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OECD에서 이메일이 왔다
몇 주 전, 파리에서 연락이 왔다. 내가 정말 가고 싶은 직장이 있는데, 자리가 열리기만 하면 복권 사듯이 지원서를 넣었던 게 어딘가 쌓여있었나 보다. 나는 설렘으로 가득 차올랐다.
사람이 살면서 파리에 살아볼 수 있는 기회는 과연 얼마나 될까. 12년 전에 파리에 간 적이 있다. 비록 패키지여행으로 루브르 박물관과 베르사유 궁전을 30분 만에 보고 오는 바람에 여행을 했다고 할 수도 없지만 말이다. 이것이 오히려 나에게 파리에 대한 깊은 사랑과 환상을 심어줬을지도 모른다.
여행과 삶은 다르다. 가장 행복한 해외여행은 딱 한 달 정도이다.
한 달이 넘어가면 흔히 얘기하는 ‘허니문 기간’이 끝나고 진짜 일상생활이 시작된다. 나는 미국 위스콘신에서 학부를 다니며 3년을 살았는데, 그곳을 마냥 행복하고 즐거운 동네로 기억할 수 없다. 곳곳에 겪었던 고생이 묻어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졸업하기 전 엄마가 미국으로 와 함께 한 달을 살았는데, 엄마는 아직도 위스콘신을 최고의 여행지로 꼽는다. 넓은 호수 앞 잔디밭에서 아무 눈치 보지 않고 누워서 아이스크림을 먹었던 기억이 너무 좋았다고 한다. 엄마는 그 호수에 얼마나 추운 겨울바람이 부는지 모른다. 잔디밭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먹을 수 있는 계절은 굉장히 짧은데 그게 기말고사 기간이라는 것도. 엄마는 학교 앞 푸드트럭에서 말이 안 통해서 스프링롤을 두 개나 시킨 일을 깔깔대며 얘기한다. 나는 모자란 영어실력으로 미국인 친구들 사이에 절대 끼지 못했던 내 모습이 떠올라 괴롭다.
파리에 가는 것은 좋은 선택일까?
나는 또다시 나 자신을 괴로움에 집어넣는 꼴일지도 모른다. 햇볕도 들지 않는 작은 방에 부엌과 화장실을 나눠쓰고, 불어를 못해 전전긍긍하며, 가족과 친구들을 그리워해야 하는 곳. 환상을 다 잠재우고 기대가 되지 않는 상태가 되어서야 나는 파리에 가는 조건을 세웠다. 첫째, 직장의 타임라인에 나를 맞추지 않는다. 둘째, 두 달에 한 번은 한국을 들어온다. 나는 이제 흥분도 좌절도 하지 않을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