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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Oct 12. 2021

이대로 20대를 졸업할 수 있을까

서른을 바라보며

2012년 지구가 멸망할 줄 알았다.


때는 바야흐로 지구종말론이 유행처럼 퍼져나갔을 때, 나는 철석같이 2012년에 지구가 멸망하는 줄 알았다. 2012년은 스무 살, 성인이 되는 해라 지구가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대학 준비를 할 필요도, 성인이 될 수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부끄럽지만, 나는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이 믿음을 떨쳐버리지 못해 점점 비관론자가 되었고 미래에 대해 깊이 있게 고민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그러나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아무리 봐도 세상은 너무나 멀쩡했고 운석이 떨어지지 않는 이상 세상이 갑자기 멸망할 일은 없을 것 같았다. 제3차 세계대전은 무슨 북한과 남한마저 2012년 전에 전쟁 날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2012년이 되어도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을 거라는 확신이 들고 나서야 비로소 대학 입시와 성인이 될 준비에 돌입할 수 있었다. 

출처: Photo by Greg Rakozy on Unsplash

그렇게 2012년이 되었고, 나는 스무 살이 되었다.


매일 놀고먹는 대학생

대학생이 되어 월, 화, 수에 수업을 몰아 듣고선 목, 금을 하루가 멀다 하고 놀러 다니느라 바쁜 나에게 아버지는 이렇게 뼈 때리는 수식어를 붙여주셨다. 매일 놀고먹는 대학생. 그것이 2012년의 나의 삶이었고, 어른이 된 첫 해의 내 모습이었다.


스무 살의 2012년은 정말 빠르게 지나갔다. 때마침 버스커버스커가 1집 앨범을 통해 '벚꽃엔딩'을 세상에 선보였던 때라 1년간은 늘 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신입생, 그것도 여대 일 학년이다 보니 선배들과 동기들 간의 교류가 그리워 술자리에 매일같이 출석하다가 학과 학생회에 들어가게 되었다. 전공 공부와 학과 생활을 정신없이 보내다 보니 어느새 일 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되는 것이 걱정되어 신입생 티를 벗어던진 뒤부터는 대외활동이나 교환학생 등을 하며 세상 밖으로 나갈 준비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렇게 내 20대 초반은 경험들로 인생을 꽉꽉 채우느라 한숨 돌릴 틈 없이 빠르게 지나갔다. 


(벚꽃엔딩은 언제나 명곡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tXV7dfvSefo )


넘어지고 또 넘어지던 20대 중반


20대 초반을 그렇게 빠르게 흘려보내고 나서 20대 중반이 되었을 때 나는 여전히 취업할 생각 없는 시조새에 지나지 않았다. 여대 특성상 군입대나 장기 휴학을 하지 않는 이상 4학년이라도 보통 스트레이트 졸업이라 그리 나이가 많지 않은데, 나는 홍보대행사에서 인턴을 하고 호주를 다녀오느라 예상치 못하게 학교의 왕언니가 되어 있었다. 졸업할 때쯤엔 이미 친구들이 졸업했거나 아니면 휴학을 한 상태여서 시조새로서 쓸쓸하게 학교를 졸업했고 취업에 '취'자도 모른 채 무작정 취업 준비에 돌입해야 했다. 


취업하지 못하면 절에 들어가서 살겠다는 생각으로 아침에 눈을 뜨면 오전에는 공고가 뜨는 거의 모든 회사에 입사 지원서를 보내고, 보내고 나면 인적성 공부를 하고 외출이라곤 면접 스터디가 다인 삶을 사느라 스물다섯 살을 보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스물여섯 살 직장을 얻게 되었고 직업을 갖게 되었다. 물론 군대를 다녀오느라 사회 진출이 늦은 남자분들과 비교하자면 빠른 편이었겠지만, 적어도 내 나이대의 그것도 동기들 사이에서 나는 시작이 약간은 늦은 편에 속했었다.

출처: 내 사진첩(자유롭게 돌아다니던 그 시절)

마침내 맞이하게 된 20대 후반


대학시절이 성인이 되고 나서 겪게 되는 1회 차 인생이라면, 직장생활은 2회 차 인생이었다. 사회생활을 해봤자 아르바이트 몇 번, 인턴 6개월이 다였던 내게 회사의 모든 순간은 긴장의 연속이었고 마음의 부담이었다. 정말 입사하고 1년간은 매일 퇴근하면 그날 있었던 일을 떠올리고 자책하며 감정이 북받쳐 저녁마다 울었던 것 같다. 더 잘 해내지 못하는 내가 한심하고 업무 능력이 기대 이하라는 생각에 다른 동료들에게 피해를 끼친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자책하지 말고 나 자신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나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다독였어야 했는데,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렇게 직장생활에 적응하고자 노력하며 3년을 보냈고 어느새 스물여덟이 되었다. 내가 꿈꿨던 이십 대 후반의 삶이 과연 이런 삶이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진로를 바꿔볼까 하는 생각에 언론고시도 LEET도 준비해봤지만 결국 내 엉덩이가 그리 무겁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 않았다. 

출처: 내사진첩(첫 출근하던 날 받은 이것저것)

이대로 20대를 졸업할 수 없다면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는 동안 28살도 눈 깜짝할 사이에 지나가고 있었다. 스물아홉이 다가오기 몇 달 전,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사람들을 만나는 시간보다 홀로 상념에 빠지는 시간이 점점 늘어나면서 이대로 20대를 졸업한다면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을까 싶었다. 정답은 정해져 있었다. 'NO'였다. 


20대를 잘 졸업하기 위해 그러면 지금부터 무엇을 해야 할까 싶었다. 문득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삶을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들자마자 그러기 위해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일까 고민해봤고 일단 부모님으로부터 독립해서 일상의 모든 시간을 온전히 나를 위해 써보자고 결론을 냈다. 누군가는 차라리 퇴사를 하는 게 어떻겠냐고 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 나는 그리 위험한 일은 하고 싶지 않았고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앞으로 어떤 인생을 살고 싶은지 우선 독립하고 나서 고민해보자고 생각했다. 


올해는 나를 위해 살았고, 살아보려 합니다


그렇게 독립을 했고 독립한 뒤부터는 철저하게 나를 위한 삶을 살았고, 살아오고 있는 중이다. 돈보다 중요한 게 시간이라는 것도, 내가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보다 혼자만의 사색을 즐기는 것을 좋아한다는 사실도 모두 독립하고 나서 알게 된 일종의 교훈과도 같았다. 독립하고 나서 태어나 지금까지 읽은 것보다 더 많은 책을 읽었고 글쓰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며 강의와 모임을 열게 되었고 기회가 닿아 이것저것 여러 사이드 프로젝트를 경험할 수 있었다. 


20대 후반은 정말 많은 고민과 생각을 하게 되는 시기다. 20대가 끝나 30대가 되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 할지, 결혼은 언제 할지 직장은 옮길지 말지, 어떻게 안정된 삶을 살지 아니면 도전하는 삶을 살지 짧으면 마흔까지 앞으로 10년, 길면 인생 전반에 대한 방향과 목적을 정하고 계획해야 하는 시기이다. 이 시기를 나는 어떻게 보내면서 20대를 졸업할 준비를 했는지, 이 시기를 보내는 독자분들을 위해 약간 먼저 경험해본 사람으로서 내 경험을 들려주고자 한다.


독자분들이 나보다도 더 20대를 잘 마무리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30대를 출발할 수 있길 바라며, 앞으로 쓰게 될 글을 독자분들께서 관심을 갖고 읽어주신다면 그것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것 같다. 

출처: Photo by Daniel Mingook Kim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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