 항상 조심해야 한다.)
작가 카페에서 한 선배님께서 말씀하시길, 미팅은 시작에 불과하다고 했다. 거기서 출발해 피드백을 받으며 작품을 개발하고 개발하고 또 개발하면 비로소 계약할 수 있고 프로 생활을 시작하는 거라고.
만약 그때 대본이 더 준비가 되어 있었더라면, 내가 더 뒷심이 있었다면, 드라마 작가가 반드시 되겠다는 확신이 있었다면, 어쩌면 결과가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결과적으로... 23년 스토리움 미팅으로 당장 얻은 결실은 없었지만, 성공하고 싶다는 열망이 커졌다. 그 작품을 완성하고 싶었고, 보여주고 싶었고, 유명해지고 싶었다. 원래 내가 터무니 없는 야망을 품는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토록 선명하고 강렬했던 적이 없었다. 나는 항상 실패하지 않는 삶을 꿈꾸던 사람이었는데, 나 또한 성공을 갈망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강력한 원동력이 되었다. 지금도 그렇고.
그러니까 스토리움이든 다른 공모전이든, 어떤 크고 작은 기회라도 잡아보길 바란다. 일단 잡아 두면, 나의 노력에 따라 결정적인 기회로 바꿀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