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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켈리오 Apr 21. 2023

비싸고 드문 행복

쾌락과 행복의 차이

"최근 행복했던 적이 언제예요?"

"음... 행복... 행복했던 적이라... 잘 모르겠어요. 작년에 갔던 뮤직페스티벌에서 '아 정말 행복하다'를 느끼긴 했는데 그 이후로는 딱히 기억나는 순간이 없네요."



나는 뮤직페스티벌을 좋아한다. 특히 울트라뮤직페스티벌이나 월드디제이페스티벌처럼 사정없이 쏟아지는 EDM의 향연은 내 흥을 돋우고, 현실을 잊고 마음껏 놀게 만들어준다.

'와 내가 이걸 보려고 여기까지 왔구나. 오늘 이 순간까지 살아있어서 이걸 보게 되다니... 너무 다행이다'는 생각이 드는 유일한 순간이 가장 클라이맥스의 공연을 즐기면서 환하게 웃고 있을 때다.



공연 클라이맥스에 폭죽이 사정없이 터질 때는 마음속에 응어리졌던 것들이 함께 터져버리는 듯 속이 시원하기도 하고, 너무 아름다워서 넋을 잃고 보기도 한다. 그러다 폭죽이 모두 터지고 폭죽 연기가 흩날리는 것을 볼 때면 '이제 현실로 돌아가야 하나'싶어서 조금씩 울적해지기 시작한다. 그러거나 어쨌든 최근의 행복이라면, 당연 현실을 잊고 웃음 지었던 바로 그 순간이 아니겠는가.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또다시 내 세계에 작은, 아니 꽤나 큰 지진을 일으켰다.(오은영 선생님 저리 가라의 팩폭러셨다)



"그건 행복보다 쾌락에 가까운 것 같아요. 행복과 쾌락은 다르니깐요. 쾌락은 그렇게 하나의 사건처럼 강렬한 행복을 말하고요, 행복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소소한 것들을 말하죠. 켈리 씨가 본인의 감정을 자꾸 외면하고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서 행복에 대한 기준 역시 높은 것 같아요. 분명 최근에 일상 속에서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 거예요. 오늘부터는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한번 찾아보세요. 이번주 숙제입니다."



아, 쾌락과 행복은 다르구나


나는 정말 어디까지 나를 모르고, 얼마나 나를 아는 걸까. 스무 살 후반에 혼자 밥벌이를 하며 살았는데도 내가 힘든 줄도 모르고, 어떤 것이 행복인지도 모르고 살았다니. 그날은 상담 이후 생각이 참 많아졌다.(안돼,, 생각 멈춰..!)



쾌락과 행복은 다르다. 그렇다. 아이스 바닐라 라떼로 행복해지는 친구는 대략 5800원 정도면 언제든지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락페는 어떤가. 최소 교통비와 티켓값으로만 20만 원이 훌쩍 넘고 지방에 사는 나로서는 수도권까지 가서 숙소를 잡고 1박 2일 혹은 2박 3일간 체류하면 50만 원은 우습게 깨진다. 그리고 락페는 1년에 단 4-5번 그것도 여름에 몰아서 진행된다. 비용도 비용이거니와 좋아하는 디제이가 있는 공연만 간다 해도 1년에 2-3번 약 100여만 원이 들어야 나는 행복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이 얼마나 비싸고 드문 행복인가...!


그 생각에 이르자 5800원과 50만 원의 차이만큼 나는 더 공허해졌다. "그래, 아이스 바닐라 라떼처럼 지금 당장이라도 살 수 있는, 혹은 느낄 수 있는 행복을 찾아야지. 100만 원을 들여야 그 한 해가 행복하다면 너무 비효율적이고 찰나잖아. 그럼.. 진짜 내가 너무 불쌍하고 불행하잖아.."



그날부터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기 시작했다. 갑자기 눈에 불을 켜고 '행복'이라는 사물 따위도 아닌 것을 찾으려 하자 내 머릿속은 시끄러워졌다. 지금 생각해 보니 웃기다. 행복은 마음으로 느끼는 건데, 무슨 일이 있을 때마다 '음 이건 행복인가?'라고 생각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니, 그런 세상 쓸모없는 AI가 따로 없었다.



그런데 행복을 생각하는 그 AI는 점차 행복을 학습해 가기 시작했다. 아침 출근길에 화단에 핀 꽃을 찍으며 프로필 사진이 꽃인, 혹은 꽃밭에서 웃음 짓고 있는 사진인 우리 엄마가 생각났다. '예쁘다. 이런 꽃이 있었네. 꽃 사진 찍기 시작하면 나이 든 거랬는데, 나도 이제 꽃 좋아하는 나이가 된 건가ㅎㅎ 이거 엄마한테 보내주고 싶다. 너무 시간이 이를라나'



순간 '아 이것도 행복인가..?'라는 생각이 들어 메모장을 열어 급히 메모했다. '아침에 핀 꽃을 보고 엄마 생각이 났을 때' 그렇게 하루하루 숙제를 성실히 해나갔다. 물론 그렇다고 엄청나게 행복을 많이 찾지는 못했다. 그 당시 전반적으로 나는 예민했고 우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꽤 성과가 좋았다. 락페를 가야만 행복한 줄 알았던 나는 그래도 일상 속에서 꽤 잔잔한 행복을 느끼며 살고 있었다.



그런 나를 발견한 건 내 인생의 변화가 시작됐다는 걸 의미했다. 나도 일상에서 행복을 꽤 느끼는 사람이구나. 지금은 일주일에 한두 번이지만 이걸 하루에 한 번으로 늘리면 나는 매일 행복할 수 있겠네..!라는 계산에 이르자 매일 '오늘 행복한 것 찾기'에 돌입했다. 물론 성공할 때도 아닐 때도 있었지만 행복을 간별하는 AI는 꽤 바쁜 나날을 보내게 됐다.



쾌락과 행복의 차이를 모르던 사람이라니... 하지만 20대 후반에라도 알게 돼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30대가 된 지금. 나는 쾌락과 행복의 차이를 안다. 이제는 생각으로 판단하는 것을 넘어 온전히 느낄 수도 있게 됐다. 아침에 일어나 브런치 글을 쓰면서 하루를 시작할 때 마시는 이 커피 한잔이 내게는 행복이 돼버렸다. 


오늘도 나는 행복을 느끼며 하루를 시작한다. 이 얼마나 큰 변화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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