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5월 말부터 시작된 나의 이직 도전기.
퇴사할 땐 job searching 기간이 이렇게 길어질 줄 몰랐다. 첫 회사의 입사과정은 순탄했기에, 다음도 비슷할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던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취업시장 상황이 어떤지와, 이직하고자 하는 새로운 분야에 대한 이해와 공부도 부족했다. 그저 이전회사에서 나의 시간과 에너지를 더 이상 낭비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조급함이 앞서기도 했다.
5월 말부터 글을 쓰고 있는 현재까지의 인터뷰 여정을 정리해 보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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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 국내 마케팅 에이전시 / rejected
5/27 외국계 / rejected
6/5 국내 IT / rejected
6/10, 6/13 외국계 / 1st interview passed, 2nd interview rejected
6/14 국내 마케팅 에이전시 / rejected
6/26 국내 스타트업 / skipped
7/2 국내 스타트업 / skipped
7/17 국내 스타트업 / rejected
7/26 국내 스타트업 / rejected
7/26 국내 스타트업 / rejected
8/6 외국계 / rejected
8/8 국내 스타트업 / rejected
8/12 국내 IT / rejected
9/12 국내 IT / Eng phone screening rejected
9/13 국내 마켓리서치 / rejected
10/2 국내 기술 / rejected
10/7 외국계 / rejected
10/14, 10/21 국내 기술 / 1st interview passed, 2nd online interview rejected
10/17 외국계 / rejected
10/18 국내 기술 / rej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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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리해 놓으니까 5월 말부터 지금까지 숨 가쁘게도 달려왔다.
이 외에도, 기업자체 채용페이지까지 합치면 350군데는 넘게 지원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인터뷰는 20번 넘게 봤으니 서류 합격률을 나쁘지 않다고 봐도 되는 건지.
정말 떨었던 면접 몇 번 말고는 대부분 면접을 마치고 나서 든 생각은 "괜찮게 본 거 같아. 여긴 왠지 될 것 같은데?"였다. 하지만 나의 착각일 뿐이었는지 합격 소식은 그 어디서도 들을 수 없었다. 한두 번도 아니고, 계속 탈락을 반복 반복 하다 보면, 아니 어떻게 이렇게 계속 탈락할 수가 있지? 나는 어떻게 살아온 거지? 결국 내가 문제였구나,라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자책감과 더 이상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무기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이때 장기간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니 아무리 잘 먹고 열심히 운동해도 이유 없이 아팠다. 갑자기 급체를 하질 않나, 지독한 감기몸살이 몇 주 내내 괴롭히질 않나...
반복된 탈락에서 오는 좌절에 더해, 면접마다 듣던 피드백이 있다.
나이에 비해 경력이 적다는 것. 나는 다른 지원자들과 비교했을 때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이었다. 고등학교 검정고시 졸업, 20살에 바로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23살까지 다양한 아르바이트로 사회생활을 먼저 시작한 것, 그리고 24살에 미국으로 대학을 진학해 졸업 후 한국으로 돌아와 전공과 무관한 분야로 첫 취업을 한 것. 이력서에 정리된 나의 이력을 보고 "확실히 일반적이진 않네요."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다.
그렇다면 일반적으로 살아온 인생이란 무엇인가. 고등학교를 졸업해 인서울 대학을 나와 취업을 하고, 30살이면 경력 4~5년 차는 되어있어야 일반적으로 잘 살아온 인생이라고 할 수 있는 걸까? 그렇게 치면 나는 한국사회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인생에서 정말 많이 벗어나 있구나라고 생각했다. 이런 소리를 반복적으로 듣다 보니, 내가 살아온 인생을 끊임없이 뒤돌아보며 자책에 빠지고 자기혐오로까지 이어졌다.
반복적인 부정적인 피드백으로 자존감은 낮아질 대로 낮아진 상황.
"이번에도 또 떨어지겠지"라는 마인드와 자신감 없는 태도를 장착한 채 면접을 임하게 된다. 이번에는 또 어떤 얘기를 듣게 될까에 지나치게 집착하다 보니, 방어적인 태도로 이제까지 내가 살아온 나날들을 조급하게 해명하기 바빴다.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저 열심히 살았어요, 이번에는 안 그럴 거예요..."
스스로도 나의 스토리에 자신감이 없는데, 그 누가 공감해 줄 수 있었을까.
취준 기간이 길어질수록 괜히 링크드인은 피드는 잘 안 보고 있었다. 남들은 "나 이렇게 일 잘하고 산다!!"라고 알리는 자랑의 장 같은 곳 같은 이곳을 보고 있노라면 진짜 자존감이 바닥까지 떨어지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또 한 번 탈락을 경험한 날이었을까. 밤늦은 시간까지 잠 못 들고 누워서 멍하니 링크드인 피드를 스크롤하고 있던 날이었다.
그렇게 무표정으로 피드를 내리고 있는데, 어느 한 문장이 눈에 박혔고, 그렇게 멈춰서 읽다가 꺼이꺼이 참 서럽게도 울었다. 현재 구글에서 일하고 계신, 그리고 '생각이 너무 많은 서른 살이게'를 집필하신 김은주 님이 올리신 글이었다.
다음 날은 오전부터 약속이 있어 일찍부터 나가야 하는데 눈이 정말 퉁퉁 부어오를 수밖에 없을 정도로 펑펑 울었다. 몇 개월간 탈락을 반복해 내가 문제라고 생각한 나에게 정말 위로가 된 말이었다. 지나치게 부정적이고 닫혀있던 시야를 열어주기도 했다. 면접은 잘 보는 게 아니라 못 보는 게 당연한 거라고. 누구에게나 어려운 자리이지만 결코 피해 갈 수 없다고.
아침에 얼굴은 퉁퉁 부어 화장은 잘 안 먹어도, 아주 오랜만에 기분은 참 괜찮았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그렇다고 기적적으로 갑자기 다음 면접을 잘 보게 되었다거나, 합격 소식을 들었다거나 한 건 아니다. 이후에도 몇 번의 탈락을 더 경험하고 (그리고 여전히), 좌절했으니까.
그래도 잠시 멈춰 서서 숨은 쉴 수 있게 되었다. 조급함을 내려놓고, 머리에 안개처럼 끼어있던 부정적인 생각을 걷어냈다. 모든 게 다 싫어져 좋아하던 글쓰기도 안 하고 있었는데, 이렇게 다시 글을 쓰자는 용기를 내어도 봤다.
그러니 너무 자책하지 말자. 누구에게나 어려운 과정이다. 힘들어도 주저 않지만 않는다면 잘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