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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멍든새 Sep 20. 2022

변명을 하자면

다시 백일글쓰기 023


나는 ADHD 우울증 치료를 받고 있다. ADHD 경우, 이미 뇌가 굳어서(?) 치료가 불가능하고 증상 완화에 도움 되는 약을 먹는다.  특성상 입맛이 없어질 거라는 주의사항을 들었는데 오히려 식욕억제가 되지 않아서 의사 선생님과 상의했다.

“낮에는 괜찮은데 저녁에는 참지 못 하고 폭식을 해요.”라고 말하면서 나 자신의 문제를 깨달았다. 낮에는 약 기운 때문에 입맛이 없지만 저녁에는 약기운도 떨어진 데다가 낮에 식사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식욕이 폭발한 것이다.

선생님께선 낮에 먹는 약을 저녁에 먹도록 옮겨주었다. 그랬더니 저녁에 입맛이 없어지는 대신 밤새 정신이 각성되어 잠이 깊게 들지 못하고 1시간에 한 번씩 깼다. 결국 원래대로 돌아갔다.

어제는 낮에 고구마와 방울토마토를 먹고 저녁에 밥을 먹었다. 낮에 일반식을 먹고 저녁에 가볍게 먹는 게 좋다는 걸 알지만 내 몸이 그렇게 안 된다. 약기운이 도는 낮에는 뭘 먹어도 버석거리는 모래를 입안에 넣는 느낌이 들었고 저녁엔 어김없이 식탐이 생겼다. 손톱보다도 작은 알약 하나가 내 몸을 좌우한다. 나는 일명 ‘약빨’이 잘 받는 사람인 것이다.

정신과 치료를 받은 지 몇 년 되었지만 아직도 나에게 맞는 약을 찾는 중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식욕과 수면이다. 많이 먹어도 허기가 채워지지 않거나 아침부터 약에 취해 잠에서 깨지 않을 때도 있었다. 가랑비에 옷 젖듯, 눈 깜빡할 사이에 10kg이 늘어도 몰랐고 하루에 14시간 자면서도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상담을 받으면서 “이런 고민이 있다”면서 털어놓지 않았더라면 의지박약이라 식탐이 많다며 자신을 탓하고 실수를 반복하며 자괴감 속에서 살았을 것이다.

“우울증(정신과) 치료를 받는다고 모두 너처럼 살찌진 않잖아.”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내용의 말을 들은 적 있다. 그때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해서 반박할 수 없었다. 지금은 사람마다 같은 약을 먹고도 효과, 부작용이 다르기 때문에 결과도 다르다는 걸 안다.

정신병이나 그에 대한 부작용을 의지의 문제라며 탓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자신의 기준에서 경험한 대로만 판단하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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