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살, 첫 한국마트 알바에서 생긴 일
20살 대학생이 되어서 처음 알바를 했던 한국마트에 대한 저번글에 이어서, 이번에는 잊히지 않고 대대손손 물려줘야 마땅한 몽글몽글 꿈같았던 잘생긴 경비친구에게 고백받았던 썰을 풀어보려고 한다.
일단 베트남에서 자라며 17년이란 긴 시간 동안, 내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잘생긴 베트남 사람은 그 경비 친구가 유일하다. 물론 베트남에도 멋진 남자가 많다. 하지만 어디든 그렇듯, 오래 기억에 남을 정도의 인상 깊은 잘생김은 흔한 게 아니다.
한국마트 알바를 한 지 2-3개월 되었을 때다. 여느 때와 같이 활기차게 문을 열고 인사하며 들어갔다. 하지만 그날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보인건 마치 사바나 초원에서 기린이 물을 마시기 위해서 다리를 쭉 뻗어 고개를 숙인 모습처럼 기다란 다리를 가진 무언가가 고개를 숙여 문 앞에 있는 주문 봉지 속 영수증을 확인하고 있었다. 내 우렁찬 인사소리에 화들짝 놀란 그는 나를 수상한 사람을 보는 듯이 인상을 쓰면서 쳐다보았다.
헐렁한 경비복을 입은 경비 아저씨가 아닌 모델 같은 기럭지에 배우 같은 얼굴을 가진 내 또래 경비원의 갑작스러운 등장에 적잖이 당황했다. 상황 파악이 안 돼서 캐셔 언니들을 바라보니 모두가 놀란 내 표정을 살피며 숨죽여 키득이고 있었다. 말하지 않았지만 모두가 "잘생겼지?"라고 묻는 것 같았다. 우리 마트로 배정된 경비가 바뀐 모양이었다.
평소와 다름없던 하루가 새로운 인물의 등장으로 술렁였다. 퇴근 후, 집에 갈 때 시간이 늦어서 나와 같은 방향으로 가는 언니가 항상 태워다 주었는데, 언니가 갑자기 이제부터 그 친구 뒤에 타고 가라고 말했다.
나는 잘생긴 사람 앞에서는 딱딱하게 굳어버린다. 친근한 배 나온 아저씨들이 아닌 잘생긴 또래는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배운 바가 없다. 심장이 두근두근 뛰었지만, 그렇지 않은 척하느라 쭈뼛되었는데, 그것도 처음 보는 사람 뒤에 타고 가라니... 강하게 저항하며 걸어가려고 했지만, 언니들은 부끄러워하는 나를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밀어붙였다. 그 친구도 그렇게 달가워하지 않는 것 같아서 미안했고, 더 곤욕스러웠다. 어색하고 불편한 상황 속에서 난감했던 첫 만남이 마무리되었고, 다시는 그의 뒤에 타고 가는 날은 없었다.
그 경비친구를 '탄'이라는 가명으로 부르겠다. '탄'이 얼마나 잘생겼는지 설명해 보겠다. 얼굴은 대략 배우 주원의 슬림한 버전으로 동글동글 귀여운 느낌을 주는 큰 눈이 인상적이다. 키도 엄청 컸는데 얼굴이 작고 다리가 길어서 비율이 좋은 모델 같았다. 그리고 성격 또한 책임감이 강하고 성실해서 맡은 바 외의 일도 열심히 했고 의무를 다 했다. 커다란 눈은 항상 불이 켜져 있듯이 빛나고 있었다. 가끔 한적한 시간에 주머니에 손을 꽂아 넣고, 가게를 가로질러 휘적휘적 걸어 다니는 그 모습은 흡사 런웨이를 걷는 모델을 보는 것 같았다.(진짜다.)
'탄'을 본 한국손님들은 '경비가 왜 이렇게 잘 생겼냐', '깜짝 놀랐다', '배우냐, 모델이냐' 묻기도 했고, 어떤 손님은 인물이 좋다며 같이 사업을 구상해보고 싶다는(?) 수상한 제안까지 하려고 했다. 심지어 내가 봐도 여성스럽고 이쁜 젊은 한국여자 손님은 '탄'의 페이스북을 물어봐서 번역기를 돌려가면서 연락을 하고 계속 찾아오기까지 했다. 그런 사람들의 열띤 반응에도 그는 흐트러짐 없이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다.
'탄'의 진지한 성격에 더 다가가기 어렵다고 느꼈고 친해지는 것은 포기한 채로 그렇게 함께 일한 지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내가 주문을 받고 큰 소리로 "아쿠아피나 1리터 1박스!"라고 소리치면 듣고 있던 '탄'은 잽싸게 2층으로 계단을 두 칸씩 올라가서 물을 짊어지고 내려왔다. 굳이 말을 걸거나 부르지 않아도 눈치껏 척척 도와주던 덕분에 대화 없이도 손발이 맞아갔다.
나는 6개월 동안 항상 그래왔듯이 한 마리의 원숭이처럼 활개 쳤고, 언니들과 장난치며 열심히 일했다. 6개월이 지나는 동안 '탄'과 말을 해본 적이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항상 이글거리는 눈으로 살짝 인상을 쓰고 있던 '탄'이 어느 날 퇴근하는 나에게 다가와 말을 걸었다.
"오늘은 내가 데려다줘도 될까?"
다음 이야기는 2탄으로 돌아오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