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와 K-브랜드 사이

브랜드 서사는 어디로 갈까

K-드라마, K-팝, K-뷰티, K-푸드, K-게임… 세계는 지금 ‘K’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한류는 더 이상 일시적인 트렌드가 아니라 글로벌 콘텐츠 산업과 소비문화의 중심축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질문이 남습니다.
“K-브랜드는 과연 이 흐름 속에서 어떤 정체성과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가?”

단순히 ‘한류 따라가기’만으로는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K-브랜드는 이제 문화적 파급력을 넘어, 지속 가능한 브랜드 서사(Brand Narrative)를 구축해야 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1. 한류, 브랜드의 지름길이 아닌 출발점

한류는 분명 K-브랜드의 글로벌 진출을 가속화시킨 중요한 동력이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드라마와 예능 속 협찬(PPL)만으로도 제품이 입소문을 탔고, BTS나 블랙핑크 같은 글로벌 아티스트의 착용 한 번으로도 매출이 급등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릅니다.
한류는 더 이상 ‘지름길’이 아니라, 브랜드 서사를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K-뷰티의 재부상은 단순한 스타 마케팅이 아닌 브랜드 자체의 혁신적인 제품력과 서사 구조에 기반합니다. 2024년 한국 화장품 수출은 102억 달러로 전년 대비 20.6% 증가했으며, 특히 Anua, Biodance, Skin1004 등은 전통적 광고보다 SNS 기반 ‘성분 중심 콘텐츠’로 입소문을 얻었습니다.

미국 시장에서는 TIRTIR가 ‘물광 파운데이션’으로 알려졌지만, 단 3개였던 쉐이드 컬러를 최근 40개까지 확대하며 포용성과 다양성이라는 새로운 내러티브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한류 팬덤의 열기에만 의존하지 않고, 브랜드 철학 자체를 진화시킨 사례죠.


2. 소비자는 더 이상 ‘K’라는 이유만으로 지갑을 열지 않는다

글로벌 소비자는 더 이상 ‘한국 브랜드’라는 이유만으로 제품을 선택하지 않습니다. 특히 MZ세대와 알파세대는 브랜드의 태도와 철학을 소비합니다. 단순히 뮤직비디오나 드라마 감성을 따라 하는 콘텐츠는 진정성이 없다는 평가를 받고 외면당하죠.

루이비통이 2023년 서울 잠수교에서 개최한 ‘Pre-Fall 쇼’는 단순 협업이 아닌, 한류와 명품 브랜드가 문화적 프레임을 공유한 사례였습니다. 이는 명품조차도 한류를 일회성 유행이 아니라 전략적 파트너로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반면, 일부 K-브랜드는 여전히 문화 콘텐츠를 ‘빌리는’ 데 그치고 있습니다. 콘텐츠에 기생한 브랜드는 팬덤의 눈높이를 충족시키기 어렵고, 장기적인 브랜드 자산으로 축적되지 않습니다.


3. 브랜드가 문화가 되어야 한다: 세계관 중심 브랜드 전략

이제 브랜드는 단순히 한류 콘텐츠의 주변 요소가 아니라,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 콘텐츠가 되어야 합니다.

1) 브랜드 세계관 구축

대표적인 사례는 TAMBURINS입니다. 단순 향수 브랜드가 아닌, 브랜드 캠페인 전체가 하나의 예술 전시이자 단편 영화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광고조차 브랜드 철학을 ‘공간’과 ‘감각’으로 번역한 문화적 경험입니다.

또 다른 예로 ADER ERROR는 ‘정체성 없는 것들의 정체성’이라는 콘셉트를 내세우며 Z세대, 그리고 초국적 소비자들의 불확실한 정체성과 정서적으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브랜드가 존재 이유를 문화적 언어로 풀어내고 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2) K-정체성의 현대적 해석

예술과 전통을 연결한 K-패션도 주목할 만합니다.
HYEIN SEO, MINJUKIM 등은 한복과 전통 의복의 실루엣을 현대적으로 해석해 문화적 해상도를 높인 브랜드로 평가받고 있으며, 이는 단순히 ‘한국적 무드’에 그치지 않고 정체성에 기반한 글로벌 콘텐츠로 기능하고 있습니다.


4. 브랜드가 한류를 확장시키는 방식

이제는 브랜드가 한류를 ‘활용’하는 단계를 넘어서, 브랜드 자체가 한류를 확장시키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아시안계 여성 창업자들이 만든 K-푸드 기반 브랜드 Omsom은 단순한 한국식 소스를 파는 것이 아니라, ‘Asian American의 정체성과 가족의 기억’이라는 감정의 언어를 브랜드에 담았습니다. 그 결과로 주요 유통채널 입점은 물론, 콘텐츠 자체가 SNS에서 공유되는 브랜드가 되었죠.

이처럼 소비자와 감정적으로 이어지는 브랜드 서사는 더 강력합니다. 문화적 언어로 풀어낸 브랜드는 팬을 넘어 지지자를 만듭니다.


K-브랜드는 이제 어디로 갈 것인가?

한류는 강력한 파급력을 지닌 문화 자산입니다. 그러나 그 위에 얹힌 브랜드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지금 K-브랜드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다음과 같습니다:

콘텐츠를 따라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콘텐츠를 만드는 브랜드

K-컬처의 후광을 이용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K-컬처를 재해석하고 확장하는 브랜드

유명인에게 의존하는 브랜드가 아니라, 자신의 세계관과 철학으로 팬과 연결되는 브랜드

결국, 브랜드는 이야기입니다.
그 이야기가 진정성 있고, 문화적으로 깊이 있으며, 글로벌하게 번역 가능하다면 K-브랜드는 다음 시대의 중심이 될 수 있습니다.
지금이 바로 ‘한류 그 이후’를 준비할 시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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