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외국 스타일
“띠디디디–”
알람 소리가 꿈에서 현실로 나를 잡아당긴다.
아직 해가 뜨지 않은 새벽, 남편이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나선다. 본인이 움직이지 않으면 생활이 멈춘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늦은 밤이 되어서야 지친 얼굴로 현관문을 밟는다. 아내는 어린아이 둘을 눈으로, 몸으로 좇으며 하루를 보낸다. 본인이 아니면 아이를 맡길 곳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누구나 정치며, 경제를 따져가며 큰 소리로 자신의 상황을 떠들고 싶은 생각은 없을 것이다. 이미 지쳐버린 생활 속에 그럴 에너지조차 남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해외로 나가면 현실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 생각은 결혼 전, 직장을 다닐 때부터 떠올랐다.
높은 임금,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마당 있는 집, 맛있는 음식. 외국 생활은 곧 ‘행복의 나라’ 일 거라 생각했다. 그 행복의 나라에서 멋지게 커리어우먼으로 살아가는 외국 스타일의 '나'를 그려보곤 했다.
외국 생활을 해 본 남편은 그 상상은 '비현실'적이라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이유로 우리는 짐을 싸서 떠났고, 이제는 '현실적'인 시선으로 외국(뉴질랜드)에서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됐다.
지금의 나는 얼마나 현실적으로 살고 있을까, 나는 외국 스타일이 맞을까.
[일-X] 한국에서는 반듯한 세미정장을 입고, 또각거리는 힐을 신었다. 나이가 어린것도 있었지만 그게 하나의 내 자신감을 표현하는 방법이었다.
이 나라의 직장생활은 단정하지만 편안함이 더 중요시된다. 신발상자 안에 조용히 누워있는 힐을 한 번도 꺼내본 적이 없다. 한국 회사 분위기가 더 익숙한 나에게 이곳의 '남의 눈치 안 보는 시선', 업무에서의 '개인 성향'은 아직도 어색하다.
[집-O] 마당 있는 집을 꿈꿔왔다. 현재 집 마당이 있다. 꿈을 이뤘다고 생각했다면 맞을까? 한국의 대부분이 아파트에 사는 것처럼 이 나라는 마당 있는 하우스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잔디를 밀어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마당의 꽃, 흙내음, 책을 읽을 수 있는 야외 공간이 참 좋다.
[음식-X] 해외에 나갈 때 컵라면을 들고 가는 이유는 다른 나라 음식이 입에 안 맞을 때 먹기 위해서다. 칼칼함 한 발자국 뒤에서 따라오는 개운함과 든든함. 한국 음식은 식습관이자 추억이다. 여전히 한국 음식을 찾아가거나 직접 만들어 먹는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흘러도 음식만큼은 한국 스타일을 유지할 것 같다.
[문화-O] 시간이 흐르면서 정말 많이 배웠고, 변한 것이 문화다. 100% 흡수될 수는 없지만 문화를 통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조금씩 닮아간다. 길에서 마주치면 웃으며 인사하는 것. 요청한 서류나 주문한 음식이 오래 걸려도 기다리는 것. 문이나 엘리베이터 이용 시 항상 양보하는 것. Thank you와 Sorry를 입에 달고 사는 것 등. 이해되지 않았던 문화가 서서히 스며들면서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내가 먼저 웃으며 인사하고, 양보를 하는 것이 이제는 자연스럽다.
“해외로 나가면 현실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그 질문에 이제 대답할 수 있다.
문화는 달라져도 현실은 크게 달라지지는 않는다. 높은 임금에는 높은 물가가 있었고, 마당 있는 집은 그만큼의 관리가 필요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크고 작은 문제와 모습이 모두 똑같았다.
어디나 세상이 똑같다면 내가 이곳을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경제적인 만족은 덜하지만 환경적인 만족감이 크다. 아이들이 뛰노는 잔디, 어디서든 흙내음이 나는 깨끗한 공기, 파란 물감을 막 물에 떨어트린 듯한 푸른 바다와 반짝이는 나뭇잎들.
단순히 멋질 것이라 생각했던 해외생활에 특별한 것은 없었다.
행복의 나라인 줄로 알았지만 그것은 겪어보지 않은 이의 상상 속 이야기였다. 남편은 아침마다 출근을 하고, 아이들은 학교로 향한다. 옆 집에는 친절한 이웃과 큰 개가 산다. 일주일에 한 번 분리수거를 하고, 가족들과 식사를 하며 살아간다.
결국, 같은 생활.
해외도, 국내도 아닌 내가 서 있는 그 자리가 가장 행복한 자리였다. 이제 나는 더 이상 행복의 나라를 꿈꾸지 않는다. 현재에 충실하고, 현실을 살아간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가장 행복한 순간을 사는 것이다.
해외생활 Tip,
외국 스타일은 중요하지 않았다.
내가 있는 그 어디에서든 ‘얼마나 나답게 행복하게 사느냐’가 더 중요하다.
그동안 [외국 스타일인 줄 알고 착각!]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또 다른 이야기로 연재를 시작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