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Pause Jun 29. 2022

미국 박사 유학 생활 1년

벌써 1년, 그리고 앞으로 3년

작년 이맘때쯤은 한국에서 한창 미국 유학을 준비하는 마음으로 집 정리 가구 정리 짐 정리를 하면서, 가면 쭉 공부만 할 거 같아서 맛있는 한국 음식을 뒤로하고 바디 프로필을 찍었더랬지,

1년이 지난 지금, 안경을 써야 할 정도로 논문을 읽고 썼던 첫 학기  적응 시간을 거치면서 바디 프로필에 만들어놓은 바디는 나의 바디가 아닌 어디론가 없어진 바디.

이럴 줄 알았으면 1년 전 마음껏 냉면이나 먹고 오는 건데... 그런 생각이 드는 미국 박사 과정의 여유로운(?) 여름을 지내고 있다.


1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 이 과정에 익숙해졌다고나 할까 아니면 패턴을 만들었다고나 할까.

박사 유학에서 첫 학기가 가장 어렵다고 한다. 적응해야 하고, 이사해야 하고, 사람들도 알아가야 하니깐.

맞는 말이다. 첫 학기에 석사 논문학기까지 겹쳐서 어떻게 지나갔는지도 모르겠다. 거기다 처음 영어 논문도 많이 읽어야 하고, 글도 많이 써야 하고, 거기다 4년 학비와 생활비를 지원해줄 프로젝트도 찾아야 해서 매일매일이 몸은 앉아있어도 손가락과 머리는 바쁜 나날이었다.


첫 학기가 끝나고 석사도 졸업하고 나자 조금 여유가 많이 생긴 느낌이었다. 두 번째 학기는 여유 있게 다녀보자라는 마음으로 의욕 충만하고 새로운 시작을 하는 듯했다. 보통 박사 과정에서 수업은 한 학기에 3개 9학점 정도 듣고, Graduate Research Assistantship (RA, 연구조교)를 한 주에 20시간씩 한다. 봄 학기에는 중간에 봄방학도 끼어 있고 해서 조금 긴 느낌이기도 하다.


봄학기에는 학회도 학생 신분으로 처음 가보았다. 한국에서는 국제 행사 진행을 해왔지만, 이곳에서는 커뮤니케이션 첫 학회를 참관했다. 가보니깐 굳이 안 가도 되지 않았을까 싶지만, 네트워킹을 하기 위한 자리이기도 하고 바닷가에 있는 오레곤 포틀랜드로 가니깐 가서 해산물이나 잔뜩 먹고 오자는 심정으로 갔었다. 진짜로 굴이랑 맛있는 커피, 음식이나 먹고 온 자리였다. 학회에 낼 페이퍼도 없고 해서 발표할 일도 없었고, 비판적 이론과 페이퍼가 대다수라 내 연구 관심과도 거리가 있었다. 앞으로 학회는 발표를 하거나 혹은 내 관심사가 있어서 네트워킹을 해야 하는 곳만 가야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그래도 한 학기에 $950불의 travel funding (학회 출장 장학금)을 지원해주니 안 쓰면 없어지는 금액이라 다녀왔다. 그리고 이후에 하이브리드로 진행되는 여름에 있던 다른 학회도 안 쓰면 없어지는 출장 금액을 쓰기 위해 비대면 학회 (Virtual conference)에 들어갔다 왔다. 학회별로 연구 주제나 분위기도 다르기 때문에 좋은 경험이긴 했다.


봄학기가 됐을 때 엄습한 건 괜한 조바심. 내가 과연 맞는 길을 가고 있는 건가, 잘하고 있는 건가 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이제 막 석사 논문을 마쳐서 2월에서야 석사 졸업을 했지만, 이곳에서는 1학년 2학기를 마쳐가는 시기라 아직 연구 페이퍼도 완성된 게 없고 투고한 적도 없고 하니 마음이 조급해지면서 울적해졌다. 특히나 조직 커뮤니케이션 (Organizational communication) 수업을 들으면서 비즈니스 현장과 동떨어진 이론적인 연구논문을 읽으며 '이건 탁상 논리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교수님이었기에 면담 신청을 했더니 영어로 면담해줬다. (왜..?!) 생각했던 거와 많이 다르다고 말했더니 교수님이 내가 이해를 잘 못하는 걸로 받아들여서인지 서로의 견해가 많이 달라 수업도 도중에 수강 철회 (Withdraw)해버렸다. 지난 학기 논문 쓰면서 많은 감정을 소모한 지라, 이번 학기는 쉽게 가고 싶었다. 그러다 보니 학기가 마칠 즈음, 생각에 미치지 못한 성과에 조금은 우울한 기분이 찾아왔다.


