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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털보 아저씨의 17년간 변하지 않은 신념

우리의 농장을 만들어가는 중...보루와 꿈이자라는뜰

by 심군

홍성에 내려와 살면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게 됐습니다.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다가 '우리는 왜 도시가 아닌 이곳에서 살아가고 있을까?' 하는 물음을 갖게 됐습니다. 지역에서 살아가는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대화를 통해 나만의 답을 찾아가고자 [우리는 이렇게] 인터뷰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매일 아침 좁은 시골길을 따라 출근하다 보면 늘 비슷한 사람들과 마주하게 된다. 평소에 인사 나누는 사이는 아니더라도 자주 마주하다 보면 혼자만의 내적 친밀감이 생기곤 한다.


신호 건너편 파란색 다마스, 아이들과 신나게 이야기 나누는 털보 아저씨, ‘보루(최문철)’의 첫인상이다. 기억에 남는 모습이었기에 ‘어떤 분일까, 무슨 일을 할까?’ 궁금하던 찰나, 늦은 저녁 가족들과 함께 젤라부를 찾아왔다. (당시 말을 하진 않았지만, 그동안 쌓은 나만의 친밀감에 더 반가웠던 기억이 있다.)


가볍게 인사를 나누던 손님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는 단골이 됐고, 시간이 쌓이면서 서로의 기쁨을 나누고 돕는 이웃이자 친구가 됐다.


사람들이 기억하기 쉽고 부르기 수월했으면 하는 마음에 '보루'라는 애칭을 사용하고 있다.(사진: 안상균)


젤라부를 사랑하고 응원하는 마음을 알기에 보루의 가족들이 젤라부에 놀러 오는 날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편안해진다. 나 또한 고마운 마음을 표현할 방법을 고민하던 중 보루가 운영하는 ‘꿈이자라는뜰’의 연중행사인 ‘허브데이’를 알게 됐다. 행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더 달콤한 하루를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젤라또를 후원하고 있다.


꿈이자라는뜰 허브데이


‘꿈이자라는뜰(꿈뜰)’은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자기 다운 모습으로 어울리고 배울 수 있는 교육농장이다. 2009년부터 지금까지 보루는 본인만의 호흡으로 농장을 운영해 나가고 있다. 남들이 쉽게 도전하지 않는 어려운 길,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큰 의미이자 존재가 될 수 있는 그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보루의 모습이 멋있어 보였다. 따뜻한 이웃이자 포근한 미소를 가진 ‘보루’와 ‘꿈이자라는뜰’을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봄이 다가오는 2월의 어느 날 ‘꿈이자라는뜰’을 방문했다.


농장을 가꾸는 꿈뜰 식구들


보루는 정말 우연한 기회로 홍성에 방문하게 됐다. 홍성에 대해 아는 것 하나 없고 귀농귀촌에 대한 계획도 없었지만 그때 만났던 사람과 이야기가 그를 홍성으로 오게 끔 만들었다.


“2006년 6월, 대학원을 다니던 친구가 홍동으로 학습여행을 가는데 함께 가지 않겠냐고 물어보더라고요. 저희 부부는 첫 아이 출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아이가 생기기 전에 콧바람이라도 쐴 겸 동행하기로 했죠. 풀무 전공부 정원에 화사하게 핀 꽃들과 ‘홍순명’ 선생님의 강의를 듣고 막연하게 이곳에서 공부하고 생활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농장을 돌보는 보루 (사진 : 박혜정)


잠깐이었지만 홍동에서 강렬한 경험을 한 보루는 그해 겨울 ‘풀무학교 전공부’에 입학원서를 제출했다. 이주노동자를 위한 비영리기구에서 일하며 누군가를 돕는 일에 힘썼지만 한편으로는 일에 대한 회의감이 찾아왔을 때였다. 마침 다른 일을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시기에 ‘홍성’에서 그 길을 찾기로 결심했다.


“간디의 책 ‘마을이 세상을 구한다’를 읽은 후 농사로 자립하고 어디에도 휘둘리지 않고 도움을 주고받으며 살아가는 삶의 방식이 좋아 보였어요. 스스로 자립하기 위해서 우선 농사를 배워야 했고, 그래서 풀무학교 전공부에 입학하게 됐죠. 지금 돌아보면 대책이 없기도 했지만, 제가 꿈꾸는 삶의 방식을 몸소 경험해보고 싶었습니다. 당시 아내와 육아에 대해 고민하면서 서울보다 시골환경이 아이를 더 자연스럽고 인간답게 키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에 온 가족이 홍성 홍동으로 이주하게 됐죠.”


