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에서 온 남매의 서울 검정고시 학원 적응기
1탄에서 풀었 듯, 나와 오빠는 베트남에서 단둘이 한국으로 건너와 고입 검정고시 시험을 잘 치렀고, 합격했다. 이리저리 독학으로 치른 고입검정고시와 다르게 대입 검정고시는 절대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그 당시, 1년에 검정고시는 2번 4월과 8월에 열렸기에 다다음 시험을 노리고 그 기간 동안 한국에서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학원에 부모님이 미리 전화를 해두었고, 우리는 사람들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신도림역에서 나와 학원을 찾아갔다. 교제를 받고, 등록을 했는데 학원에 흔하지 않은 어린 나이의 우리를 보며 신기해하면서도 특히 더 어린 내가 합격을 할 수 있을지 걱정하셨다. 학원의 커리큘럼은 3개월 정도로 기억한다.
학원은 여느 고시 강의에 나오는 교실처럼 넓은 공간에 많은 책상이 다다닥 붙어있었다. 안 그래도 낯선 한국인데, 낯선 많은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인 강의실의 첫 모습에 나는 많이 긴장했었다. 다양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크게 2가지 그룹으로 나뉘었는데 뒤늦게라도 시험을 통해서 졸업자격을 받고 싶어 공부하시는 어머님들과 우리보다 3-5살 정도 많아 보이는 중퇴를 한 언니, 오빠들이 있었다.
그중에서도 베트남에서 온 우리 남매는 여러모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베트남이란 나라는 어떤지, 왜 갔는지, 왜 이리 어린 나이에 검정고시를 보고 있는 건지 질문이 쏟아졌다.
정확히 무슨 과목 선생님이셨는지 기억은 안 나지만, 젊은 남자선생님으로 재치 있는 입담으로 인기가 많은 선생님이 계셨다. 재미있는 분이셨지만, 한 타깃을 정해서 웃음거리로 만드는 스타일의 개그를 치셔서 간혹 불편함을 느끼곤 했다. 우리 남매의 이야기를 모두가 알만큼 유명해졌을 때, 수업을 하다가 우리에게 질문을 하셨다. 궁금한 듯, 비꼬는 듯 아슬아슬 선을 타는 말투와 표정으로 우리에게 물었다.
"아, 베트남... 하아...
그... 베트남은... 어때요?"
그 말에는 다양한 의미가 담겨있다는 걸 우리는 알았다. 선생님의 질문과 주변에서 작게 웃는 소리를 들으며 나와 같은 불편함을 느낀 오빠는 논리 정연하게 베트남에 대한 잘못된 상식이나 편견에 대해서 반박하려고 입을 떼었다. 그때 소심한 내 입에서 잔뜩 거들먹거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가 툭 튀어나왔다.
더워요~
그 한마디에 강의실에 모든 사람들이 크게 웃었다. 모두가 웃으니 그 선생님도 재밌다는 듯 받아치며 가볍게 넘어가셨다. 웃음거리가 되어버렸다고 오빠는 나에게 성을 냈지만, 나는 지금 생각해도 그만큼 잘 받아칠 수 있는 대답은 없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그 사건(?) 이후로 간간히 인사만 어색히 주고받던 같은 반 어머님들과 언니들이 적극적으로 다가오셨다. 어머님들은 싸 오시는 간식을 나눠주시고 챙겨주셨으며, 무서워 보였던 언니들은 내가 귀엽다며 친구처럼 대해줬다.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낯선 학원에, 한국에 적응해 나가며 검정고시를 준비했다.
친절하시던 매니저 선생님이 나의 모의고사 성적표를 전해주며 한 말이다. 대입 검정고시를 보기엔 어렸던 나를 유독 신경 써주셨는데, 아니나 다를까 시험이 코 앞으로 다가왔을 때 본 모의고사에서 나는 합격 한참 못 미치는 처참한 점수를 받았다.
선생님의 진심으로 안타까워하시는 표정을 보니 정말 큰일이 났다는 생각에 시험을 몇 주 남겨두고 공부에 더 매달렸다. 혼자서 부담감을 견디지 못하고 엉엉 울다가도 악으로 깡으로 공부를 했다.
부모님과 오빠는 나에게 한 번에 합격한다는 건 대단한 거라고, 합격하지 못하는 건 내가 못나서가 아니라고 부담감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셨다. 그런 말에 안심이 되면서도 욕심이 났다.
결국 중2로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초연함을 느끼며 시험을 치렀고, 남은 기간 한국에서 자유를 누리고 베트남으로 돌아왔다.
평균점수가 높게 나온 건 아니었지만 합격점은 충분히 넘어선 점수였다. 이전의 고입 검정고시 합격 때보다 부모님은 더 놀란 기색이었고, 기뻐하셨다.
항상 똑똑한 오빠를 보며 스스로가 똑똑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내가 처음으로 느껴보는 자신감이었고 성취감이었다. 그렇게 나는 15살 중학교 2학년 때 고입, 대입검정고시를 패스했다. 대학에 들어갈 수 있는 졸업자격이 생겼다.
오히려 큰 목표를 빠르게 이루고 나니 다소 허탈하기까지 했다. 이다음은 어디로 향할까? 오히려 턱 하니 주어진 자유 속에 선택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