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ul Oct 27. 2022

10. 가족

어느날 아빠가 천만원을 달라고 했다


퇴사하고 며칠 후 퇴직금이 입금되었다. 통장을 확인하며, 나는 고민에 빠졌다. 몇 달 전 아빠와 한 대화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너 적금 모아서 아빠 천만 원 주기로 했잖아.”

“내가?”


그날 나는 차 뒤편에서 창문을 열고 밤바람을 맞으며 조용히 눈물을 훔쳤다. 그냥 서러워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상한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미국 대학에 간 게 잘못인가? 나는 언제까지 갚아야하지? 유학자금 2억 갚을 때까지? 그냥 이번에 천만 원 주고 연을 끊을까?’ 참고로 나는 부모님과 사이가 좋지만, 이런 평범한 가족에게도 돈은 문제를 일으킨다. 혼자 조용히 천만 원을 내던지고 연을 끊자는 결론을 내렸다. 적금 만기일만을 기다리며 어둠 속에서 소심하게 칼을 갈고 분노하며.


하지만 그날 이후 아무도 내 천만 원에 관심을 갖지 않았다. 나만 빼고.


우선은 내가 정말로 아빠에게 천만 원을 주기로 말했는지 증거 확보가 필요했다. 창고에서 다이어리를 꺼냈다. ‘아빠 천만 원.’ 아뿔싸! 나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증거를 확보하고 말았다. 처음엔 작았던 분노가 점점 커졌다. 왜 부모님들은 자식들에게 양육비를 청구 받으며 그것을 자랑스러워할까?


며칠 감정을 정리한 후, 나름 어른스럽게 아빠에게 커피타임을 신청했다. 


대화를 시작하고 얼마 되지 않아 아빠는 말했다. “언제 그랬지? 아, 그냥 네가 그렇게 얘기했었다고 말한 거야.” 그 말에 나는 애처럼 와락 눈물을 쏟았다. 


내 말을 다 듣고 난 후, 아빠는 내가 이렇게 생각하는지 몰랐다고 말했다. 그리고 너에게 그렇게 말한 것을 후회한다고. 네가 경제관념을 가지고 살길 바랐을 뿐. 자유롭게 살라고. 자식이 부모에게 갚아야 할 돈은 없다며. 자유라는 말이 이렇게도 와닿는 단어였던가. 아빠가 말했다. “아빠의 사랑을 오해하지 말길 바래.”


한 지붕 아래 사는 가족도 대화가 필요하다. 부모의 잔소리를 오해하지 않으려면, 입을 꾹 닫은 아이의 속마음을 들으려면, 서로의 의도가 사랑임을 확인하려면 말이다.


27년 전 아빠와 나




이전 09화 9. 해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