어느새 첫째는 고등학생, 둘째는 중학생이 됐다.(사진: 보루)


서울 반지하 집에서 나오며 받은 전세금과 퇴직금, 수중에 가진 것은 많지 않았지만 무모했기에 홍성을 내려올 수 있었다. 그렇기에 더 열심히 성실히 2년 동안 공부에 매진했다. 본인의 역량을 키우기 위해 도전했던 시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현실을 깨닫기도 했다.


“잔뼈가 굵은 농민들도 자립하기 어려운 구조에서 땅도 없고 자산도 없고 기술도 부족한 사람이 농사로 자립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는 걸 깨달았어요. 몸소 경험한 덕분에 현실을 깨닫게 된 셈이죠. 그때 ‘꿈이자라는뜰’을 맡아달라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서 주어진 일에,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보자는 마음으로 시작했죠.”


꿈이자라는뜰


홍동초등학교와 홍동중학교에 오랫동안 근무하던 특수교사들은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이 졸업 후 일자리 없이 집에만 머무르는 것이 안타까웠다. 장애를 지닌 청년들이 어렸을 때부터 직업능력을 키워 갔으면 하는 마음에 ‘꿈이자라는뜰’ 프로젝트가 논의되기 시작됐다. 그렇게 아이들과 마을 그리고 학교를 이어주는 담당자로 ‘보루’가 연결되어 2009년부터 지금까지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4년 정도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과 매주 만나는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발달장애 대해 조금 이해할 수 있었어요. 홍성에 내려온 후 나중에 제 농장을 갖게 되면 그곳에서 이주민과 발달장애 친구들이 함께 지내는 모습을 막연하게 상상하기도 했죠. 서울에서의 경험과 홍성에서 꿈꾸는 미래가 있었기에 꿈뜰의 제안을 더 빨리 수락했던 것 같아요. 발달장애 학생들이 정원활동을 경험하는 것으로 시작해서 지금은 방과 후 수업으로 일주일에 2시간씩 텃밭 농사를 짓는 수업으로 꾸준히 만나고 있습니다. 이 수업은 초등학교부터 고등학교까지 쭉 이어져요. 재작년부터는 학교를 다닐 때 만났던 친구들이 ‘꿈이자라는뜰’에서 다시 만나 같이 일하기 시작했죠.”


꿈이자라는뜰 텃밭 수업

‘꿈이자라는뜰’이 지금의 모습을 갖추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전용농지가 없어서 풀무학교 온실에서 신세를 지기도 하고(고마운 일), 임대문제로 7년 동안 열심히 일궜던 땅을 두고 나온 적(슬픈 일)도 있었다. 부족한 운영비를 충당하기 위해 알바를 하기도 했고 마을에서 모아준 후원금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매년 부족한 살림이지만 그렇게 1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보루가 꿈뜰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히 좋은 일이고, 필요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꿈뜰은 저만의 길을 이루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우리가 원하는 것, 공동의 목적을 만들어 운영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꿈뜰이 가진 가능성과 가치는 분명하지만 ‘먹고사는 일’로 접근한다면 답이 없는 일이죠. ‘무슨 일이든지 20년을 하면 길이 되고 길이 보인다’라는 홍순명 선생님의 조언을 새기고 꿈뜰을 시작했기에 못해도 20년은 해보자라는 마음이 있었죠."


"발달장애 청소년들이 배우는 시간은 상대적으로 느리고 더딘 편이기에 충분한 시간이 필요합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 입학 후 사회에 나오기까지 통상적으로 주어진 시간인 최소 12년 동안은 계속 이어지길 바라기도 했죠. 앞으로도 저희의 의지, 의도와 상관없이 꿈뜰이 멈추게 된다면 겸허히 받아들여야겠지만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끝까지 해보고 싶은 마음이에요.”


꿈뜰에서는 농사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꿈뜰에서는 농사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한다. 농사가 교육적 도구이자 미래 생활수단처럼 보일 수 있지만, 보루는 기술습득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의 목적은 말을 잘 듣고 기술이 뛰어난 근로자를 양성하는 것이 아니에요. ‘농사’라는 과정을 통해 장애인과 비장애인 친구들이 삶의 기술을 익혔으면 해요. 맛있는 토마토를 맛본 경험이 있다면 본인의 토마토를 더 잘 키우고 싶은 마음이 생기죠. 그래서 더 고민하고 탐구하고 잘 돌보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농사를 통해 ‘관심, 관찰, 관계, 관여’의 과정을 반복하고 연습하면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자신과 주변을 살피고 보살피는 일’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년 동안 농사를 통해 이어진 좋은 관계와 추억, 그리고 삶의 기술들은 친구들이 앞으로 나아가는데 큰 힘이 되어 준다고 믿어요.”


