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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함께한 시간이 우리를 이곳에 머무르게 했다

시골마을에서 삼 형제를 키우는 엄마, 노해원 작가

by 심군

홍성에 내려와 살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우리는 왜 도시가 아닌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됐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자 [우리는 이렇게]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울림이가 올해 중학생이 된다고?!’


아내의 대학교 친구 ‘해원’을 처음 만났던 건 2017년쯤이다. 당시 어린이집을 다니는 두 아이의 엄마였는데, 지금은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세 아들을 둔 엄마로 업그레이드 됐다. 6살에 만났던 첫째 울림이가 중학생이 된다는 소식이 꽤나 충격적이었다. 빠르게 지나간 나의 세월을 탓하며 의젓하게 성장한 울림이에게 ‘중학생 되지 말고, 영원히 초등학생으로 남아줘’라고 농담을 던졌다.


한편으로는 홍성에서 삼 형제를 키우는 엄마 ‘해원’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저출산과 지방소멸 문제가 화두인 오늘날, 희한하게도 주변에 다자녀를 둔 애국자들이 많다. 요즘은 자녀의 농촌유학을 위해 시골로 거주지를 옮기는 부모들도 있다고 하는데, 실제로 홍성에서 자녀를 키우는 사람들은 어떤 가치관과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했다. 아이들의 방학기간, 누구보다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는 ‘해원’과 이야기 나누기 위해 홍동면 금당리에 위치한 통나무집으로 향했다.


해원이네 가족이 사는 통나무집에 놀러 갈 때면 어디론가 모험을 떠나는 기분이다. (출처: 노해원)


완주에서 홍성으로, 읍내에서 면단위 마을로


유년시절을 충청북도, 강화도에서 보낸 ‘해원’에게 시골생활은 일상이자 당연한 삶의 배경이었다. 대학교 진학으로 처음 서울살이를 하게 됐는데, 오히려 시골생활이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계기가 됐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나는 시골에서 살겠다’고 다짐했던 결심은 결혼과 함께 빠르게 진행됐다.


“대학교 4학년, 결혼과 함께 소중한 첫 아이를 갖게 됐어요. 그 해 남편의 일자리 문제로 전라북도 완주로 이사하게 됐죠. 한해에 결혼, 출산, 귀촌을 다하게 된 셈이죠.(웃음) 3년 정도 완주에서 지내다가 남편이 홍성에서 일자리 제안을 받게 됐습니다. 남편은 풀무학교 출신이고, 저도 어릴 때 풀무학교 면접을 본 기억이 있어서 거리낌 없이 바로 홍성으로 이주하게 됐어요.” (*풀무학교는 ‘풀무농업고등기술학교’의 줄임말이다.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 소재하고 있다.)


중학생과 초등학생인 세 아들을 둔 엄마로 업그레이드된 해원(출처: 황바람)


서울에서 완주, 그리고 홍성으로 지역을 옮겨 다니며 농촌살이에 대한 ‘완벽한 이상’을 추구하지 않았다. 오히려 ‘가벼운 마음’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천천히 적응해 나갔다. 지금까지 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본인만의 노하우를 쌓아갔다.


“도시를 떠나 시골에 살면서 ‘지역살이는 어때야 한다’는 선입견은 없었어요. 단지 농촌이라는 환경이 좋았고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처음 내려갔던 완주는 귀농귀촌 관련해서 이제 막 관심을 받기 시작한 지역이었어요. 그래서인지 이주 온 사람들과 결집력이 끈끈했죠. 반면 홍성(홍동)은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농촌의 가치를 더 중요시하는 분위기였어요. 지역마다 다른 문화에 적응하는데 시간이 필요했죠. 그 과정을 통해 ‘관계’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됐어요. 지역과 사람, 모두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천천히 스며드는 것. 끈끈함 보다는 적절함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머물 수 있는 비결인 것 같아요.”


해원이 말하는 ‘지역과 사람의 관계'는 본인의 육아철학에도 자연스레 녹아 있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가벼운 마음으로 해야 건강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첫째를 임신했을 때는 제가 너무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죠. 되돌아보면 그때 너무 잘하려고 힘주지 않고 아이를 반갑게 맞이할 수 있었던 저 자신에게 훌륭했다고 말해주고 싶네요. 지금은 아이들과 경계를 두지 않고 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있어요. 아이들은 부모의 등을 보고 자란다는 말이 있듯이, 제가 좋아하는 것을 잘해나가는 모습을 보여주려고 해요. 큰 성과나 결과보다,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고 매일을 잘 살아가는 것. 아이들도 그런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


해원은 세 아이를 키우는 바쁜 환경 속에서도 귀촌하면서 경험한 일, 아이들과의 하루, 축구 동아리 이야기 등을 온라인으로 연재하고 있다.(출처: 황바람)


관계의 힘 - 함께 돌보고, 키우는 사람들


농촌이라고 해서 모든 아이들이 논밭을 뛰어놀거나 자연과 가깝게 지내는 것은 아니다. 홍성만 보더라도 내포신도시, 홍성읍, 홍동면 등 지역에 따라 교육방식, 육아환경에 차이가 있다. ‘홍동’에서 세 형제를 키우는 해원은 ‘교육의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육아의 큰 힘이 됐다고 설명했다.


