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꿈이 당신에게도 닿기를... 경희윤한약국 지승혁, 유니나 부부
홍성에 내려와 살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우리는 왜 도시가 아닌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됐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자 [우리는 이렇게]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경희윤한약국을 아세요?'
홍성읍에서 가장 번화가는 ‘홍성 명동골목’이다. 소아과부터 신경외과까지 다양한 병원이 즐비해있기에 매일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이는 곳이다. 병원이 많기에 상가 1층은 대규모 약국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런데 ‘경희윤한약국’은 주변에 병원이라고 찾아볼 수 없는 한적한 주택가 골목에 위치해 있다. 다른 사람들이 ‘젤라부’를 검색하고 찾아올 때도 이런 기분이었을까. 골목에 위치한 한약국에서 미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내가 정말 소개해 주고 싶은 부부가 있는데, 섭외까지 다 해놨으니까 만나봐.”
지난번 인터뷰했던 채정옥 작가를 통해서 ‘경희윤한약국’을 알게 됐다. 평소에도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러 종종 방문하는 골목이었는데, 그곳에 한약국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들은 어떤 이유로 이곳에서 한약국을 운영하게 됐을까? 겨울이지만 다소 포근했던 1월의 어느 날, 따스한 미소와 한약 향기가 반겨주는 ‘경희윤한약국’에서 지승혁, 유니나 부부를 만났다.
‘마당이 있는 집에서 살아보자’
두 사람은 서울에서 한약사와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낮에는 일터에서 고된 하루를 보내고 저녁이면 맥주 한잔으로 피곤함을 달랬다. 여행을 좋아했기에 시간이 될 때마다 국내외를 돌아다니며 자신들의 취향을 공유하고 미래의 모습을 이야기 나눴다. '균일한 모습의 아파트가 아니라, 직접 가꾸며 살 수 있는 우리만의 공간에서 살아보자' 여행으로 다양한 주거공간에 머물면서 두 사람의 마음은 어린 시절 추억을 품고 있는 마당이 있는 단독주택으로 향했다.
“마침 처가 부모님이 예산으로 귀촌하셔서 서울과 충남을 오가며 귀촌을 준비했어요. 천안을 시작으로 빈집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아내가 안과에 갈 일이 생겨서 우연히 홍성에 방문했는데, 혹시나 하는 마음에 부동산에 연락을 했었죠. 몇 달이 지나고 별소식이 없구나 생각하고 있을 때 연락을 받고 집을 보러 갔어요. 그때 ‘아! 이 집이구나’ 싶었습니다.(웃음)"
30살 후반, 남들과 다른 결정에 주변 사람들의 의아한 시선과 걱정도 있었지만 두 사람은 꿈꾸던 로망을 실현할 수 있었던 소중한 시기였다. 10 가구 남짓 모여 사는 작은 마을, 한적하고 여유로울 줄 알았지만 처음 해보는 주택생활에 돌봐야 할 것은 많았다. 다행히 마을 주민들의 따뜻한 관심과 도움으로 금세 마을에 마음을 붙일 수 있었다. 지금은 읍내로 이사를 나왔지만, 처음 살았던 마을을 지날 때마다 주민들에게 받았던 사랑에 가슴이 뭉클해진다고 이야기했다.
“주민분들이 저희 부모님과 비슷한 세대였는데요. 저희가 아들, 딸처럼 느껴졌을까요. 젊은 부부가 이사 온다는 소식에 신기해하면서도 많이 챙겨주셨어요. 덕분에 마을에 금방 정이 들었는데, 그만큼 이별의 아픔도 컸습니다. 저희가 이사 온 후 3번의 장례가 있었거든요.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저희를 돌봐주시던 분들인데, 받은 도움에 비해 못 챙겨드린 것 같아 마음이 아팠죠. 그때의 아쉬움과 감사한 마음에 지금까지도 마을소식을 들을 수 있는 어플을 지우지 않고 있어요. 혹시라도 다른 어르신이 돌아가시면 찾아뵙는 게 당연한 예의라고 생각해요. 혹시 시골마을로 귀촌을 생각하고 있다면, 사전에 마을 주민들과의 관계도 고민해 보면 좋을 것 같네요.”
'무엇이든 물어볼 수 있는 동네 한약국이 되고 싶어요'
홍성에서 적응기간을 마치고 2년 차 되던 해, 남장리에서 두 사람의 첫 한약국을 열었다. 한약국은 한약을 다루는 특수성 덕분에 병원 처방전에서 자유로운 편이다. 그럼에도 그때나 지금이나 유동인구가 많은 번화가가 아니라 한적한 동네 골목을 선택했다. 그 이유에 대해서 두 사람은 ‘동네 한약국’의 필요성을 이야기했다.
