색채로 완성된 두 영화
작가님들은 영화관에서 영화를 본 적이 언제이신가요?
봉준호 감독님의 영화 미키 17 사이에서 꾸준히 관객들을 모으고 있는 영화 중
아카데미에서 각색상을 받은 에드워드 버거 감독의 『콘클라베(Conclave,2024)』를 보고 왔습니다.
영화적 의미나 종교적 이해관계가 아니라 영화의 시각적 미학을 대형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서 오랜만에 영화관을 찾았습니다.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영상미에 감탄하면서, 내 머릿속에는 자연스럽게 독특한 색채 미학과 시각적 스타일의 감독 웨스 앤더슨(Wes Anderson)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The Grand Budapest Hotel, 2014)이 떠올랐습니다.
우선 두 영화의 주인공이 우연히도 바로 랄프 파인즈(Ralph Fiennes)여서 자연스럽게 두 영화를 연결 짓고 보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두 영화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합니다.
『콘클라베』는 바티칸의 엄숙한 콘클라베(교황 선출 회의)를 배경으로 한 진중한 정치 드라마로 어두운 색조와
강한 명암 대비를 통해 중세 유럽과 바티칸이라는 신성한 공간의 분위기를 사실적으로 재현하였습니다.
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가상의 호텔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우아하고 경쾌한 코미디로 파스텔 톤의 색상이 동유럽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호텔 문화를 시각적으로 강조하며, 몽환적이고 동화적인 분위기를 형성합니다.
콘클라베의 의미와 영화
‘콘클라베(Conclave)’는 라틴어 cum clave에서 유래한 단어로, “열쇠로 잠근”이라는 뜻입니다.
교황 선출 과정이 장기간 지속되면서 정치적 개입과 갈등이 심화되자, 새 교황 선출이 너무 지연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추기경들을 한 장소에 가두고, 일정한 시간 내에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교황 선출회의가 콘클라베입니다.
현재 콘클라베는 전 세계의 추기경들이 참여해 비밀 투표 방식으로 새 교황을 선출하고 그중 투표에서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받은 후보가 교황으로 선출됩니다.
새로운 교황이 확정되면 ‘하얀 연기’(fumata bianca)가, 부결되면 ‘검은 연기’(fumata nera)가 바티칸의 굴뚝에서 피어오르는데 이는 영화나 뉴스에서 한 번은 들어보셨을 겁니다.
영화 『콘클라베』는 이러한 콘클라베를 이야기의 중심에서 한 교황의 선종 후 새로운 교황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정치적 긴장과 권력 다툼, 그리고 인간적인 갈등을 조명합니다.
배경은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이며, 이야기는 교황이 서거한 후 전 세계 추기경들이 로마에 집결하면서 시작됩니다.
각 추기경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를 밀거나, 반대하는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교묘한 정치적 움직임을 보이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내부의 음모와 자신의 신앙 사이에서 갈등하며, 결국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신비로운 엄숙함 vs. 동화 같은 화려함: 색채로 표현된 공간
『콘클라베』에서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은 철저히 어두운 색조로 채워져 있습니다.
회색빛 대리석 벽, 짙은 갈색 나무 가구, 낮게 깔린 조명은
신성한 공간의 폐쇄성과 권위, 그리고 정치적 긴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여기에 검은색과 붉은색이 더해지며, 검은 수도복과 붉은 추기경복은 성직자들의 신념과 야망, 그리고 그들 사이의 권력 다툼을 상징하는 듯합니다.
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정반대의 색채 전략을 취합니다.
이 영화의 호텔은 마치 동화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파스텔톤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분홍빛 외관, 보라색 유니폼, 파란색과 금색의 세련된 장식까지이 모든 색감은 현실보다는 기억 속에 존재하는 이상화된 공간을 만듭니다.
한 영화는 색을 최소화하고, 다른 영화는 색을 극대화합니다.
하지만 두 작품 모두 색채를 통해 자신만의 완벽한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습니다.
긴장감과 감정의 색채적 표현
『콘클라베』에서 색채는 감정을 억제하는 역할을 합니다.
어두운 그림자 속에서 진행되는 콘클라베 회의는 신앙과 정치의 충돌을 시각적으로 형상화합니다.
특히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는 극적입니다.
붉은색은 권력과 희생을 의미하며, 흰색은 순결과 신성함을 상징합니다
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에서 색채는 감정을 더욱 강조하는 역할을 합니다.
웨스 앤더슨 감독은 파스텔톤과 따뜻한 색조를 사용하여 낭만적이고 유쾌한 분위기를 조성합니다.
이처럼 『콘클라베』는 색을 절제함으로써 긴장과 신비로움을 강조하고,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색을 풍부하게 사용함으로써 감정을 증폭시킵니다.
같은 색채의 도구가 어떻게 정반대의 효과를 만들어내는지를 보여줍니다.
공간과 색채로 구축된 두 개의 세계
『콘클라베』는 역사적 사실성을 반영한 색채 연출을 통해 신앙과 권력의 충돌을 담아냅니다.
영화 속 공간은 실제 바티칸과 중세 유럽의 건축과 색감을 충실히 재현하며, 차갑고 엄숙한 분위기를 통해 콘클라베라는 폐쇄적인 공간을 강조합니다.
반면,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은 색채로 이상화된 공간을 창조합니다.
호텔이라는 장소는 현실적이면서도 비현실적이며, 웨스 앤더슨 특유의 대칭적인 구도와
색채의 조합은 마치 한 편의 일러스트를 보는 듯한 느낌을 줍니다.
하나는 색채를 최소화하여 현실을 강조하고, 하나는 색채를 극대화하여 환상을 강조합니다.
그러나 두 영화 모두 색채를 통해 완벽하게 구축된 공간을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색의 미학적 힘이 얼마나 강력한지를 증명합니다.
색채는 기억을 만든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종종 특정 장면을 떠올릴 때 색을 먼저 기억하는 편입니다.
『콘클라베』의 붉은색과 흰색의 대비, 이번 영화의 색채 미학을 고려할 때 가장 아름다운 장면입니다.
콘클라베 회의 이후에 추기경들이 이동하는 장면인데 붉은 자줏빛과 흰색이 공간의 구도와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따뜻한 핑크와 블루의 조화, 이 영화에서도 영화적 색채미가 아름다워 좋아하는 씬입니다.
이 색채들은 단순한 미적 요소를 넘어,
영화의 감정과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달하는 강렬한 기억으로 남습니다.
『콘클라베』를 보며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이 떠오른 이유는 단순히 색채 때문만이 아닙니다.
두 영화 모두 색을 통해 하나의 독립적인 세계를 구축하고, 그 세계를 통해 인간의 욕망과 감정을 이야기합니다.
결국, 색채는 기억을 만듭니다.
『콘클라베』의 엄숙한 어둠과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의 화려한 색감은,
두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를 더욱 깊이 각인시키는 강력한 요소였습니다.
미술관을 찾을 때처럼, 저는 영화를 보면서도 색채의 힘을 다시금 실감했습니다.
그리고 이 두 작품은, 완전히 다른 색채의 미학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색을 통해 얼마나 강렬한 인상을 남길 수 있는지를 보여준 최고의 영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