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글쓰는공여사 Feb 09. 2021

새엄마가 되고 나니 든 생각

작은 놈은 이쁘고, 큰 놈은 밉다.

"남편, 남편, 남편, 언능 언능 와봐."

남편 방문을 벌컥 열어젖히, 내 숨이 꼴딱 넘어간다.

"뭐, 뭐, 뭐?"

"손님 왔어. 손님 왔다니까."

"우리 집 올 손님 없는데......"

"아니 그 손님 말고. 식당 손님. 얼른 나와봐."
난 남편의 소매를 부여잡고 부엌 뒷베란다로 끌었다.


"어디, 손님 어딨어?"

"저기, 저기." 

"와...... 진짜 첫 손님이 왔네."

"정말 귀엽지 않아. 너무 색깔 이쁘고."

우리는 나란히 서서 조그맣고 귀여운 박새를 지켜보며 미소 지었다.


일주일 전 신장개업한 우리 집 식당은, 아파트 2층 나무에 매달아놓은 옷걸이 새 먹이통. 식당 손님은 동네 아파트를 오가는 박새와 곤줄박이 새들.


고등학교 다닐 때 새 지독히 싫어하던 친구가 있었다.

"난 새 진짜 싫어. 물컹물컹하고, 깃털이 그게 뭐냐? 눈동자 휙 돌아가는 것도 무섭고. 발가락도 너무 징그럽지 않냐?"

"...... 뭐, 그런 것 같기도 하고."

어찌나 날개 달린 것만 봐도 기겁을 하던지, 덩달아 나도 새를 싫어하는 줄 알았다.

 

그런데, 두 달 전쯤 남편이 말했다.

"유튜브에 새덕후라는 채널이 있는데, 정말 영상도 잘 찍고 목소리도 좋고......"

칭찬에 침이 마른다.

새라......?!?!

내가 싫어하는 그 날개 퍼덕거리는 거 말이지?

요겁니다. 유튜브 새덕후 채널.

찾아본 '새덕후' 유튜브 채널, 진짜 영상이 자연 다큐다. 그만큼 덕후질을 해본 적이 없던  그가 그렇게까지 새를 좋아하는 게 신기했다. 그 짧은 영상 찍겠다고 몇 날 며칠 개고생 하는 모습도 감동이었다. 사진 찍으려고 일부러 새를 날리는 사람들에게 질러대는 그의 성난 고함소리도 내 귀에는 멋지게 들렸다. 


어느 날 산책 가자던 남편이 어깨에 무거운 삼각대를 매고 나타났다. 그 위에는 내 허벅지만큼 통통한 망원경을 매달고.

"그게 뭐야?"
"망원경."

"뭐 보려고?" 

"산책 가는 길에 새 탐조하려고."

실행력 한 번 본받을 만하다. 새덕후 채널 몇 번 보더니, 그새 망원경까지 장만하다니.

"새 탐조? 남편~~ 드디어 우리도 새덕후 반열에 드는 거야?"

"?!?!?!"


한껏 부풀었던 기대는 그날 바로 무참히 깨졌다. 뭔 새들이 그렇게 빨리 나는지, 그리고 망원경 초점은 왜 그리 안 맞는지. 두 시간이나 그 무거운 걸 짊어지고 탐조한 게, 개천에 둥둥 떠다니는 오리가 전부였다. 

지친 걸음으로 집에 돌아오며 남편에게 물었다

"오리도 새 맞지? 그지? 남편~~~"

"........"


망원경을 구석에 처박아둔지 몇 주났다. 새덕후 채널에서 버드 피딩 bird feeding이라는 콘텐츠를 봤다. 빙고! 바로 이거다. 장비도 몸도 무거운 우리가 뭔 새를 힘들게 직접 찾아다니냐? 눈앞에 불러오면 되지.


내 기특한 생각에 우리는 당장 새 식당을 차렸다. 2층 베란다 창문 너머 나뭇가지에 플라스틱 통과 세탁소 옷걸이로. 식단은 아몬드, 호두, 땅콩, 해바라기씨 견과류 뷔페다. 손을 뻗어 나뭇가지에 매달아두고, 식탁에 앉으면 바로 보이니 새 탐조 최적의 장소다.