“남장리에 처음 한약국을 열었을 때 주민분들이 매우 반겨주셨어요.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에 약국이 없어서 간단한 감기약을 사더라도 택시나 버스를 타고 읍내로 나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던 거죠. 한약사는 한방과 양방을 같이 전공하기 때문에 약 선택에 있어서 폭이 넓은 편이에요. 동네 한약국으로써 한약을 통한 질병예방과 치료뿐만 아니라, 약의 효과상 필요한 다양한 의약품을 취급할 수 있죠."
"약도 약이지만 저희 한약국에서 가장 중요한 업무는 질병예방과 치료방법에 대한 정보전달이라고 생각합니다. 간단한 감기부터 만성질환, 난치성 질환까지 다양한 환자분들이 방문해 주시는데요. 약을 사용하지 않고도 치료할 수 있는 체질음식이나 운동법을 소개하기도 하고, 한약과 양약 및 각종 건강식품의 부작용이나 복용법을 안내하기도 하죠. 요즘에는 SNS, TV 등에서 잘못 전달되는 정보에 대해 최대한 알려드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제2의 고향이 된 홍성에서, 새로운 꿈을 꿉니다'
남장리에서 한약국을 운영할 때 코로나가 대유행을 했다. 마스크 대란 속에 경희윤한약국은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마스크 보급처였다. 코로나가 휘몰아친 이후 몸도 마음도 많이 지쳐있었다. 두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 쉬어가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홍성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주도 생각했지만, 아직 홍성에서 이루고자 하는 일들이 많이 남아있었다.
“1년 동안 재정비 시간을 가지면서 제주도 한달살이도 해보고, 다른 지역도 돌아보며 이주도 고민했었습니다. 막상 다른 지역과 비교해 보니, '홍성'은 이미 저희 마음속에 제2의 고향으로 자리 잡고 있더라고요.(웃음) 홍성은 저희 부부에게 도전의 기쁨을 알려준 곳이에요. 시골살이의 시작, 마을에서 느꼈던 안정감, 처음으로 오픈했던 한약국, 새롭게 만난 사람들... 경험과 추억이 쌓여 새로운 꿈을 꿀 수 있었기에 지금 자리에서 다시 한약국을 시작할 수 있었죠.”
서울과의 접근성, 내포신도시와 인프라 등 홍성은 충분히 발전 가능성이 높은 지역이다. 그러나 아직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찾아오거나 정착하기에 부족한 점도 많다. 그동안 여러 지역을 돌아본 두 사람은 보다 적극적인 행정 시스템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이야기했다.
“홍성이 외형적으로 빠르게 발전되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민으로 바라봤을 때 현재 모습에 안주하고 있다고 느껴져요. 홍성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청장년층의 인구유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적극적인 정책적, 행정적 지원은 사람들의 관심과 유입에 물꼬가 되어줄 수 있죠. 홍성을 검색하고 본인과 관련된 지원사업을 문의하는 과정에서 누군가 적극적으로 도와준다면 지역에 대한 진입장벽은 훨씬 낮아지고 관심도는 높아질 거예요. 그리고 저희도 이주한 후 10년 차 되어서야 홍성에 정착했다고 느끼는데, 1~2년 단발성으로 끝나는 사업이 아닌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다양한 지원이 뒷받침되면 좋겠습니다."
정책, 사업, 행정 등 사회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듯, 홍성의 변화를 위해서는 사람들의 활발한 교류와 소통이 필요하다.
“익숙함이 지속되다 보면 그 환경에 안주하게 되는 것 같아요. 저희처럼 도시에서 살다가 홍성으로 내려온 사람들이 지역을 탐구하고 영감을 얻듯이, 홍성에서 오래 사신 분들은 저희 같은 귀촌인을 만나면 영감을 받는다고 해요. 지역의 발전을 위해서 서로에게 새로운 자극을 줄 수 있는 교류의 장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홍성이 고향은 아니지만, 두 사람의 삶에 깊은 자취를 남긴 곳이다. 처음으로 꿈을 실현했던 공간이자, 지친 몸과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었던 안식처였다. 그들과 대화를 나누기 전 느꼈던 작은 동질감은 골목길에 머물지 않고 '지역을 향한 진심'으로 확장됐다. 그 마음속에는 비슷한 꿈이 자리 잡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이 홍성을 알아가고
이곳에서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기를
우리가 홍성에서 받은 따뜻한 환대를
누군가도 느낄 수 있기를
두 사람의 포근한 미소와 진심 가득한 이야기가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한약 향기가 은은하게 스며들었던 인터뷰처럼, 그들이 홍성에서 새롭게 이뤄가는 꿈이 천천히 그리고 깊이, 모두의 일상에 닿기를 바란다.
(1)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놀이터를 만드는 농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