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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수돌 Oct 27. 2022

서른에서 서른 하나 사이

여전히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대학 동기들과 얼마 전 청첩장 모임을 가졌다. 7명 남짓 모인 친구들 중 누구는 작년에 결혼했으며, 또 누구는 몇 달 전에 결혼해 뱃속에 생명을 품고 있었으며, 또 누구는 몇 달 뒤 새로운 시작을 기대하고 있었다. 앳된 얼굴의 소녀였던 우리들은 어느새 한 직장에서, 한 가정에서 자신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는 그런 어른이 되어있었다. 여전히 어른이 되려면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우리는 깨달을 틈도 없이 어른이 되어버린 우리 자신에게 놀라며 추억을 회상하고 웃고 떠들어댔다. 


10년 전 학교 앞 술집에서 어색하게 인사하며 앞으로의 대학생활에 대한 기대감으로 부풀어 오른 채 자기소개를 했었다. 여대에서 암울하게 보내다가는 젊은 날은 다 갈 거라고 언니들이 카톡방에서 선착순으로 모집하는 미팅에도 빠짐없이 나가기도 했었지. 미팅을 함께 나가며 우리는 그냥 대학 동기에서 한 뼘은 더 친해졌고 서로의 파트너가 마음에 드네, 안 드네 하고 깔깔거리며 웃어대기도 했었다. 


그렇게 날 것 같았던 우리의 스무 살 시절에도 나름대로 고민이란 것이 있었다. 그러나 당시의 고민은 지금의 내가 느끼기엔 고민이라기보다는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고민보다는 선택에 가까운, 그러나 그때는 나름 심각했던 문제들. 

학점을 잘 받기 위해 어떤 수업을 선택해야 할지, 처음 사귄 남자 친구와 놀러 갈 때 어떤 옷을 입어야 할지, 미팅에 나가서 마음에 드는 이성은 어떻게 만나야 할지, 어떤 동아리에 들어야 할지 정도.


그러나 청첩장 모임에서 만난 우리는 어른의 고민을 하고 있었다. 내게 있어 어른의 고민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매우 좁음을 의미한다. 아니 선택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수준이다. 

이직을 고민하는 일은, 내가 이직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능력이 좋아야 하고 부지런해야 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 누군가 나를 선택해줘야 하는 것을 뜻한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업무가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고민하더라도 직무 변경이 자유롭지 않은 회사라면 내가 내 마음대로 업무를 바꿀 수 없으니 이 또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결혼도, 연애도, 심지어 그냥 숨을 쉬고 살아가는 일도. 

어른이 된다는 것은 '내 인생에 대해 스스로 책임질 줄 아는 는 사람이 된다.'라는 멋진 말이 아니라,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그만큼 줄어든다. 고로 내가 고민한다고 해서 쉽게 해결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다는 과정'이 정답이지 않을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기껏해야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내일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해야 하나, 내일 퇴근 후에 친구들과 만날까. 정도이지 않을까. 그마저도 친구들이 바쁘면 내가 만남을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선택당해야만 하는 것일 수 있다. 


스무 살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적어도 서른의 나이를 마주하게 되면 그때보다는 더 성숙한 사람이 되어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때의 내게 서른은 충분히 어른이 될 수 있는, 아니 어쩌면 충분히 인생을 즐길 수 있을 정도의 '늙은' 나이라 생각했던 것일 수도 있다. 무엇이 되었든, 또 어떻게 되었든 서른이 되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스스로 만족감을 느낄 수 있을 거라 착각했다. 


그러나 서른은 여전히 어른이면서도 어른이 아닌 나이였다. 죽을 때까지 지금의 나는 누군가의 어른일 것 같지만, 나는 여전히 다른 사람을 보고 내가 어른이 아닐 거라 생각할 줄은 스무 살의 나는, 그리고 우리는 꿈에도 몰랐다. 


스무 살의 나와 서른 살의 나는 뭐가 달라진 지 정말 모르겠다. 밤늦게까지 잠도 안 자고 영화를 보고 있는 내게 얼른 자라고 잔소리를 하는 엄마의 모습은 그대로지만, 소리의 크기와 목소리에 담긴 생기가 10년 전에 비해 줄어든 것을 느꼈을 때 나는 이제야 비로소 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를 깨닫게 된다. 

친구들과 10년 전의 추억을 꺼내며 소녀처럼 깔깔거리고 웃으면서도 당장 내일 출근하는 것을 걱정할 때, 어른이 되어서 우리는 치열하게 살고 있구나를 실감한다. 


서른에서 서른 하나로 가는 길목에서 드디어 어른이 되어가고 있구나를 느끼고 있으면서도 정말이지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며 불안정한 스무 살이 차라리 안정적인 서른 살보다 더 나은 것이구나를 이제야 깨닫는 나는, 그리고 우리는 이제 어디로 흘러가게 될까. 마흔의 나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서른의 나를 보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도 "서른이면 젊다. 그걸 모르는 넌 멍청이"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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