“개인적으로 아이들이 어린 시절부터 과도한 경쟁에 노출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물론 대한민국 입시교육에서 시험과 성적, 경쟁은 피할 수 없겠죠. 내포와 읍내만 보더라도 많은 학원들이 즐비해있어요. 그런 환경 속에 있다 보면 자연스레 비교하게 되고 개인적인 신념도 흔들리게 되는 것 같더라고요. 반면, 홍동의 경우 ‘아이들에게 정말 중요하고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공유하는 환경과 관계가 갖춰져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좀 더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는 것 같아요.”


좋아하는 것을 열심히 좋아하고 매일을 잘 살아가는 것. 아이들도 그런 사람으로 컸으면 좋겠어요.(출처: 노해원)


교육, 편의시설, 교통 등 좋은 환경만을 쫓았다면 굳이 ‘홍성’에 머무를 이유는 없었다. 해원은 홍성(홍동)에 정착하게 된 계기에 대해 ‘장소’가 아닌 ‘시간’의 개념이 컸다고 설명했다.


“홍성이 너무 좋아서 계속 머물고 있는 건 아닌 것 같아요.(웃음) 우리답게 한 해, 두 해 살아가다 보니 가치관이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쌓이면서 우리 가족이 계속 홍성에 머물 수 있는 이유를 만들어 주는 것 같아요.”


오랜 시간 이어 온 관계의 힘은 아이들의 성장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덧붙였다.


“아이들의 경우 어린이집부터 시작된 관계가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어요. 함께 했던 시간이 긴 만큼 아이들 사이에서도 서로의 세계를 인정하고 존중해 주는 문화가 자연스레 자리 잡고 있죠. 한 사람의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바라봐주는 친구들이 있다는 것이 아이들의 삶에 큰 힘이 되어주는 것 같아요. 그런 친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게 한편으로 부럽기도 하고요.”


최근 아이들이 부족해서 홍동면 어린이집의 ‘영유아’ 반이 없어질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다. 그나마 홍동은 귀농귀촌의 메카로 알려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찾고 생활하던 지역인데, 그곳마저 지방소멸의 위험을 피해 갈 수 없는 상황이다. 내 아이와 친구들이 지역에서 온전히 살아가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의 관심과 유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농업과 농촌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지방소멸은 너무 슬픈 이야기입니다. 슬픈 일이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관심을 가져야겠죠. 도시나 시골이나 사람 사는 곳은 다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다만 이곳의 정보나 이야기를 접할 통로가 부족해서 시골생활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재미있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여러 경로를 통해서 널리 널리 알려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계속 책을 쓰고, 인터뷰를 하는 이유예요. 우리 지역에서도 재미있는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음을 알리고 더 많은 분들이 함께 했으면 좋겠어요.”


해원은 세 아이를 키우는 바쁜 환경 속에서도 귀촌하면서 경험한 일, 아이들과의 하루, 축구 동아리 이야기 등을 온라인으로 연재하고 있다. 2024년에는 브런치 작가 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하며 책 <시골, 여자, 축구>을 출판하기도 했고, 다양한 인터뷰 등을 통해 홍성에서의 재미난 일들을 외부에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하고 있다.


삼 남매 엄마, 마을 축구팀 주장, 브런치 대상 작가, 다재다능 해원 님의 하루(출처: 카카오 유튜브)


- 노해원 작가의 브런치


하루하루 아이들이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며 시간이 참 빠르다고 느껴지지만, 어쩌면 시간은 단순히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머문 자리마다 켜켜이 쌓이는 것인지도 모른다. 해원 가족이 완주를 거쳐 홍성에 자리 잡고, 한 해 두 해를 살아가며 관계를 쌓아온 것처럼 말이다.


시골살이에 대한 환상도, 두려움도 없이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삶을 묵묵히 살아가는 해원의 모습은 지역에서 머물며 아이를 키워나가는 방식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적당한 거리 속에서도 이어지는 관계, 아이들을 존중하며 함께 성장하는 환경, 그리고 자신이 사랑하는 일을 계속하는 힘. 결국, 장소가 사람을 머물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쌓아온 시간과 관계가 머물 이유가 된다.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줄어든다는 이야기가 들려오지만, 여전히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이야기를 기록하고, 새로운 시간을 쌓아가는 이들이 있다. 그런 시간들이 쌓이고 연결될 때, 이곳 역시 오래도록 이어질 수 있지 않을까.




[프롤로그] 우리는 이렇게 프롤로그

(1)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놀이터를 만드는 농부

(2) 꿈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3) 잊혀진 골목에서 가능성을 품은 공간으로

(4) 시골동네 한가운데, 한약국이 필요한 이유

(5) 함께한 시간이 우리를 이곳에 머무르게 했다

(6) 털보 아저씨의 17년간 변하지 않은 신념

(7) 탈 서울, 인 소울...당신은 무엇을 쫓는가?

(8) 도시 밖에서 청년 창업가로 살아가기

(9) 오늘을 단정히 살다 보면, 내일도 예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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