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어릴 때가 있었지
요즘 주변에 선물을 사줄 때 카카오 선물하기 혹은 현금 혹은 원하는 선물을 직접 주문해서 친구 집으로 보내준다든가 하는 꽤... 정 없어 보이지만 아주 실용적인 어른의 방법?을 택하곤 했다.
매장에서 물건을 산다고 해도 '선물포장해 드릴까요?' 하면 종이박스에 리본이 붙는 것이 전부였기에 선물 포장지를 구경한 지도 꽤 오래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작년 크리스마스에 산타복장은 입지 않았지만 짠~하고 산타 흉내를 내고 싶어 장난감 백화점에서 조카 선물을 골랐다.
"선물 포장 해드릴까요? 1000원 추가입니다"
옛날엔 나 서비스였는데 선물 포장에 1000원이나 받네..라는 물가상승을 체감하며 조카 선물을 포장해 갔다.
당시 13개월 정도라 이제서야 더듬더듬 걷기 시작하고, '아빠'를 알려줘도 자꾸 아빠한테 '엄마'라고 하는, 그렇지만 엄마도 '엄마'인지 '어마'인지 모를, 본인 이름을 부르면 아는지 모르는지 알은 체도 하지 않던 조카가 내가 선물을 꺼내자 본능적인 건지. 본인 선물이라는 것을 알고 좋아했다.
막 박수를 치면서 선물을 뚫어지게 쳐다보는데 그게 너무 귀엽고 재밌고 웃기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그러더니 선물포장을 자꾸 내게 가져다주면서 '뜯어줘'라는 무언의 압박을 보냈고, 선물 포장을 뜯자 '까르르'웃었다.
그때 기억이 강렬해서일까. 그 이후로 조카를 보러 갈 때 선물을 사면 꼭 다이소에 들려 1000원짜리 선물포장지를 구매했다. 1000원짜리 포장지는 매우 짧아서 선물 2개 포장하면 끝이 나버린다.
그래서 이번에는 어린이날을 맞아 선물도 커진 만큼 인터넷에서 '뽀로로 포장지'를 구매했다. 무려 '18m'짜리! 이제는 크리스마스 때보다 6개월이나 더 살아서 아귀힘도 세졌고, 포장지 정도는 뜯을 수 있는 생명체로 자랐다.
KC인증은 받았는지, 리뷰는 괜찮은지, 아이들이 물고 빨아도 괜찮은지, 파손돼서 상처는 입지 않을지 등등을 꼼꼼히 따진 후 선물을 주문했다. 어린이날인 5일은 아이들이 설레는 날이지만, 그 전날인 4일은 어른이 설레는 날이었다.
뽀로로 포장지로 금쪽같은 조카들의 선물을 포장하면서 '혼자서 잘 뜯을 수 있을까'. '이번에는 뜯을 때부터 동영상을 찍어야지' 하는 생각을 하며 기분이 좋아졌다.
'5월은 어버이날에 친한 친구 생일까지 있는데 어린이날에 챙겨야 할 존재가 2명이나 더 늘어 너무 부담이 크다'며 언니에게 소심한 불평을 해댔다.
막상 지출이 커지니 '나중에 커서 기억도 못할 텐데 내년부터 챙겨줄까'싶다가 도 선물을 보고 손뼉 치며 웃을 조카들을 생각하니 자기 전 누워 인터넷을 뒤지는 게 꽤 재밌는 루틴이었다.
아직은 자기들 엄마, 아빠밖에 모르는 조카들이라 서운할 때도 있지만(아니 많지만), 난 그 아이들에게 너무 고마운 것이 많다.
내가 주말마다 웃을 수 있게 해 주고, 존재 자체만으로 우리 가족에게 행복 그 이상의 감정을 선물해주고 있다. 그렇게 해맑게 웃고 잘 자라는 걸 내게 보여주면서 좀 과하게는 '생명의 소중함', 좀 더 담백하게는 '부모님의 사랑'을 느끼게 해 준다.
비눗방울을 보며 '우와~'(아직 우와, 엄마밖에 못 한다)를 외치는 조카를 보고 있으면 '나도 어린아이일 때가 있었지', 나도 18개월일 때가 있었지' 뭐 이런 생각을 하면서 나보다 젊었던 우리 엄마가 어렴풋이 그려진다.
그럴 때면 정말 주책맞은 건지, 청승맞은 건지, 조카들이 노는 걸 보는데 눈물이 난다. 그땐 뽀로로 포장지가 없었겠지만 우리 엄마 아빠 방식으로 사랑을 표현해 줬겠지. 나도 어린이날을 기대하는 어린아이였겠지.
그래서 기승전결이 참 웃기긴 하지만, 조카들을 보면서 나의 어린 시절을 생각하게 되고, 그래서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아니 사실 열심히보다 그냥 우선 살아야지라는 생각이 든다고 해야 할까.
우리 엄마, 아빠가 열심히 키워온 나인데 말이다. 나도 어릴 때가 있었지. 비록 지금도 어른은 아닌 것 같지만 그렇다고 어린이로 비비기엔 세상이 날 너무 한심하게 볼 것 같다. 그래서 '어른이'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는 어린이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