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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별 Apr 02. 2022

단돈 3만 원으로 분위기 있는 술자리를 만드는 방법

부라타 치즈와 청포도, 토마토 스튜, 연어 오이말이

나에게 술자리라고 하면 시끄러운 환경 속에서 헛소리를 늘어놓는 자리였다. 물론 맘 맞는 사람들과 헛소리를 하며 낄낄 웃는 일은 물론 재밌다. 하지만 30대가 되며 어린 시절부터 알아 온 친구들과는 자주 볼 수 없게 되었고 새로운 사람을 사귀는 일이란 어쩐지 귀찮은 일이 되어버렸다. 상황이 이러하니 어쩌다 술을 먹게 돼도 썩 재밌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또 주위는 어찌나 시끄러운지 내 에너지를 쭉쭉 뺏기는 기분이 들었다. 설상가상 직장인이 되고 생긴 성인 여드름이 술만 먹으면 심해졌다. 원래도 술만 마시면 얼굴이 굉장히 빨개지며 열감이 올라왔었다. 그런데 청소년기에도 심하지 않던 여드름과 염증이 직장을 다니고부터 올라오는 것이다. 그러니 나에게 술을 한 번 먹는다는 건 큰 각오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치료를 위해 적지 않은 돈을 피부에 쏟아붓고 있는 와중에 누가 썩 즐겁지도 않은 술자리에 가고 싶어 질까. 술을 먹게 된다면 좀 더 의미 있는 자리에 맛있는 술을 먹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


나의 주종이 와인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맛도 맛이지만 와인이 만들어주는 분위기 영향도 크다. 와인을 마시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늘 보는 원기둥 형태의 잔이 아닌 얇은 다리가 달린 와인 잔을 준비해야 한다. 와인 전용 잔이 따로 있는 이유는 향을 보다 풍부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맛뿐만 아니라 향까지 즐기는 술인 와인은 와인 잔의 액체를 담는 둥근 부분을 보울이라고 한다. 이 보울에 와인이 따라지면 넓고 둥근 부분에서 향이 펴지고 다시 입술이 닿는 부분은 보울이 오므라들면서 향이 모아진다. 이런 와인잔은 종류도 브랜드도 참 다양하다. 하지만 난 아직 와인에 깊은 조예가 있는 건 아니라며 만원에 구매한 와인잔을 주로 사용한다. 이 외에도 친구들이 선물로 준 오로라 빛의 와인잔, 와인 다리 모양이 독특한 와인잔 등의 여러 와인잔도 있다. 와인잔은 그때의 분위기에 따라 고른다. 와인을 따를 와인잔이 준비되었으면 마리아주가 잘 될 음식을 고른다.


