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꼬다리는 사랑니 빼러 갈 시간이 없습니다
사랑니를 뽑았다.
18살 때쯤 났으니 장장 10년이 걸린 셈이다. 날 때도 별로 아프지 않았고 어쩌면 뽑지 않을 수도 있겠다 기대했다. 하지만 대학에 와서는 조금 불편해져 한국에 가서 빼야지 생각했으나, 정작 한국에 오면 사랑니는 우선순위에서 저만치 밀려버렸다. 그러다 일을 시작했고, 나에게선 얌전한 사랑니를 빼러 치과에 갈 시간은 사라졌다.
직장을 다니기 시작하면 좀체 자신을 돌볼 시간이 사라진다. 누구 눈치 볼일 없는 연차 정도가 되면 모를까, 나 같은 막내는 응급상황이 아닌 자그마한 불편사항 정도는 으레 무시하고 넘어가야 했다. 은행 업무를 보려면 점심을 거르고 자전거를 타고 빠르게 달려가 은행 번호표를 뽑고 앉아야 점심시간 안에 돌아올 수 있었다. 어느 고객센터에서 걸려온 전화도 점심시간에 다시 전화를 하면 그들도 점심을 먹느라 연결이 되지 않는다. 미용실에서 머리를 할 때 가장 최우선으로 고민하는 것은 매일 아침 빠르게 손질이 가능한지, 그리고 오랫동안 미용실을 가지 않아도 괜찮은 지이다. 하루는 큰 뾰루지가 나서 퇴근 후 허겁지겁 피부과로 출발했지만 8시 야간 진료 시간까지 도착하지 못했다.
나는 백수가 되고 나서야 그동안 하고 싶었던 아주 짧은 숏컷을 하고, 피부과를 정기적으로 다니며, 점심을 먹고 난 후 은행 업무도 볼 수 있게 되었고, 고객센터에서 걸려오는 광고 전화도 느긋한 마음을 가지고 들어주었고, 사랑니를 뽑으러 갈 수도 있게 되었다. 치과 의자에 앉아 가만히 내 차례를 기다리는데 문득 치열했던 20대가 떠올랐다. 사랑니 같은 덜 중요한 일들에 내어주지 못했던 마음과 시간.
신경에 닿아있는 오른쪽 아래 사랑니를 뽑느라 한바탕 고생한 의사선생님은 나에게 “오늘은 꼭 푹 쉬세요.”라고 말하고 어깨를 두 번 토닥였다. 그 말에 굳었던 어깨가 풀렸다. 누군가 나에게 합법적으로 쉼을 허락한 기분이었다. 나는 그 말을 안고 간만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지금까지 치열하게 사느라 고생했어요. 오늘은 꼭 푹 쉬세요. 당신은 그럴 자격이 충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