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거두절미하고 글 제목에 대한 대답을 먼저 얘기하고 시작한다.
우리가 영어발음에 집착하는 이유는 ?
답은 허무할 정도로 단순하다. 우리가 영어를 못 알아듣기 때문이다.
알아듣질 못하니, 그 영어를 평가할 수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소리만 듣고 영어를 잘하는지 못하는지 판단을 해 버리는 경향이 있다.
원어민처럼 말하면 의례히 영어를 잘한다고 생각하고, 특히 우리가 표준으로 생각하고 있는 미국식 영어를 구사하면 무조건 좋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실 상 여러 가지 조건이 존재하지만) '좋은 발음 = 좋은 영어'라는 공식을 적용해 버린다.
과연, 우리나라의 평범한 사람들 중 영어를 듣고 말의 논리나 정보 등을 명확히 파악하며, 영어를 잘하는지 못 하는지 판단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아직 별로 없다.
잘 모르면 그럴 수도 있지..
그렇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잘못된 판단으로 큰 문제가 야기된다. 우리들의 영어 교육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잘못된 인식(좋은 발음 = 좋은 영어)으로 인해 우리가 추구하는 영어의 지향점에 왜곡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사실 상, 누군가 원어민식으로 발음을 하면 영어를 잘 못하는 사람들은 아래와 같이 칭찬한다.
오~ 영어 잘하는데~
(사실 상 전체적인 영어 소리 즉 리듬, 액센트, 인토네이션 및 발음 등 모두를 듣고 판단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이를 통칭해 '발음'이라고 표현한다)
이들에게 '멋져 보이는 영어'는 그다지 큰 경쟁력이 없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나 원어민들의 판단으로 제대로 된 영어를 구사해야 한다. 바로 글로벌 환경에서의 경쟁력 있는 영어를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그런 영어는 발음이 크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일단 발음만으로 영어의 실력을 판단할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정적인 결과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간단히 나열해 보자.
1. 진짜 경쟁력이 있는 영어가 무엇인지 왜곡되어져 영어교육 시장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간다. 예를 들어, 영어 교육계도 일종의 시장경제 논리가 적용되기 때문에 상품(영어교육 컨텐츠)이 소비자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어 진짜 영어실력과 상관없는 (겉멋만 추구하는) 컨텐츠들이 넘쳐나게 된다.
2. 이에 따라 소비자들도 혼란스러워하는 악순환이 발생한다(왜냐면 효과가 없으니까).
3. 때로는 실력 없는 원어민들이나 교포들마저 훌륭한 영어 선생님으로 비춰질 수 있고,
4. 일반적인 사람들은 심지어 어린이들이 쓰는 영어도 동경하게 된다.
5. 또한, 표준어가 존재하지도 않는 영어의 세계에 '영어 사대주의'가 생긴다. 일부 미국과 영국식 영어발음과 액센트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상한 영어로 취급한다. 이 문제도 꽤 심각하다('영어는 개소리'를 읽은 독자라면 왜 이런 말들을 하는지 더 잘 이해할 것이다).
이 외에도 나열하지 못한 여러 부작용이 발생한다(오늘은 여기까지만).
그러면 영어발음에 대해 어떤 시각을 가져야 하나?
영어를 구사할 때 발음은 무척 중요하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확한 발음은 정확한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발음에 대한 인지를 높임으로써, 즉 귀를 트임으로써 영어를 쉽게 받아들이게 하며 더 나아가 영어식 사고를 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우리는 '외국인'이라는 것이다. 발음을 바라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집단 구성원의 발음과, 외국인이 소리 내는 발음을 바라보는 관점인데, 이 둘은 도저히 같을 수가 없다.
우선 같은 나라 사람의 발음이 부정확하면 의사소통이 될지라도 무척 거슬린다. 심지어 좀 이상해 보인다. (그렇게 하면 안 되지만 솔직한 마음으로) 무시하고 싶어 진다. 왠지 머리도 나빠 보인다.
"말 좀 똑바로 해라!"
이렇게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외국인이 우리말을 할 때는, 발음을 바라보는 관점이 180도 바뀐다. 무척 관대해진다. 어쩌면 대견해 보이기도 한다. 한번 느껴보자. 아래의 영상은 27초짜리의 아주 짧은 동영상이다. 들어보자.
인터뷰를 하고 있는 박노자 교수의 한국말 발음은 어떤가?
