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후의 나에게,
그래서 너는 이제 좀 알게 되었니? 주어진 상황 속에서 내가 바꿀 수 있는 건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을. 환경을 바꿀 수 없으니 그저 이 안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현명한 노력이라는 것을. 삶은 모든 것을 다 주지 않는다는 것도.
가만히 앉아서 밥을 먹고 있었어. 아이가 다가와서 내 티셔츠를 잡아당기기 시작했지. 이미 목이 늘어나서 망가질 대로 망가진 티셔츠야. 아이들이 내 인생을 잡아당겨. 그렇게 나를 주저앉힌다는 생각을 종종 하며 살아. 아니, 자주 하며 살아. 나는 나아가고 싶어서 안간힘을 쓰는데 잡아 앉히는 힘도 만만치 않아서 목이 자꾸 늘어나. 잡아당기는 힘과 나아가려는 힘이 팽팽하고 그 사이에 불행이 조금씩 자라. 그러다가 어느 날 인생을 돌아봤을 때 이 시절을 망가진 티셔츠처럼 여길까 봐 그것도 겁이 나. 넌 이날들을 어떻게 여기고 있니?
'나를 망치러 온 구원자'
영화 <아가씨>에 나오는 이 대사 위에서 내 아이들의 얼굴을 떠올려. 내 발목에 대롱대롱 매달려 나를 올려다보는 두 얼굴은 지금까지 살아온 내 인생의 방식을 망가뜨리고 있어. 다른 어딘가로 나아가지 말고 그냥 '지금'을 살라며 그것이 곧 행복이라는 구원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보내고 있지. 구원의 손길을 애써 뿌리치고 불행의 길을 선택하는 불쌍한 중생은 바로 나야. 알고 있지만 변하는 게 어려워.
두려워.
너는 이날들을 그리워하고 있을까. 내 티셔츠를 잡아당긴 야무진 손이 끝내 내 시간을 손에 넣는 목표를 달성하자 방실방실 웃는 작은 얼굴, "조금만 기다려", "이따가 하자" 말하는 뒷모습을 큰 인내심으로 오래 기다린 후 결국 내 얼굴을 보고 팡 터지던 반가운 미소. 어쩌면 이제 그 얼굴을 하는 사람은 아이들이 아니라 내가 되어있을지도 모르겠다. 10년 후, 그토록 원하던 내 세계를 자유롭게 가꾸면서도 혹시 시원섭섭한 마음으로 자꾸 힐끗거리게 될까. 전진을 갈구하던 욕구와 영원을 꿈꾸던 행복의 순간, 그 속에 아이들의 살 냄새 가득한 목 늘어진 티셔츠를.
바로 지금을, 그리워하게 될까.
- 어딘가, 여기의 행복을 찾고 싶은
오늘의 나로부터
30. 행복이란 상대적이라는 걸 배웠지?
31. 그건 아주 좋을 때와 아주 나쁠 때
그 두 경우 가운데쯤에서 가장 잘 자란단다.
- <100 인생 그림책>, 하이케 팔러/발레리오 비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