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 10kg 넘는 배터리를 충전해줘야 해.
베트남에 처음 왔을 땐, 아버지는 이미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고 계셨다.
로컬학교에 우리 남매를 보낼 정도로 강하게 크길 바라신 아버지는, 당연하게도 우리 스스로 기동성을 갖추길 원하셨다.
하지만 오빠와 나는 자전거조차 타지 못했기 때문에, 자전거부터 배우기 시작했다.
베트남에서 오토바이는 삶 그 자체에 가까웠기에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못 타는 사람을 찾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집 앞 작은 골목에서 낑낑거리며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우던 우리를 옆집 작은 옷 공장 사람들이 낄낄거리며 구경했다. 그게 상당히 부끄러웠고 자존심이 상했다.
그 당시 전기 자전거는 막 새로 나온 혁신적인 탈 것이었다. 자전거처럼 생겼지만, 뒷부분에 전기로 충전하는 거대한 배터리가 달려있다. 그 배터리는 어린 내가 혼자 들기 힘들 정도로 무거웠는데, 아마 7-10kg는 되었던 거 같다.
자전거치고는 높은 안장에 올라타서 발판에 발을 다소곳이 올려두고, 핸들을 당기면 지잉- 소리와 함께 최대 시속 30km까지 달릴 수 있었다. 수동으로 페달을 굴러서도 타고 다닐 수 있어서, 페달도 같이 달려있었다. 핸들을 당겨서 자동으로 나아갈 때는 얌전히 모아 올린 다리 옆으로 허공을 도는 페달이 모양새를 꽤나 우습게 만들었다.
주로 오빠가 나를 뒤에 태우고 다녔는데, 베트남에서 뒷자리의 의무이자 역할이 있다. 바로 손깜빡이를 해줘야 한다. 처음에는 뒤에 탄 나보고 손을 꺾을 방향으로 낮게 내밀어 휙휙 저으라는 말에 장난을 치는 건가 싶었다. 수동 도르래 손잡이로 차 창문은 올려봤지만, 이렇게 손으로 깜빡이를 켜야 한다는 건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한창 부끄러울 게 많았던 사춘기 어린 나이에 나는 그게 너무 부끄러웠다. 마치 학교에서 억지로 발표하게 시켜서 들어야만 하는 손처럼 모두를 주목시키는 것 같아서 싫었다.
하지만 그 손깜빡이를 해주지 않으면 정말 쏟아지는 오토바이들을 뚫고 차선을 변경하는 게 굉장히 힘들었다. 손깜빡이는 모두가 아는 바디 랑귀지로 뒤에서 그 손을 본다면 자연스럽게 우리의 방향을 방해하지 않고 잘 피해 갔다.
베트남에 와서 그랩 바이크를 탔을 때, 센스 있게 꺽는 방향으로 손깜빡이를 해준다면 바로 현지인 바이브를 풍길 수 있다. 지금 나는 손깜빡이는 물론이요, 운전자의 시야까지 확보해 주는 훌륭한 뒷좌석 승객으로 성장했다.
그렇다면 승차감은 좋았을까? 최대 시속 30km라는 건 생각보다 빠르다. 뒷자리 안장은 상당히 낮은 위치였는데, 작은 구덩이라도 덜컹이며 지나칠 때는 무겁고 딱딱한 전기 자전거의 무게와 함께 충격이 2배로 전해졌다. 엉덩이 꼬리뼈에서부터 허리까지 뻐근한 충격이 전해졌다.
앞자리에서 운전하는 오빠는 아마 얼마나 아팠는지 몰랐을 것 같다. 알았다면 그렇게 잽싸게 달리지 않았겠지. 그러니 가히 승차감이 좋았다고는 말 못 하겠다. 지금은 더 좋은 승차감과 성능의 전기 자전거가 많은 걸로 안다.
전기 자전거는 자전거보다 빨랐고, 오토바이보다 느렸다. 그 어중간한 속도감이 베트남 도로 위에서는 오히려 위험했다. 전기 자전거가 막 등장하던 시기라서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움직임으로 다가왔다. 차라리 자전거처럼 천천히 달리면 비켜 가지만, 전기 자전거는 애매하게 빠르게 달리니 자칫 잘 못하면 사고가 나기 쉬웠다.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어느 날, 오빠가 비에 흠뻑 젖은 상태로 옆에는 안절부절못하는 친구와 함께 집에 돌아왔다.
해가 막 졌을 이른 저녁시간에 친구들과 집으로 돌아오던 오빠가 사고가 났던 거다. 앞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의 폭우 속에서 큰 교차로에서 무언가를 피하려다가 미끄러져 넘어진 것으로 기억한다.
넘어진 상태의 오빠를 못 보고 차가 지나갈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하니 식은땀이 났다. 크게 다치지 않았고, 옆에 도와줄 친구가 함께 있었다는 건 정말 다행이었다. 당시 충격이 너무 강했는지, 지금 오빠는 그 사고를 기억하지 못한다.
우리는 전기 자전거로 학교를 다니고, 농구를 하러 가고, 어머니를 태우고 시장을 다녀오고, 주변 쇼핑몰로 놀러 갔다. 우리가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함께해 준 전기 자전거는 역할을 톡톡히 해준 뒤 배터리의 수명이 줄어들며 우리와 작별인사를 할 수밖에 없었다.
좀 더 큰 뒤로는 전기자전거 모양새가 빠진다고 싫다고 외면했던 게 지금 생각해 보면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고마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