신장개업한 우리 집 새 식당

그런데, 안 온다.

거하게  차려놨는데 새가 안 온다.

새들아. 밥 차려놓았다. 언능 와서 맛있는 견과류 먹으렴. 부엌에 물 먹으러 가면서도 흘끗 쳐다보고, 커피 마시면서도 빤히 쳐다보는데 안 온다.

......

그러다, 그렇게 첫 손님 박새가 왔다고 야단법석을 떤 다.


새들 사이에 소문이 났던지, 아침부터 해 질 무렵까지 새들이 지저귀며 계속 날아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정성껏 빻은 견과류로 먹이통을 채우고 식당을 오픈한다. 커피 한 잔 타서 유리창에 기대어, 식당에 날아드는 손님들을 지켜본다.


먹이를 물고 후루룩 옆 가지에 앉아, 서른 번도 넘게 고개를 수그려 쪼아 먹는다. 포식자는 없는지 부지런히 주위를 살면서.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우리 새도 그렇다.

자세히 보면 깃 너무 예쁘다.

휙 돌아간다는 눈은 얼마나 깜찍하고, 먹이를 발톱으로 꼭 누르고 쪼아 먹는 부리는 얼마나 앙증맞은지. 부리에 하얀 견과류 부스러기를 묻히고 두리번거리는 모습이란.....

힐링도 이런 힐링이 없.

손님 왔어요. 박새 손님.

춥고 비까지 내렸던 지난밤.  아침에 먹이통을 수거하러 가보니, 박새 한 마리가 열심히 궁둥이를 쳐들었다 내렸다 먹이통에서 뭘 쪼아 먹는다. 남은 것도 없을 텐데..... 먹이통을 거둬 보니, 바스러진 땅콩 껍질 빗물에 가득 젖어있었다.

안쓰러운 마음에 견과류 빻는 손길을 바삐 놀리며, 지나가던 남편에게 말했다.

"너무 불쌍하다. 우리 박새. 빗물 젖은 땅콩 껍질을 먹고 있더라니까."

"물 말아먹은 거야. 사람처럼."

"......?!?!"

30년 결혼기념일을 3개월이나 지났는데도, 남편의 뇌구조를 이해하기엔 아직도 시간이 마~~~ 니 부족하다.


"남편~~ 돈 많이 벌도록 해. 이제 우리 집 까뭉이도 먹여야 하고 동네 새들도 먹여 살려야 하니까. 힘내고."

난 곤줄박이가 그 귀여운 궁둥이를 우리에게 열 번도 넘게 치켜세우고 먹이를 쪼아 먹는 모습을 지켜보며, 옆에 서있는 남편의 어깨를 오래 다독인다. 

이번에는 곤줄박이 손님.

그런데 어느 날 그 얇디얇은 플라스틱 먹이통에 커다란 까치가 한 마리 날아 앉았다. 까치가 심술꾸러기 훼방꾼임을 익히 알고 있던 난 소리 지르며 남편에게 뛰어갔다.

"남편, 남편, 큰일 났어."

"...... 왜 그러는데?"

"까치 왔어. 저번에 산에 갔을 때 내 뒷목 쪼아대던 그 심술꾸러기 까치."


리는 창가에 서서 날카로운 눈으로 먹이통에 앉아있는 그놈의 까치를 째려본다. 

"헐~~ 저 놈이 우리 귀여운 박새 곤줄박이 밥 다 처먹어버리면 어쩌냐?"

"덩치를 보면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데."

"또 오면 어쩌지? 까치는 참새도 잡아먹던데......"

"덫이라도 놓을까?"


새 먹이통 하나 매달아놓고 새엄마가 되고 나니, 어찌나 분별심이 많이 이는지 놀랄 지경이다. 작은 놈은 이쁘고, 큰 놈은 밉다. 큰 놈이 다 처먹어버리면 어쩌나, 이 평화로운 식당 살인 현장 되면 어쩌나 걱정이 늘었다.  분별과 상에 집착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삶을 온전히 살아내리라,  마음공부한답시고 매일 밤 긋는 금강경 밑줄이 무색하다.


...... 설마 죽기 전에 깨닫기는 하겠지?









매거진의 이전글 그 붕어빵은 절대 안 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