그리고 맞는 첫여름학기, 4년 안에 졸업하기 위해 학점 계획을 해보니, 이번 학기에 6학점 정도 들으면 만회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하고 있는 연구 프로젝트는 미국 국방부에서 지원하는 연구라서 매번 계약을 학기 별로 진행한다. 여름 학기에 20시간씩 일하는 걸로 재계약하면서 수업을 들었다. 수업을 듣고 연구를 하고 글을 읽고 글을 쓰는 나날들. 나는 글을 쓰는 기계 아니, 조금 더 좋게 말해서 '학자는 전업 작가랑 비슷하다'라고 생각하고 일하는 게 낫다. 이렇게 어려운 연구 논문 쓰는 일을 매일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들지만, 많은 작가들도 쓰면서 느는 거다라는 걸 알고 힘이 되고 동기 부여가 된다.


다행히 미국 학교는 씀씀이가 후한 편이다. 우선 연구실에는 에어컨이 너무 후해서 43도에 육박하는 애리조나의 핫한 여름을 입술이 퍼레질 정도로 춥게 지낼 수 있다. 미국은 에어컨만 줄여도 기후 변화(climate change)에 크게 기여할 수 있는 나라라고 생각한다. 단점은 연구실이 너무 춥다 보니 잘 가지 않게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곳은 웬일인지 사람들이 출근 안 하고 거의 재택근무나 자율 출근 제다 보니 그 시원하고 깨끗한 연구실도 사람이 없다. 두 번째는 내가 연구를 하거나 공부를 한다고 장학금을 지원하면 지원을 후하게 준다는 것이다. 여름 연구 프로젝트로 두 개의 장학금을 탔고, 그 장학금은 오롯이 연구 프로젝트를 위해 써야 한다. 단, 기한이 있다는 것이다. 마감이 닥칠수록 예상치 못한 초인적인 힘으로 페이퍼를 마칠 수 있기 때문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다. (흔히 말하는 마감병) 세 번째는 내 사랑 도서관. 도서관에 있는 가구들은 정말 편하다. 예전에 가구 예산을 본 적이 있는데, 지금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거기 있는 의자들이나 책상이 생각보다 꽤 가격이 나간 걸로 기억한다. 편한 의자와 책상, 시원하고 사람도 없는 쾌적함, 그리고 야자수가 보이는 뷰까지. 이곳은 학교가 제일 재밌고 편한 곳이다. 마지막 fitness center는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다양한 기구가 즐비하고 헬스장에서 줄지어 탄다는 스텝 밀, 일명 천국의 계단에는 사람도 없다. 그러다 보니 이번에 처음으로 맞는 미국 여름 학기는 학교에서 즐 기차게 즐기고 있다.


애리조나 여름이 너무 덥다 보니 5-6월에는 보통 여름 학기 수업이 온라인으로 진행되어 친구들 집이 있는 캘리포니아나 유타로 여행을 다녀왔다. 이곳 동기들도 여름에는 다른 주, 혹은 집으로 떠나 있는다. 여행을 다니면서도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정말 좋다. 줌 미팅으로 연구 프로젝트도 하고 하니, 이렇게 일하고 공부하면 세계 어디서든 살 수 있을 거 같다. 그러다 보니 이제 7월을 앞두고 있다. 한 달 하고 보름만 지나면 벌써 가을학기 2학년 시작이다. 약간 마음이 조급해지려고 한다. 장학금 받은 여름 연구도 마쳐야 하고, RA프로젝트도 이제 데이터 수집이 끝나서 막바지 페이퍼를 앞두고 워크숍도 열릴 예정이다.


박사 과정은 직업인 거 같다. 학생이라기 보단 글 읽고 쓰는 직업. 시간은 느리게 흘러가는 듯하면서 빠르게 흘러가고, 여유로운 거 같으면서도 바쁘게 지나간다. 몸은 앉아있지만 머리는 일을 해야 하고, 머릿속 이야기를 손으로 빠르게 옮겨야 하는 일. 바쁜 와중에 심심하기도 하고, 바쁜 만큼 성과가 더딘 거 같기도 해서 조급함이 들기도 하는 과정이다. 그러다 보니 이 과정에 있는 사람들끼리 공감대가 생기게 되고, 과정을 겪지 못한 사람들이 이해하기 힘들기도 하겠다 싶다. 전 세계 인구의 1%, 미국 인구의 3%, 작년 '지난 20년간 달라진 미국 박사 학위 10가지 (Ten Ways U.S. Doctoral Degrees Have Changed In The Past 20 Years)'에 대한 통계가 나온 forbes 내용이 재밌다


앞으로 가장 빠르게 졸업할 수 있는 방법은 4년 안에 마치기. 계획대로 하면 2025년 지금쯤의 여름에는 졸업이다. 그때 지금 여름 이야기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들까, 앞으로 3년은 어떻게 지나갈 지도 궁금하다.


이전 09화 미국 박사과정 연구 조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