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학기 개강 준비
졸업 후 가족 여행하고 친구 결혼식을 다녀오고 한국에 잠시 갔다가 오니 7월이 되어 있다. 박사 졸업 후 기한 있는 백수 생활은 여유로움과 무료함 그 중간쯤을 왔다 갔다 한다. 아들이 걱정돼서 잠시 나간 한국에서의 열흘은 눈코 뜰 새 없이 바빴고, 친구 한 명 빼고는 연고가 아무도 없는 미국 포틀랜드에서는 처음에는 새로운 곳에서의 즐거움, 시간이 조금 지난 후에는 무료함, 지루함, 무기력함, 외로움, 여유로움을 모두 느끼며 시간이 지나갔다.
가을학기 시작할 인디애나에 있는 작은 주립대에서 캠퍼스 방문을 초대해 줬는데 이제야 교수진들과 시간이 맞아서 가게 되었다. 인디애나폴리스 공항에서 1시간 15분 정도 운전하면 위치한 인구 65,000명 정도의 작은 시골 캠퍼스 타운으로 향했다. 미국에서 공항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마을에 살아보는 것은 처음이다. 포틀랜드와 인디애나폴리스는 직항이 없어서 이번 여행은 굉장히 피곤했다. 동부로 향하는 비행기는 대부분 밤비행기 (Red eye flight)라서 밤 10시 정도 갈아탔는데, 3시간 시차가 있어서 새벽 2시에 도착하면 동부시각은 이미 새벽 5시이다.
새벽 5시 공항 렌터카센터도 문을 열지 않았고 그나마 오픈한 곳에는 차가 없다. 온라인으로 검색하다가 Turo (Peer-to-peer rental car service platform, 렌터카의 에어비앤비 같은 플랫폼)를 처음 이용해 봤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이용하기 편했다. 놀랍게도 차주는 공항 주차장에 차를 놓고 차 뒷번호판에 키를 끼워놓고 주차비를 현금으로 컵홀더에 넣어놓았다. 서부 대도시 LA나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진작에 차가 도난당하던지 현금이 보이는 즉시 창문이 깨졌을 텐데 이곳은 중부 시골이라서 그런지 아무 일이 없는 것이 신기하다.
그렇게 차를 갖고 운전해서 호텔에 아침 7시 즈음 도착했는데 이렇게 아침 일찍 체크인을 해줘서 또 놀랐다. 도시에서 경험하기 힘든 혜택들이다. 작은 동네에 위치한 캠퍼스에서 학과장(Department Chair)과의 오전 미팅을 했다. 내 사무실 키를 받아 가보니 벌써 "Dr." 이름이 새겨진 오피스와 노트북을 준비해 주었다. 캠퍼스에서 ID를 픽업하고 이제 살아야 할 아파트는 찾으러 갔다 (Apartment hunting).
미국은 워낙 크다 보니 이사를 생각만 해도 스트레스를 받는다. 포틀랜드에서 이곳 인디애나 학교까지 운전하려면 꼬박 36시간을 운전해야 하므로 혼자 이동할 엄두가 나지 않는 거리다. 서부와 동부 시차도 3시간이다. 약 한 달 전부터 하나씩 차근차근 준비해 가야 한다. 우선 제일 중요한 것은 "어디서 살 것인가"이다. 너무 일찍 아파트를 보면 그전에 매물이 나가고, 너무 늦게 알아보면 매물이 없다. 캠퍼스 타운이라 7월에는 이미 매물이 별로 없지만 7월 초 알아보고 중순에 계약해야 8월에 이사할 수 있다.
작은 시골 동네는 신축 건물이 별로 없다. 미국에서 아파트를 찾으려면 여러 개의 플랫폼을 열어놓고 검색해 본다. Apartments.com; Padmapper apartment, Zillow rentals, Hotpads, Rent.Apartments 등 여러 개가 있는데 Apartments.com 이 제일 보기 편했다. 오기 전에 미리 투어를 신청해 놓고 직접 확인했다. 동네 위치를 확인하고, 나에게는 제일 중요한 것은 세탁기와 건조기가 꼭 집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오래된 아파트들은 공유하게 되어 있는 곳이 많다. 작은 시골 캠퍼스 타운이라 그런지 학교 임직원들에게 할인 혜택을 주었다. 이틀 동안 6군데 정도를 다녀보고 한 곳에 마음을 정했다. 출장 후에 온라인으로 Application을 넣고 승인이 되면 입주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두 번째는 이삿짐을 어떻게 부치느냐이다. 차를 부치면 100파운드 (45kg) 정도를 차 안에 넣어서 보낼 수 있고 추가적인 100파운드당 100달러를 내서 부칠 수 있다. 차 운송 회사들 (Car transport company)은 캐리어들을 연결해 주는 브로커 서비스 (Brokerage service)를 제공해 주며 웹사이트에서 무료로 견적을 받을 수 있다. 그나마 큰 운송 회사들을 Forbes 리뷰 기사를 통해 선정해서 (SGT Auto transport, Easy Auto ship, Sherpha auto transport, Montway Auto transport) 온라인 무료 견적을 먼저 받았다. 그리고 각각 전화를 해서 궁금한 거 다 물어보고 비교했다. 인디애나 출장 후에 감기 몸살이 걸려서 계속 잠이 오고 멍한 가운데 (Brain fog) 이틀에 걸쳐서 알아보고 Montway에 예약했다.
40 평생 처음 살아보는 한국도 아닌 미국에서의 시골 동네. 공항도 멀고 한국 마트도 없는 곳이지만, 이 동네 안에서는 마트, 캠퍼스, 공공기관, 친구네 집, 어딜 가도 10분 내 도착할 수 있다. 운전면허증 시험장이나 공공기관 예약도 매일 가능한 작은 동네. 이곳에 한국인 교수진들이 25명이나 있다고 한다. 이미 고등학교 친구의 지인부부를 이번 출장에서 만나서 같이 저녁을 먹었다. 아무것도 없는 시골 동네에 친구들이 이미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든든하다.
8월 이사를 하고 다시 가구를 사고 새로 시작해야 한다. 그 와중에 신입 교수진의 오리엔테이션과 개강 준비, 수업 시작까지 한꺼번에 다 있는 8월 중순. 7월 그나마 남은 약간의 이 무료한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보내야겠다. 미국에서는 아프면 안 된다. 병원비가 비싼 의료 서비스도 이유겠지만, 타지에서 코로나 이후 처음 겪는 몸살이 오니 만사가 귀찮고 외롭고 무기력해진다. 여유로움과 무료함은 한 끗차이인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