 내가 주로 와인과 같이 곁들여 먹는 음식에는 부라타 치즈와 청포도, 바질 파스타, 올리브, 체리 페퍼, 치즈, 토마토 홍합 스튜, 연어 오이말이, 양고기 스테이크, 버터 데이즈, 감바스가 있다. 부라타 치즈는 겉은 모짜렐라지만 안에는 부드러운 크림이 들어있다. 오동통한 원형이 살짝 눌려있는 형태인데 생긴 것도 묘하게 귀엽게 생겼다. 벨지오이오소 부라타 치즈가 제일 대중적으로 먹는 브랜드인데 나는 마켓 컬리에서 유로포멜라 부라타 치즈를 배송시킨다. 구매한 냉동 부라타 치즈는 유청과 얼려있기 때문에 먹기 12시간 전에 냉장고로 옮겨놓는다. 해동된 부라타 치즈는 실온에 30분 정도 꺼내 둔다. 이 사이에 씨 없는 청포도를 꺼내서 깨끗하게 씻는다. 청포도 외에도 블랙 사파이어 포도나 샤인 머스켓 등 달달한 과일은 모두 잘 어울린다. 잘 씻은 청포도를 반으로 자른다. 새하얀 부라타 치즈와는 명도 차이가 큰 남색 접시를 꺼낸다. 남색 접시 위에 부라타 치즈를 올리고 주위에 반으로 자른 청포도를 두른다. 그리고 부라타 치즈 위에 올리브 오일과 후추를 뿌리면 간단하고 맛있는 와인 안주가 완성된다. 부라타 치즈를 반으로 가를 때 보이는 말캉한 크림들이 먹는 순간에도 묘한 재미를 준다. 토마토 홍합 스튜는 홍합을 색다르게 먹을 수 있는 요리이다. 캐나다 여행 중에 먹은 요리인데 그때 먹었던 맛이 잊혀지지 않아 한국에 와서도 겁도 없이 도전해 본 요리이다. 그래도 만드는 법은 생각 외로 간단하다. 먼저 달궈진 팬에 버터를 녹이고 마늘과 잘 손질된 파프리카, 양파, 페퍼론치노(혹은 청양고추)를 넣는다. 어느 정도 야채들이 익어갈 쯤에 손질한 홍합과 토마토소스, 화이트 와인(혹은 청주)을 넣는다. 홍합에서 물과 짭짤한 맛이 나올 때까지 기다린다. 만약 홍합에서 나온 물의 양이 적으면 물을 추가하고 짭짤한 맛이 필요하면 소금을 넣는다. 조개의 비릿한 맛에 예민한 편인 나는 우리가 자주 먹는 홍합탕에서 나는 홍합 특유의 비린맛에 쉽게 물리곤 했다. 그런데 이 토마토 홍합 스튜는 토마토소스 덕에 홍합의 비릿한 맛이 느껴지지 않고 색다르게 먹을 수 있는 요리다. 연어 오이말이도 와인과 잘 어울리는 요리이다. 잘 씻은 오이를 채 칼로 얇고 세로로 길게 썰어낸다. 세로로 얇고 긴 오이 위에 크림치즈를 바르고 연어를 올린 다음 돌돌 말아준다. 핑거 푸드처럼 먹을 수 있는 산뜻한 음식이다. 흔히 레드 와인에는 육류, 화이트 와인에는 해산물이라고 말하지만 나는 와인과 음식에 특별한 공식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내 입맛에 맛있는 와인과 음식의 궁합을 찾아가는 것이라는 생각이 크다. 내가 평소에 먹는 밥을 먹는 것처럼 와인도 똑같이 입을 통해 맛을 보고 배로 들어가는 건데 다를 이유가 있을까.


음식이 모두 준비되면 냉장고에 넣어둔 와인을 꺼낸다. 간혹 어떤 와인들은 냉장고에 차갑게 칠링 해서 먹는 것이 더 맛있을 때가 있다. 소믈리에 와인 오프너를 꺼내 와인의 코르크 마개를 딴다. 와인 오프너의 스크루를 코르크에 넣고 살살 돌려주며 수직으로 꽂는다. 그리고 지지대를 와인 뚜껑에 걸치고 힘을 주어 코르크 마개를 뽑아내면 뻥! 하는 소리와 함께 와인을 딸 수 있다. 와인잔에 와인을 따를 때에는 와인 밑바닥을 잡고 와인의 물줄기가 가느다래 지도록 따라야 산소를 많이 만난다고 한다. 아직 나에겐 그런 스킬은 없어 와인 에어레이터를 꼽는다. 그러면 팔에 손 힘이 없는 나도 그럭저럭 와인을 잘 따를 수 있다. 잘 따라진 와인잔의 다리 부분, 즉 스템을 잡고 와인잔을 약간 기운채로 안쪽으로 빙글빙글 휘저어준다. 그리고 향을 맡고 맛을 음미한다.


와인은 묘한 분위기를 만들어준다. 와인을 먹을 때도 종종 왁자지껄 먹기도 하지만 어쩐지 분위기를 잡고 싶은 기분을 만들어준다. 나는 그 분위기를 좋아한다. 사람들과 깔깔 웃으며 마시는 술도 좋지만 사소한 그날을 특별한 날로 만들어주는 기분에 어쩐지 차분한 그 분위기를 무척 좋아한다. 이렇게 단돈 3만 원의 와인으로 내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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