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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휴 Mar 19. 2023

기업교육 설계의 가장 흔한 오류

정보과다(Information Overload)에 대해서 (1) 

기업교육에 대한 여러가지 비판 중에 꽤 아픈, 팩트 폭격인 표현 중 하나가 '그 교육은 휘발성 교육이다' 라는 말이다. 기껏 자원과 노력을 들여 교육을 했는데 흡수가 안되고 다 날아간다니... 이렇게 허망한 일이 있을까? 

휘발성 교육이 되는 이유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시간 대비 너무 많은 양을 꾹꾹 눌러담았을 때라고 할 수 있다. 


난 이렇게 정보 과다인 교육에 참여해본 적이 굉장히 많다. 아마 내가 참여했던 대부분의 사내교육, 그리고 회사 비용을 내고 참여했던 사외교육의 상당수가 아마 시간대비 지나치게 많은 정보를 들이 붓는 교육이었다. 

너무나 빠른 속도로 장표를 훑고 넘어가는데 나의 뇌도 괴로웠을 뿐 아니라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격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니, 지금 내 시간을 들여서 의미있는 무언가를 배우고 싶은데 도저히 인간으로서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이렇게 정보를 투하해버리고 나에게 학습결과의 책임을 지우려고 하는건가?! 이들은 제정신인가?' 


정보과다가 발생하는 경우는 특히 업무전환교육(리스킬링/업스킬링) 처럼 회사에게도 개인에게도 high stake (관심수준이 높은) 교육인 경우 더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다. 적어도 내가 지난 n년간 겪은 기업교육에서는 말이다. 이런 일은 왜 일어나는 걸까?


케이스 1. 교육을 만드는 사람들이 리더의 입장에서 투자효율성에만 집중한다. 

교육은 기업가의 입장에서 굉장히 돈이 많이 드는 활동이다. 교육을 만들어서 실시하는데만 돈이 드는게 아니라, 거기에 참여하는 교육생들은 일을 하지 않지만 그 시간에 대한 월급은 그대로 나간다. 게다가 그들의 업무공백으로 인해 벌어들이지 못한 수익까지...! 


이러한 리더의 시각을 반영한 교육은 일단 가성비를 위해 주어진 시간에 내용을 가득가득 채워넣는다. '그래, 이 정도는 커버해야 돈을 그렇게 들인 가치가 있지!'  '상무님! 저희가 이번 교육에 업무에 필요한 내용들을 이만큼이나 반영했고 꼭 전달을 하겠습니다!' 그러면 열정이 높은 임원들은 '아니 자네. 그거 말고 이것도 넣어야 하지 않겠나?!' 라고 아이디어를 더 낸다. 그 결과는 우리가 보는 그 모습이다. 


하지만 이러한 사고방식으로 정확히 의도한 것의 반대의 결과가 나타난다. 지식과 스킬은 습득되지 못하고, 교육생들은 스트레스를 받다가 은연 중에 포기해버린다. 교육을 통해서 적극적으로 지식과 스킬을 배우고 그것을 활용하는데 대해서 자신감을 얻어야 하는데 사람들은 오히려 좌절감만을 맛본다. 교육이 업무에 대한 동기부여가 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동기를 빼앗아버리는 슬픈 결과를 낳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방식이 살아남는 이유는, 하필 그 와중에 개인 역량 수준이 높은 사람은 어떻게든 본인 역량으로 메꿔서 만족할만한 수준으로 습득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기업 교육은 '헝거게임'같은 서바이벌이 되어버린다. 정말 필요하다면 개인은 과외시간을 투자하여 어떻게든 습득하려고 노력을 할 것이다라는 생각이 자리잡는다. 따라서 정보과다 형태의 교육은 완벽히 눈에 띄게 실패하지는 못하기 이러한 교육에 대한 잘못된 어프로치는 지속된다. 이러한 교육의 결과에 대한 책임은 개인에게 지워지는게 맞다. 

 

케이스 2. 교육을 만드는 사람들이 교육방법을 잘 알지 못해서 정보 전달에만 집중한다.  

사내교육 컨텐츠는 대부분 실무자들이 SME(subject matter expert)로 선정되어 정해진 기간안에 교안을 개발하고 때로는 강사 역할까지 하는 경우가 많다. 어느 날 갑자기 업무 현장에서 불려온 실무자들은 교안개발이라는 과업 앞에서 겁부터 먹는다. '교육생으로 교육에 참여해본 적은 많지만 나보고 교육을 만들라고? 3시간이나? 아 어떻하지? 뭘로 채우나?' 이런 마음에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꽤 자주 보게 된다. 


그들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은 사실 너무 당연하다. 사내교육을 만든다고 업무 실무자를 불러오는 경우는 기업에 특화된 지식과 기술이라 정례화된 텍스트가 없거나 적어, 실무자가 암묵지를 끌어내서 형식지화 해야되는 경우가 많아서 실제로도 굉장히 챌런징한 과업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보통 중요한 교육에 교안 개발 씩이나 요청을 받는 실무자들은 고성과자이거나 희소성 있는 인재라 일이 졸졸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다음 프로젝트가 기다리는데 교안개발에 많은 시간을 투입할 수가 없으니 챌런징한 일임에도 충분한 업무시간과 리소스를 배정받지 못한채 쉽지않은 일을 해내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한개의 지식을 전달하면 그것을 반드시 어떠한 형태로든 교육생에게 연습을 시켜주어야 한다' 라는 교수설계의 대명제는 실제로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운이 좋아서 교육설계자가 있어서 그러한 내용을 알려주고 산출물의 요구사항으로 제시를 한다고 하더라도, SME들은 더욱더 패닉할 뿐이다. '지금 내용 정리해내는 것도 너무 힘든데, 액티비티까지 만들라구요? 저에게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게 아닌가요. 전 뭘 배워서 교안에 적용할 그럴 여력은 없어요'  이렇게 거절이라도 당하면 더이상 설계자가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없어진다. 그냥 알겠으니 잘부탁드린다라는 말 외에는 할수 있는 말이 없다 그 결과 교안을 단순히 정보만으로 채운다면, 그래서 교육생에게 전달한 내용을 연습하거나 응용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교육이라기 보다는 매우매우 긴 프레젠테이션일 뿐이다. 몇 시간 씩 계속되는 정보 전달에 집중력을 잃어버린 교육생들은 어느 순간 부터 자의 반 타의 반으로 귀를 닫아버리고 그 정보는 그냥 교육생들을 스쳐 지나가버린다.  


나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이 두 가지 케이스는 따로 따로 나타날 떄도 있고, 섞여서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더더욱 강화되는 경우도 있었다. high stake인 교육설계 및 개발에 제한된 권한을 가진 교수 설계자로서 이 문제를 방지하거나 최소 그 영향을 완화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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