농사를 통해 삶의 기술을 익혔으면 해요.


꿈뜰은 현재 장애인 직원 3명과 비장애인 직원 5명이 함께 꾸려가고 있다. 수익성이 낮은 농사만으로 농장 운영비를 마련하기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지원사업과 후원이라는 개념도 있지만 단순히 홍보성으로 비치거나 일방적인 관계에 따른 어려움 때문에 균형을 맞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힘든 점이 있다면 경제적 안정성이 크죠. 생산성 낮은 인력으로 수익성 낮은 농사를 짓다 보니 매년 운영비를 마련하는 게 쉽지 않네요. 외부에서 도움을 받기도 하지만 너무 의존하지 않고 내부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장애라는 이슈를 이용하거나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요. 외부지원에 의존하게 되면 상하관계가 생기기도 하고 일방적인 방향으로 관계가 흐르기도 하더라고요. 꿈뜰은 있는 그대로의 존재만으로 인정받고 싶습니다. 홍보의 가치나 쓸모의 여부를 뛰어넘어 보고 싶어요. 상적이고 낭만적이고 불가능한 이야기로 들리실지도 몰라요. 하지만, 필요에 의한 관계이기 이전에 서로를 이해하는 친구가 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잘났든 못났든 서로의 관계가 우선시되어야, 도움을 주고받는데 진정한 의미가 있겠죠.


꿈뜰에서 진행하는 책 모임


보루는 홍성에 살아가며 개선되어야 할 점과 필요한 부분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었다. 단기적인 성과나 유행에 편승되지 말고 홍성이 가지고 있는 지역성과 독창성을 반영한 장기적인 정책 수립이 필요하고 더 나아가 ‘다양성과 안정성이 공존하는 곳’이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어린이, 여성, 노인, 장애인, 이주민 등 소수자들이 안전하고 건강하게 살 수 있는 지역이라면 모든 사람들에게 정주하기 좋은 곳일 거예요. 간혹 농촌 마을 활성화를 명목으로 대규모 자본이 투입되곤 하는데, 건물만 짓고 끝나는 등 비효율적이고 단기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지금의 모습을 봤을 때 기존방식으로는 농촌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양한 세대가 정주할 수 있고, 소수자들도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실험적이고 창의적인 정책도 추진되면 좋겠네요.”


사진: 박혜정


30대 대책 없이 홍성에 내려왔다던 청년은 새로운 친구들을 만들고 공간을 꾸미고 함께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며 어느덧 40대가 되었다. 처음에는 막연한 이상과 도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현실 속에서 의미를 찾으며 한 발 한 발 나아가고 있다.


"신영복 선생님의 '작은 숲' 이야기처럼 결과나 변화에 큰 의미를 두기보다는 작은 숲을 만드는 과정을 즐기려고 해요. 웬만해서는 바뀌지 않을 결과와 절망적인 구조 때문에 불안과 걱정이 찾아올 때도 있지만,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고 동료들과 즐겁게 지내면서 우리만의 돌파구를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꿈이자라는뜰 2024 총회


보루는 여전히 꿈뜰에서 아이들과 함께 땀을 흘리고, 농사를 짓고,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 ‘누군가의 삶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의미가 있다’는 그의 신념은 흔들리지 않았다. 17년이라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그가 지키고 싶은 가치는 여전히 선명하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보루의 동료들과 ‘꿈이 자라는 뜰’의 이야기는 따뜻한 온기로 다가온다. 홍성에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가는 보루처럼, 각자의 자리에서 의미 있는 변화를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더 많아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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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우리는 이렇게 프롤로그

(1) 포기하지 않기 위해 나만의 놀이터를 만드는 농부

(2) 꿈의 바탕을 만들어주는 어른이 되고 싶어요

(3) 잊혀진 골목에서 가능성을 품은 공간으로

(4) 시골동네 한가운데, 한약국이 필요한 이유

(5) 함께한 시간이 우리를 이곳에 머무르게 했다

(6) 털보 아저씨의 17년간 변하지 않은 신념

(7) 탈 서울, 인 소울...당신은 무엇을 쫓는가?

(8) 도시 밖에서 청년 창업가로 살아가기

(9) 오늘을 단정히 살다 보면, 내일도 예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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