어눌하다. 아니 외국인인 티가 팍팍 난다고 표현하는 것이 나을 것이다. 비록 일부 발음은 명쾌하지 않았지만 우리가 알아듣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어쩌면 여러분이 무의식적으로 귀를 쫑긋 세워줬을지 모른다(무의식적 배려).
그런데 박노자 교수의 한국어의 인터뷰 내용은 더 훌륭하다. 약간 요약을 하면..
한국사회도 이제 혈통중심에서 시민중심으로 국가 개념이 바뀌어야 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
우리말 정말 잘한다. 우리보다 우리말을 더 잘하는 것일지도 모른다(글은 더 잘 쓴다).
어느 누가 과연..
"어이~ 박노자 교수~ 한국어 발음을 그런 식으로 하면 안 된다네" 라고 할 것인가?
아무튼 박노자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강연도 하고 책도 쓰면서 돈도 많이 벌었을 것이다.
우리도 박노자 교수가 한국어를 하는 것처럼 영어를 구사하면 된다.
그게 경쟁력 있는 영어이다.
(필자는 이런 경쟁력 있는 영어에 대한 이야기에 대해 앞으로 계속해서 브런치에 글을 쓸 것이다.)
여전히 초보자들에게는 발음이 중요해 보일 순 있다
부정확한 발음 때문에 재미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영상을 자세히 들어보면, 박노자 교수가 인터뷰 도중 '저같은'이라는 말을 '조가튼'이라고 발음했다(못 믿겠으면 다시 듣기).
'저같은'이라는 말을 욕처럼 발음을 했다. 여러분 중 누가 그걸 인지했나? 대부분 모르고 지나갔다. 알고 나서는 기분 나빴는가? 아니다 오히려 지금 재미있어할 것이다.
이 포인트를 짚어내는 이유는 초보자들에게는 발음 하나하나가 중요한 순간도 여전히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상황을 하나 만들어보자.
외국인을 고용한 한국인 고용주가 외국인 직원들에게 아래와 같이 질문을 했다고 가정하자.
"새로운 직원을 더 뽑아야 하는데 어떤 사람을 뽑았으면 좋겠나?"
한 외국인 직원이 자신의 성실함을 표현하고 싶어서 '저같은'이라고 말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한국말이 아직 서툴러 '저같은'이라는 말 밖에 당장 떠오르지 않았다. 만약 이 상황에서 박노자 교수의 발음과 같이 '조가튼'이라고 대답을 했다면?
초보자들이 영어를 구사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한 단어의 발음을 제대로 내지 못하면 그 단어를 대신할 다른 의사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소통이 불가능할 때가 많다. 하지만 문장으로 말할 때는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의 중요성은 급격히 떨어진다.
특히 영어는 (다른 글에서 얘기했듯이) 정해진 문장구조를 가진 언어이기 때문에 앞뒤에 쓰이는 단어를 인지하기 더 쉬운 언어이다. 따라서 단어 하나하나의 발음의 중요성은 더 떨어진다. 그래서 영어는 더 다양한 발음과 액센트의 공존이 가능한 것이다. 인도 사람처럼 영어를 해도 영어문장의 구조에 익숙한 사람들(원어민들)은 그것을 알아듣는 것이다.
우리도 발음의 중요성에서 벗어나려면 빨리 영어 문장에 익숙해지면 된다.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티가 나는 발음(영어권 원어민이 아닌 발음)은 우리를 여러 측면에서 보호해 주고(여러분이 박노자 교수의 한국발음에 관대했던 것처럼), 오히려 영어를 공부해서 구사하는 사람으로 보여, 더 우수한 사람으로 보일 수 있다.
이렇듯 발음을 바라보는 관점을 조금 수정하면 여러 가지 혜택을 볼 수 있다.
1. 경쟁력 있는 영어가 무엇인지 쉽게 정의를 내릴 수 있게 되고,
2. 어린 자녀들의 영어교육에 대한 방향도 새롭게 세워볼 수 있고(예를 들어, 굳이 어릴 때부터 영어공부를 시키지 않아도 된다),
3. 청각적 지각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아무리 영어를 들어도 들리지 않는 사람들)도 영어공부를 얼마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도..
여전히 한국식 발음을 떠나는 노력은 필요하다
이에 대한 관점은 다른 글에서 제시하고자 한다.
궁금한 점들 댓글에 달아주시면, 답변을 드리거나 아예 새로운 글로 써 볼게요. 3월에 서점을 돌며 '영어는 개소리' 저자 강연회를 하니 직접 뵐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