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에서 혼자 한 이사
이사를 했다.
고작 차로 3분 거리만큼의 이동이었다. 그런데 이사 업체에서 부른 값이 일반적인 예상을 뛰어넘었다.
"그리고 그곳은 저희 업체와 거리가 있어 주유비가 더 추가됩니다." 전화기 너머의 직원이 말했다.
"그리고..."
'그리고'가 계속 더해진다. '그리고'라는 말이 무서워지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현재 뉴질랜드 최저임금은 NZ$23.50(약 19,000원)이다. 경력자 같은 경우엔 +a. 직원들이 업무 도중 잠시 쉬는 것(화장실, 담배, 커피) 모두 시급에 포함이다. 직원의 수와 시간당 인건비로 계산되니 이사 비용이 비싸질 수밖에 없다. 이쯤 되면 업체 직원과 고객 간의 시간당 동상이몽이 펼쳐진다.
'네. 알겠습니다.'로 마무리하고 일단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는 가만히 집 안을 둘러본다. 거실. 주방, 방 3개, 화장실. 차고.
공간 대비 살림을 많이 두고 사는 편이 아니다.
'시간을 두고 내가... 한 번 해 볼까?'
직접 이삿짐을 싸기로 한다. 어쩌면 전화를 끊기 전 이미 결정된 사실인지도 모른다.
생필품을 제외하고 잘 사용하지 않는 그릇부터 박스에 채워 넣는다.
물건이 가득 담기지 않은 상태에서 박스를 닫아버리면, 박스를 쌓아 올릴 경우 밑에 박스가 눌려 망가질 수 있다. 따라서 물건 사이즈에 맞게 각 박스 입구를 재단해야 한다.
'드르르르륵' 칼로 박스를 자르며 생각했다.
전생에 소라게였던 것이 분명해!
소라게(Hermit Crab)
: 빈 껍질을 찾아다니며 몸에 맞는 집을 고르고 옮겨 다니는 게.
그렇다. 소라게는 몸이 자라날 때마다 새로운 껍질을 찾아 혼자 짐을 싸고, 풀며 이사를 다닌다. 그렇게 늘 이동과 적응 속에서 살아간다.
‘소라게처럼 몸에 맞는 집을 고를 때마다 이렇게 짐을 싸고, 풀러야 하는 것일까?’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동과 적응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꽤나 나와 비슷한걸?’
정답 없는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가다 보니 한숨이 새어 나온다. 잠시 쉴 겸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만들고, 가든으로 나갔다. 데크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본다.
"후-하늘색은 정말 예쁘네..."
'자연이 주는 위로'라 불리는 뉴질랜드의 환경. 지치고 힘들 때마다 파란 하늘 한번, 초록 잔디 한 번을 바라본다. 눈을 감고 코로 숨을 들이마시면 잔디와 흙이 섞인 자연의 냄새가 코로 깊숙이 들어온다.
'그래. 몸에 맞는 집 찾아야지. 그래야 내 몸도 조금 더 자라지.'
머그 바닥에서 찰랑이는 마지막 커피 한 모금을 털어 마시고 들어와 다시 재단한다. 그렇게 몇 십 번의 반복 끝에 모든 박스가 쌓였고, 차에 싣고 나르며 이사를 마쳤다.
한국에서의 이사는 무조건 ‘포장이사’였다. 포장이사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뉴질랜드에 와서는 스스로 물건을 싸고, 이사를 하고, 물건을 풀어 정리한다. 어제 포장한 박스를 오늘 풀어 제자리를 찾는다.
외국에 살면 포장이사 직원분들께 영어로 이것저것 지시하며 멋진 척할 줄 알았다. 하지만 현실은 온몸에 먼지를 묻혀가며 칼질을 하고 박스 테이프를 붙인다. 단단한 착각했던 나. 외국에서의 일상은 현실보다 더 현실이었고, 내가 직접 움직이고 감당해야 하는 일이 더욱 많았다.
그런 일상의 깨달음 속에서 경험과 시야가 조금씩 넓어지며 자리 잡아가는 것을 느낀다. 자신의 몸에 맞춰 집을 바꾸는 소라게처럼 나 역시 삶을 넓히고 그에 맞춰 성장해 나간다. 결국 이사는 단순한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내 삶의 균형을 맞추고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해외생활 Tip, 내 삶을 넓혀야 나도 그 크기만큼 성장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