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ool Lockdown
10:35 AM
‘지잉-’
손목에 차고 있던 시계가 울린다. 마시던 커피잔을 내려놓으며 시계를 확인한다. 학교앱 밑으로 보이는 제목.
‘뭐…? Lockdown? 아이는 학교에 있는데, 왜?‘ 손목을 그대로 든 채, 몸이 얼어버렸다.
“괜찮아요?”
글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있던 중 끊겨버린 대화. 그렇게 얼어버린 모습을 본 상대가 물었다.
아이 학교가 락다운됐데요…
총기가 합법인 나라에 살면 종종 듣게 되는 단어. 무섭고 답답함을 가득 담은 단어. 그 단어는 종종 뉴스를 통해 보이고, 들린다. ‘무고한 아이들을 공격하는 잔인한 동물’과 맞서야 하는 느낌의 단어.
락다운 알림이 울림과 동시에 메시지가 온다.
Do Not이라는 부분이 진하고 굵게 표시되어 있다.
학교 오지 말 것,
전화하지 말 것,
해지되면 연락하겠음.
부모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봉쇄가 해지될 때까지 그저 애타게 기다려야 한다.
‘혹시,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무서운 상상이 들기 전,
지잉-
손목이 한차례 더 울린다. 남편의 전화다.
“락다운 메일 봤지? 뉴스에 나왔어. 학교가 아니라 근처에서 일이 생겼나 봐. 확인해 봐 “
전화를 끊자마자 뉴스 사이트를 연결했다. 영상에서는 도로를 막은 경찰차들이 눈부시게 사이렌을 울리고 있었다. 뒤로 보이는 배경이 너무 익숙해서 화가 치밀어 올랐다.
커피잔을 내려놓고 말했다.
“잠깐 걸을까요?”
학교에는 갈 수 없었다. 집에 가면 엄청난 상상이 나를 위협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원을 한 바퀴 돌아볼까 일어섰다. 원래라면 파란 하늘에 초록 잔디가 나를 위로해 주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아무것도 나를 위로할 수도, 안심시킬 수도 없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차 안에는 듣는 이 없이 혼자 떠드는 라디오와 한숨 소리만 가득 차 있다.
‘큰 일이라면 도로를 막았을 거고, 별 일 아니면 괜찮을 거야. 괜찮으면 더 이상 상상하지도, 불안해하지도 말자.’
학교 앞 큰 길이 조용하다. 평소처럼 차량이동이 수월하다. 마음을 진정시키며 돌아서 가려고 후문 쪽으로 돌았는데 경찰차들이 길을 막고 있다. 아이가 있는 건물을 끼고돌아 나간다.
흐린 날씨에 삭막해 보이는 학교 모습, 오늘따라 더 조용하다.
‘후우. 학교 안에 있는 아이들. 얼마나 불안할까.‘
긴장감이 온몸을 감싼 채 집으로 돌아왔다. 아무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글도 쓰지 못했고, 점심을 먹지도 못했다. 뉴스만 확인할 뿐이다. 여차 싶으면 학교 앞으로 달려갈 생각만 한다.
시간이 흐르고 1시가 넘자 메일이 울린다.
[Out of Lockdown]
‘하아-’
가슴에 차 있던 불안이 입 밖으로 터져 나온다. 뉴스를 확인하니 경찰과 대치하던 범인이 잡혔다.
학교는 일상으로 돌아갔고, 아이는 하교를 할 수 있었다.
"괜찮아?" 아이에게 보낸 질문의 대답이 학교가 끝나서야 도착했다.
‘네.’
이 짧은 한마디가 나를 뭉클하게 만들었다. 다시 만난 아이의 눈가가 붉어진다.
‘얼마나 놀랐을까. 다시 만나 다행이야.’
이 날만큼은 외국에서의 생활이 후회되는 날이었다. 아무리 총기 소유에 관한 자격을 타이트하게 세운다지만 허가가 막히지 않는 한 또 반복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컬러풀하던 일상이 갑자기 흑백으로 변하는 일은 인생의 자연스러운 장면이기에 피할 수 없다. 우리는 그런 일들을 때로는 사건이라고, 때로는 사고라고 부른다. 아침부터 투닥거렸던 아이와 나. 그제야 투닥거림을 포함한 나의 일상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깨달았다.
혼란과 불안 속에서 발견한 것은 변치 않는 일상의 소중함이다. 해외, 국내 있는 장소를 떠나 그저 평범한 일상의 가족.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소중하다. 오늘의 순간이 곧 삶의 의미임을, 비로소 깨닫는다.
해외 생활 Tip, 외국에 살다 보면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
자존감, 안전함, 행복함 등 내면에서 느껴지는 것들이 더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