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21세기에 뭐라고요? 무슨... 벌레요?!
바람이 차가워지는 계절이 다가왔다. 침대에 올라앉아 이불을 조금 두꺼운 것으로 바꿔볼까 잠시 고민해 본다.
벅벅,
'날이 건조해져서 피부가 간지러운가?'
나의 시선이 이불에서 다리로 넘어간다. 바짓단을 겉어 올려보자 벌레 물린 자국이 3개 정도 붉게 올라와있다.
‘이게 뭐지?? 모기는 아닌 것 같은데? 벅벅...‘
별일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다시 바짓단을 내리던 찰나, 아이들이 방으로 들어온다.
‘엄마. 나 여기 간지러워.’, ‘나도! 약 발라줘.’
아이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이상한 기운이 등줄기 위를 스친다. 아이들 옷을 겉어 올려보자 나와 같이 붉은 자국이 여러 개 나있다.
셜록홈스로 빙의한 듯 안경을 추켜 올리고, 눈동자를 굴려가며 가족들의 동선, 물린 시기, 위치, 모양 등을 추적해 본다. 한참을 생각해 알아낸 결과, 범인은 바로 '빈대(Bed bugs)'임을 알게 됐다.
믿기지 않았다. 아니, 사실 믿고 싶지 않았다.
백전불태(百戰不殆,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라는 말이 있듯이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롭지 않다. 하지만 나는 적을 모른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도 없다. 그런 적들을 처리해야 한다니! 작고 납작한 몸으로 밤에 몰래 기어 나와 사람의 피를 빨아먹는다는 흡혈귀 같은 녀석. 심지어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소리도 내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더 교묘하다. 한숨이 절로 나는 상황이지만 가족들을 위해 잡아야만 했다.
그렇게 나는 벌레와의 전쟁을 선포한다!
1. 모든 침구를 뜨거운 물에 삶고 햇빛에 말린다.
2. 주방 식기와 음식들을 한쪽으로 치운다.
3. 옷장과 서랍장을 모두 열고 Bomb(스프레이 약)을 터트린다.
4. 몇 시간 뒤 환기시키고 모든 것을 닦고, 정리한다.
며칠간 집을 뒤집어가며 이루어진 전쟁.
운이 좋았는지 한 번의 약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첫 해에는 말이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후에도 빈대와 벼룩의 침입은 간헐적으로 반복되었다. 어떤 해에는 스프레이 약으로도 해결되지 않아 전문 업체의 힘을 빌려야 하기도 했다.
청소기로 카펫을 밀며 이런 생각을 해봤다. 도대체 왜 한국에는 없는 벌레들이 이곳에는 아직도 있는 것일까?
한국은 낮은 겨울온도와 고층 아파트, 과거에 이루어졌던 국가적 방역, 반려동물 관리 덕분에 과거에 있었던 벌레들이 사라지거나 드물어졌다. 아주 어렸을 적 이후로는 빈대나 벼룩의 단어를 들어 본 기억이 없다.
그에 반해 뉴질랜드는 온난하면서 습한 기후, 단독주택과 카펫의 보편화, 반려동물의 높은 비율(벼룩), 전 세계 다양한 여행객 유입 등으로 벌레와의 전쟁이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결국 환경·문화·역사적 차이가 만들어낸 현실이었다.
이민 올 때까지만 해도 이런 벌레들을 만날 것이라는 생각은 0.1%도 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사라진 것은 곧 세계에서 사라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내가 있는 곳이 세상의 전부인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경험해 보지 않은 외국에서의 삶은 언제나 화려하고 멋질 것이라 상상했다. 때로는 그런 삶을 동경하기도 했다.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니, 화려함 뒤에는 빈대와 벼룩처럼 불편하고 성가신 현실이 숨어 있었다. 겉으로는 빛나 보이는 이국의 삶도, 결국은 또 다른 일상의 한 부분일 뿐이었다.
이제 조금 알 것 같다.
남에게 보이는 외국에서의 멋진 삶은 정해진 것이 아니었다. 모두가 똑같은 불편한 현실 속에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고 자연스럽게 살아기는 것이 가장 멋진 스타일의 삶이라는 것을.
외국생활 "경고", 해외를 나가면 상상 밖의 벌레를 만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