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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지 Oct 23. 2024

좋아하는 것들

나는 이런 사람이야

 오늘은 내가 좋아하는 것들에 대해 써볼까.

 음, 나는, 엽서를 모으는 작은 취미가 있어. 마른 몸도 좋아하고. 멍 때리는 것도 좋아해. 일주일에 반나절 정도는 그저 멍만 때리고 싶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그 무의미가 좋아. 달달한 간식도 좋아하지. 팥 앙금과 설탕 코팅, 그리고 크림. 빵을 사면 포인트같은 얘네만 골라 먹는 악습관이 있어. 프로틴 쿠키를 사서 그 안의 초코칩만 골라먹어. 두부 도넛을 사서 겉의 설탕 코팅만 떼어먹는다니까? 항상 그러는 건 아니고. 아, 바삭바삭한 튀김도 좋아해. 치킨을 먹을 때도 살보다는 겉 껍질과 시즈닝을 더 좋아해. 그래서 최애 튀김은 닭껍질 튀김이야. 버릴 구석 없이 쫀득 바삭 짭짤하잖아. 선명한 것들을 좋아해. 성수의 만동제과나 뺑드에코 같은. 눈을 시리게 하지 않으면서도 빛나는 것들이 참 귀하더라고. 얼마나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를 지나왔을까 가늠해보게 돼.


 스트레스를 받을 땐 노래를 들으며 페달을 밟는 편이야. 요즘에는 외국 힙합을 들어. 808 베이스가 좋더라고. 그 시간 만큼은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어. 힙합의 딱 떨어지는 선명함도 좋아. 함부로 타협하지 않을 것 같달까. 가을의 선선한 공기도 좋아하고, 겨울의 움츠러드는 추위도 좋아해. 정확히 말하면 추위를 피하려 껴입은 옷의 부드러운 촉감이 좋아. 이 움추림이 나를 더 깊어지게 하는 것 같아. 추운 날 먹는 따뜻한 차 한 잔을 더 좋아하고. 긴장을 확 풀어준달까. 찝찝함을 남기지 않는 닭가슴살같은 음식을 좋아해. 약간의 다이어트 강박 때문이겠지만, 뭐 어때. 덕분에 식습관이 건강해져서 좋아.


 오래 잊고 지내곤 하지만, 한 낮의 여유와 햇살도 좋아해. 동네로는 안국과 그 옆의 서촌, 북촌. 한국에 산다면 그 곳에 살고 싶어. 주말엔 경복궁 산책과 정독 도서관 나들이를 가는 거지. 헤리티지와 새로운 감각이 적절히 섞인 게 좋아. 빛 바래도 늘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줏대를 본받고 싶고, 그러면서도 소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는 게 멋있어. 대놓고 부촌인 곳은 정이 잘 안 가더라고. 왜일까. 돈이 더 많아지면 생각이 달라질까? 그러게.


 시간이 특별한 날 스스로를 위해 사는 케이크도 좋아해. 크리스마스와 생일 케이크는 꼭 챙기는 편이야. 작은 조각으로라도. 먹방 유튜브도 좋아해. 가오니나 먹어조 채널을 주로 봐. 아무 의미 없이 함께 보내는 시간을 좋아해. 굳이, 싶지만 기꺼이 하는 것들. 목적 없이 만나서 맛있는 음식으로 서로의 삶에 응원을 건네는 시간, 얼마나 소중해. 스스로를 위해 치열하게 자문자답하는 시간도 좋아해. 지금처럼. 내가 가장 솔직해지고 편안해지는 시간이야. 그 과정에서 나를 새롭게 알게 되기도 해.


 좋아하는 걸 되새기는 순간도 참 소중하지. 그런 순간은 접어두고 여러번 펼쳐 읽고 싶어. 좋아하는 건 떠올리기만 해도 행복해져. 좋아하는 것 앞에서는 주책없이 떠드는 철딱서니가 된 것 같아. 좋아서 좀처럼 놓아주고 싶지 않아져. 어, 이러면 안되는데. 괜찮아. 내가 책임질 수 있는 것들만 좋아할게. 시간이 지나며 취향이 정리되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몰라. 하나의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쓰는 것도 좋아해. 이전까지는 어떻게 그리 짧은 글만 썼는지 몰라. 나 다시 수다쟁이가 된 걸까. 사유가 꼬리에 꼬리를 물어 하나의 기승전결로 마무리되는 게 좋아. 비로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준비가 된 것 같아서. 그 주제에 푹 빠져 헤엄치다 와도 괜찮을 것 같아서. 그래서 이 글도 꽤 길어졌네.


 좋아하는 것들이 많이 줄어들었어. 이제 면이나 밥은 잘 안 먹고, 빵과 고기만 먹게 돼. 좋아하는 걸 찾아다니기 보다, 내 공간에 들이는 편이야. 그걸 오래 가까이 하며 지내. 소비가 미덕인 자본주의에 역행하는 사람 같아. 삶이 더 간결해지는 중이겠지. 가벼워지는 중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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