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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주호 Jul 03. 2018

#2017. 09.26. 36시간 기차. 인도 첸나이

24시간 동안 기차 안에 있던 이야기입니다.

# 인이: 인도 이야기의 줄임말. 다음(daum) 포털사이트에 '인이' 또는 '정주호'를 검색하면 글이 나옵니다.

감사합니다.

 

- 설국열차 (기차안에서 하루 24시간 보낸 이야기)

  ‘덜컹.. 덜컹’


 

   잠에서 일어나 시계를 보니 아침 10시였다. 새벽 2시에 출발했던 기차는 지치지도 않고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앞으로 24시간을 더 달려야 목적지인 첸나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누워있는 체로 눈만 떠서 건너편을 봤다. 노부부가 나란히 앉아 식판에 배식을 받고 있었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사람들 또한 식판을 들고 지나다녔다. 배고픈 마음에 두리번 거리며 식판을 찾기 시작했다.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기에 자리에 앉아 배식해 주는 사람을 계속 쳐다봤다. 배식해 주는 남자는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걱정하지 말라는 눈치를 줬다. 노부부의 음식을 보면서 무엇부터 먹을까 라는 행복한 생각에 잠겼다. 노부부의 배식이 끝나자 마자 배식하는 남자는 나를 한번 쳐다보고는 새침하게 다음칸으로 넘어갔다. 미리 결제한 사람들만 배식을 받은 듯 보였다. 자연스럽게 아무 일 없다는 듯이 다시 누웠다. 정말 민망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었다. 노부부는 자기들만 먹기 미안한지 말을 걸었다.


“밥 안 먹어?”

난 말했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속으로는 ‘한입만 주세요’ 가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참았다.


 

  누워서 눈을 감았지만 쩝쩝 거리는 소리와 인도 카레 냄새가 나를 자극했다. 실눈을 떠서 노부부를 쳐다봤다. 할머니는 달을 카레에 찍어 입안에 넣고는 오물오물 씹고 있었다. 할머니가 달을 입안에 넣을 때 나도 같이 입이 벌어졌다. 하지만 계속 쳐다볼 수만은 없어서 고개를 돌려 이어폰을 꼈다. 그리고 눈을 감았다.  


 

  기차에서 음식 파는 사람이 지나가길 간절히 기도했다. 내 기도가 통한 것일까 정확히 10분 후에 복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이어폰을 빼고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물 장수가 객실에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불행하게도 밥은 아니었다. 하지만 먹을 게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물 1L 와 인도판 ‘뿌셔뿌셔’ 과자를 샀다. 배고픈 마음에 과자를 입에 털어 넣었다. 근데 문제가 생겼다. 씹으면 씹을수록 매워졌다. 물을 마셨다. 더 매워졌다. 끊임없이 물을 입에 부었다. 물을 거의 다 마셨다. 물배가 찼지만 행복했다. 그리고 다시 누웠다.  


 

     30분 후에 다른 남자 한 명이 복도에서 소리를 질렀다. 다음 음식을 알리는 신호였다. 소리가 점점 가까워 지자 이어폰을 빼고 일어났다. 소리 지르던 남자는 우리 객실에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뭐라도 먹어야겠다는 마음에 음식을 보지도 않고 일단 돈부터 꺼냈다. 남자는 신문지에 사모사 2개와 케첩을 담아주고 떠났다. 다행히 델리에서 많이 먹어보던 친숙한 길거리 음식이었다. 케첩을 위에 바르고 한입 베어 물었다. 안에 있는 감자와 케첩이 뒤 섞이면서 입에서 녹았다. 손가락에 묻은 케첩까지 하나 남기지 않고 빨았다. 짧지만 행복한 순간이었다.


