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트위티 Tweety Nov 02. 2024

300번의 지원, 그리고 20번의 탈락 (2)

7.

취준 기간이 정말 그지 같은 또 한 가지 이유는 부모님의 연락이 두려워지기 때문이다.


나 같은 경우는 가족들이 모두 미국에 거주하고 있기 때문에, 현재 나의 이런 상황에 죄책감이 가중된다. 혼자서도 잘 살 수 있다고 자신감 있게 부모님을 설득하고 돌아온 한국인데, 5개월째 취업을 못하고 있다? 결국 내 선택이 맞았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도록 해야지 라며 동기부여가 되기도 하지만, 자랑스럽지 못한 딸이 된 것만 같다는 느낌에 엄청난 좌절을 안겨주기도 한다.

 

 

8.

취준기간이 길어지면 점점 마음이 조급해진다. 이럴수록 기준을 정해야 한다.


300이라는 숫자는 기간이 길어질수록 조급해진 내가 말 그대로 이력서를 '뿌려댄' 행위의 결과 이기도하다.


- 어떤 기준으로 회사를 고를 건지?

- 나는 지원한 회사의 product & service를 좋아하는지?

- 연봉과 복지 수준은? 이 정도 수준이면 만족할 수 있는지?

등.. 적어도 본인이 설정한 기준이 있어야 한다. 급하니까, 당장 들어가서 뭐라도 하려고 하기보다는, 그럴수록 잠시 멈춰 서서 나를 돌아보자.


그래도 여전히 조급한 마음이 든다면,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고 생각하자. 

 


9.

이렇게 말하는 나도 위에 언급한 걸 깨달은 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리고 취준 기간이 길어질수록 마치 세상이 나한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으이그, 여태 살면서 그걸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단 말이야? 이제라도 치열하게 고민해 봐라"라고 하는듯했다. 정말 힘든 시간이지만 취준이라는 건 누구나 겪는 과정이고, 이제라도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던 부분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었다. 거창하게 써놔서 마치 5개월간의 취준이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바꿔준 것 같지만 그것도 아니다.


난 여전히 매일 불안과 압박감 속에서 허덕이고 있고,

하루에도 몇 번씩 인생의 길을 잃어버린 것 같고,

내 선택이 옳은 선택이었나 의심스럽고,

그래서 무기력해졌다가 갑자기 엄청나게 희망찬 느낌이 들기도 한다.



10. 

또 한 가지. 정말 당연하지만 지키기 어려운 건 이떤 상황에서도 자신감을 갖자는 것이다.


반복되는 탈락에 자신감과 자존감은 바닥을 치고, 그러면 면접에서도 당당한 모습을 보여주기 어렵다. 하지만 면접관들은 귀신같이 그런 나를 꿰뚫어 본다. 그래서 나는 취준기간이 길어질수록 나의 멘탈관리에 더 힘썼다.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와 독서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모임에 참석해 사람들과 교류하며 혼자 고립되지 않으려고 했다.


무엇보다 면접관들에게 내가 걸어온 길을 해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과거 내가 내린 선택들에 대해 당당하고 담담하게 풀어내려고 했다. 과연 저들이 나의 스토리에 공감할까, 전전긍긍하며 눈치 보면 티가 나기 마련이다. 그냥 차분하게 나는 이런 삶을 살아왔다 이야기하면 된다. 그들이 설득되지 않는다면 그저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일 뿐이다.

 


+

나는 약 한 달 전부터 독서모임에 나가고 있다.

나 포함 6명 정도 되는 모임이고 내가 막내다. 모임에 참석한 사람들은 다양한 직업군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인데, 첫날에 각자 자기소개를 하다가 내가 취준생이라는 사실을 밝혀버리고 말았다 (굳이 알리고 싶지 않았는데 말이다..)


6명 중 한 분은 HR 담당자셨고, 또 한 분은 컨설턴트, 어떤 분은 IT 기업의 기획자. 나보다 사회생활 10년은 앞서계신 인생 선배님 분들이셨다. 어쩌다 보니 주저리주저리 서류탈락, 면접 탈락 등 현재 나의 고민들을 털어놓게 되었고, 이런 나의 상황이 안타까우셨는지 이런저런 조언을 많이 해주셨다.


면접이라는 건 지극히 그 당일 면접관의 기분과 상태에 좌지우지되기도 하는 것이며, 지원자의 걸음걸이나 옷차림, 미묘한 표정과 말투로로 합격이 결정되기도 한다며. 한 분은 예전에 어떤 지원자가 손바닥 크기의 미니백을 들고 온 것이 상당히 거슬려 합격시키지 않았다는 말도...


그러니 탈락을 반복한다고 너무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본인의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다. 딱한 취준생을 위로하기 위한 말이었을 수도 있지만, 이유도 모른 채 수많은 탈락을 반복하고 있던 나에게 현직자들의  그런 조언들은 참 위로가 되었다.


그러니 나도 다시 한번 말하련다. 쫄지말자. 이미 여기까지 온 것만으로도 당신은 잘하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탈락을 반복하고 있더라도, 당신이 못나서가 아니다.



작가의 이전글 300번의 지원, 그리고 20번의 탈락 (1)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