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슬 Jul 31. 2022

여름방학, 푸르고 달콤한


아이의 여름방학이 시작되었다.


책을 읽거나, 혼자 산책을 하고 싶다던가, 친구를 만나고 싶다는 마음 내지 문득 솟구치는 기분, 이 같은 온갖 나의 욕구를 제쳐두고 일주일 동안 아이의 방학 생활에 집중하고 있다. 열대어를 보고 싶다는 아이를 차에 태워 왕복 4시간 걸리는 수족관에도 다녀오고, 여기저기 여름 나무들 사이에서 온종일 매미 허물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아이가 6살이 되니 함께 다니기가 한결 편해졌고, 본인이 아는 온갖 곤충들을 설명해주거나 힘껏 노래 불러주는 아이 덕분에 장거리 운전도 별로 힘들지 않다. 무엇보다 아이가 하루 종일 무척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다. 내가 산타클로스가 된 것 같다. 그래서 폭염 속 외출도 그리 망설여지지 않는다. 이쯤 되니 나도 신이 나서 '내일은 어디로 가볼까' 둘이서 신나게 고민하다가 잠이 드는 요즘이다.


아이가  5세가 되도록 이렇게 한눈팔지 않고(?) 놀아준 적이 있었던가. 어떻게든 아이와 노는 시간을 줄여서 혼자 놀러 나가기 바빴던 나는 여전히 아이와 노는 것이 서툴다. 아이와  준비가 안된 엄마라고 해야 할까. 여름날  속에 모기가 이렇게 많은  모르고 생태공원에 데리고  신나게 놀다가 아이의 종아리에 모기 물린 자국들을 뒤늦게 발견했다. 약이 없어서 지나가던 다른 아이의 엄마가 우리 아이에게 약을 빌려주기도 했다. 모자도 없이  속의 땡볕을 걷고 있는  우리  뿐이었다. 하루 종일 신나게 놀다가 배고프다는 아이의 말에 정신을 차려보니 오전 10시에 집에서 나와 오후 5시가 되도록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닫기도 했다. 아무튼 대책 없이 무작정 즐거운 여름날이다.


지금이나 그때나 아이들의 여름방학은 모기들에게 포식의 시즌이었던걸까. 시골 외갓집에서 방학을 보내던 어린 시절의 나도 온몸에 모기 자국이 많았다. 그 자국을 보고 난처해하던 외할머니의 얼굴이 생각난다. 나는 그때 하루 종일 실컷 잘 놀다가 저녁만 되면 엄마아빠가 보고 싶다며 이부자리에 앉아 울었는데, 그때 함께 울상이 되어 우리를 쳐다보던 까무잡잡한 할머니의 주름살이 떠오른다. 나와 동생이 울면 할머니는 곧장 부엌으로 가서 하얀 설탕을 퍼오셨고, 그걸 먹으면 무서운 꿈을 꾸지 않을 거라고 우리를 달래셨다. 그렇게 한입 가득 하얀 설탕을 스르륵 녹여먹으며 잠을 청했던 많은 밤들. 달콤한 꿈을 꾸지 않는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한 감미로운 여름밤이었다. 그때 나는 정말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서 울었던 걸까, 달콤한 설탕을 기대하며 투정을 부린 거였을까. 한낮의 열기가 한밤의 모기장에까지 숨어있던 시골 외갓집에서의 여름방학은 낡은 숟가락 위에 소복한 설탕처럼 달콤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모기에 뜯겨 진물이 맺힌 작은 종아리를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이 나무, 저 나무 뛰어다니는 내 아이의 모습을 본다. 땀이 뻘뻘 흐르니 가뜩이나 마른 몸이 더 말라 보인다. 저 아이에게 오늘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곤충이며, 물고기며, 보여주고 싶은 것이 많아 함께 뛰어다니긴 했지만, 사실 이 여름방학에 가장 크게 경험하도록 해주고 싶었던 것은 '더운 여름'이었다. 뜨거운 햇살 아래에서 더 자신 있게 두꺼워지는 초록 잎사귀들처럼, 땀이 쏟아지는 것도 잠시 잊고 흙 위의 작은 곤충에 집중하는 작은 뒷모습이 아름답다. 나의 이 아름다운 나무가 더운 날에는 더워하고, 추운 날에는 추워하는 존재로 모든 계절을 온전히 느끼며 살아가길 조용히 기도한다.


그리고 나를 위한 기도도 덧붙여본다. 여전히 이어지는 열대야의 오늘 밤, 할머니의 설탕을 제비처럼 받아먹는 달콤한 꿈을 선물 받을 수 있기를.

매거진의 이전글 부모의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