정말 맛있는 사모사


 

  낮잠을 자고 있는데 다른 상인이 객실에 고개를 내밀더니 저녁밥 먹을 거냐고 물어봤다. 잠결에 자동적으로 먹는다고 했다. 남자는 A4용지에 내 좌석을 체크하고는 떠났다. 1시간 정도가 지나자 남자는 한솥 도시락이랑 비슷한 크기를 갖고 왔다. 120루피를 냈지만 아깝지는 않았다.


    도시락을 들고는 복도에 앉았다. 그리고 비닐을 걷어냈다. 중고등학교 급식판과 동일하게 위에는 반찬 3개, 왼쪽 밑엔 밥과 오른쪽 밑엔 달이 있었다. 하지만 반찬들은 다 카레였다. 맨 왼쪽에는 고기가 들어있었는데 엄청 미끄럽고 혀로 건들기만 해도 고기가 부서졌다. 친숙한 소스는 아니었지만 그럭저럭 먹을만했다. 가운데에 있는 카레소스는 노란색이었다. 숟가락으로 퍼서 입에 넣었다. 바로 달리는 기차 창문에 뱉었다. 토할 뻔했다. 정말 인도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친숙하지 않은 맛이었다. 마지막 세 번째는 가장 친숙한 맛이었다. 정신은 계속 첫 번째 소스와 두 번째 소스를 먹어 라고 주문을 넣지만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결국 친숙한 맛의 카레와 밥과 달 세게만 먹었다.


..맛..맛..있.어요..


 

  도시락을 다 먹고 쓰레기통을 찾고 있는데 쓰레기통이 보이지가 않았다. 기차 안에서 청소하는 남자에게 물어봤다

“쓰레기 버리려고 하는데 쓰레기통 어디 있어?”

“여기에다가 버려” 하면서 손가락이 바닥을 가리켰다.

바닥을 보니 철도였다.

“여기? 철도인데?”

“노 프로블럼”


 

  다 먹은 도시락을 살포시 철도에 던졌다. 청소하는 남자는 아무 문제없다는 듯이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기차 철도에 쓰레기를 버리고 다시 철도를 청소하는 약간의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었으나 인도의 룰을 따르기로 했다. (기차 안에 쓰레기통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다. 누워있으니 철도랑 같이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이었다. 덜컹거리는 기차에 몸을 실어 나도 같이 기차와 몸을 맞춰 흔들어봤다. 재미있다. 어릴 땐 이러고 많이 놀았을 텐데 커 가면서 동심을 많이 잃었다.


 

  밥 먹고 앉아서 글을 쓰고 있는데 슬슬 배가 아프기 시작했다. 맥북을 가방에 넣고 휴지를 들고 화장실로 갔다. 문을 잠그고 변기 밑을 봤는데 철길이었다.  변을 보자마자 바로 철길로 뚝 떨어졌다. 자세를 잡고 바닥을 보는데 철길이 보이면서 바람이 엉덩이를 때린다. 기분이 참 묘하다. 인도 사람들은 휴지를 안 쓰고 물로 닦다 보니 화장실에는 휴지는 없고 물만 있었다. 그래서 인도 사람이 바로 쓴 화장실에 들어가면 화장실 바닥이 물로 흥건하다.


동그란 구멍에 바로 철길이 보입니다.


 

  다시 자리로 돌아와 노트북을 켜고 이어폰을 꽂았다. 흔들리는 인도 기차 안에서 ‘FT아일랜드 - 행복합니다’ 노래를 들으면서 글을 썼다. 이 기분은 경험하지 않은 사람 아니면 전혀 기분을 모를 것이다. 너무 흥에 취해 혼자 고개를 흔들면서 조용히 따라 불렀다. 어느 클럽 부럽지 않았다. 글을 다 쓰고 누우니 저녁 11시가 됐다. 하루 종일 기차 안에 있었지만 5성급 호텔 부럽지 않았다.


 


 From. Toronto

Instagram : Jooho92

- 인스타그램에 인도 사진, 기록들 많이 있습니다.


 

2AC 4인실
밤에 잠안올때 글쓰기
맛있어요! 약간 카레 볶음밥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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