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탁에 앉아있던 남편이 날 의아한 눈빛으로 쳐다봤다.어색한 침묵이 둘 사이에 잠깐 흘렀다.
"왜 안되는데?"
그 짧은 사이에 평정을 되찾은 남편이 물었다.
뭔 심각한 얘기가 아니다. 어떤 붕어빵을 살까 얘기하는 중이었다.
"...... 그건, 안 먹어봤잖아."
소심한 변명이 내 입에서 흘러나왔다.
겨울마다 우리 집 대딩 딸내미는 이렇게 말한다.
"올해는 꼭 붕어빵을 먹고 지나가야 할 텐데......"
마치 그 겨울 달성해야 할 어마어마한 목표라도 되는 듯.초등 때 아빠랑 붕어빵 틀에 반죽붓고 달달한 팥 넣어 직접 구워 먹었던 추억 때문인지 겨울마다 붕어빵 타령이다. 아직도 10년째 붕어빵을 생산해 본 적도 없는 먼지 앉은 붕어빵 틀을 절대 못 버리게 철통사수 중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남편이 마트에서 업어온 붕어빵. 대박이다.에어 프라이어인지 뭔지 그딴 건 없으니까 우린 그냥 전자레인지에 3분 돌린다. 그다음이 진짜 중요하다. 바싹 따뜻 달달하게 기름 없는 프라이팬에 인내심을 가지고 앞판 뒤판 뒤집어주면...... 겁나 맛나다.
요 놈이다. 겁나 맛난 놈.
벌써 몇 봉째 가족들의 늦은 밤 야식으로 등극했다. 추억을 소환한다는 명목으로 출출한 밤마다 식구들 뱃살을 책임지고 늘리는 중이다. 근데 냉동실에 그 붕어빵이 똑 떨어졌다. 남편이 주문한다고 마트 사이트를 열더니 나에게 물었다.
"그 상표가 여긴 없네. 그럼 다른 붕어빵으로 시켜볼까? 오리온 꺼."
남편은 아무 생각 없이 와이프의 의견을 물어봤을 뿐인데,내가 그렇게 소리친 거다.
"안돼."
내 입에서 뱉은 그 단어의 어감이 어찌나 강했던지 나도 놀랐다.
뭔, 남편이 나라를 팔아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영끌 빚투로 집안 살림 한 큐에 말아먹겠다는 것도 아니고,
바람난 여자랑 딴살림을 차리겠다고
나에게 물어본 것도 아니었다.
그냥 붕어빵 다른 것 한 번 사보겠다는 남편의 소박한 바람을, 내가 단 칼에 잘라버린 거다.
'안 돼.'라고.
난, 난 아무 거나 괜찮아. 붕어빵에 붕어만 들어있으면…….
그러니까 요즘 열나게 하고 있는 마음공부는 애초에 다 쓰잘 데 없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좋다 싫다 옳다 그르다 많다 적다, 분별심 가지지 말고 중도의 삶을 살리라, 매일 책 펴놓고 밑줄까지 그으면 뭐하냐? 붕어빵 하나도 다른 건 안된다고 이리 난리 치며 달려드는데......
별명이 '현자'인 남편이 한 숨을 길게 쉰 다음 말을 뱉었다.
"그 붕어빵도 네가 먹어보기 전에는 그게 맛있는지 어떻게 알아? 먹어봤으니까 맛있구나 생각한 거지. 그러니까 이 붕어빵도 맛있는지 맛없는지 한 번 먹어보면 되지."
역시 내 곁에 이렇게 깨친 자(?)가 있으니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다.나의 어리석음을 금새 깨달으니 좋고, 나의 우매함이 아주 돋보여서 싫다. 좋다 싫다 분별하지 말랬잖아!!!!!!!
남편은 나의 단호한 '안 돼'에도 상관없이 주문 버튼을 꾹 눌렀다. 역시 깨친 자는 다르다. 옆의 사람 영향을 전혀 안 받는다. 다음날 우리 집에는 새로운 붕어빵이 냉동실에 입성했다. 먹어보면 알겠지. 남편 말대로.
그 날밤, 슬슬 출출한 가족들의 뱃속이 붕어빵을 부른다.
짜잔.
드디어 새로운 붕어빵 개봉시간.
허걱~~
그런데 붕어빵 봉지가 이미 뜯겨 있었다.
낱개 포장? 불길하다.
붕어빵을 뜯어 붕어의 실체를 확인한 순간,
에게게~~ 이게 뭐야......
허탈함과 실망감에 온 몸에 기운이 쑤욱 빠진다.
이건 내가 기대한 그 붕어빵이 아니었다.
밖은 바싹하고 안은 달콤한 팥이 가득 찬 따뜻한 그게 아니었다.
그건, 그건......
찹쌀떡을 넣어 쫀득하고 촉촉하다는 '빵'이었다.
차가운 채로 베어 먹는. 아이스크림도 아닌 것이, 찹쌀떡도 아닌 것이, 빵도 아닌 것이......
벌써 남편이 뜯어 먹어보고 나름 판단 미스를 인정했는지, 나에겐 새 붕어빵 후기를 입도 뻥긋 안 했다.
나를 실망시킨 쫀득거린다는 놈.
우리 식구들은 눈 내리는 겨울밤, 냉동실에서 막 꺼낸 붕어 모양을 한 차가운 붕어빵을 한 입씩 베어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