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3중 도어를 뚫고
핸드폰을 사수하라

시몬, 너는 들리냐?

by 글쓰는공여사

로마에서 피렌체로 이동하는 날이다. 기차도 예약되어 있고 1시간 30분이면 도착하는 수월한 일정이다.


“그동안 많은 일을 겪었으니, 피렌체 기차 타고 가는 거야 껌이겠지? 가서 연락하자.”

남편이 ‘껌’이라 불렀던 그 간단한 일정이 우리에게는 핵폭탄 급 사투가 될 줄은 그때는 몰랐다.


아침 6시에 일어나 능숙하게 숙소 떠날 준비를 한다. 금고에 넣어두었던 현금도 잘 챙기고, 주인장 시몬에게 감사의 메모도 써서 붙여놓았다. 숙소 열쇠를 식탁 위에 올려놓고, 화장실에 들어가는 딸내미에게 당부를 한다.

“딸냄~ 뭐, 놓고 오는 것 없나 마지막으로 체크하고 내려와.”


짐을 끌고 내려가는데, 잠시 후 숙소 문이 쾅하고 육중하게 닫히는 소리가 들린다. 그런데 딸내미가 내려오질 않는다.

“딸냄~~~뭐 해? 빨리 내려와.”


아무 대답이 없다. 무슨 일인가 싶어 올라가 보니 딸내미는 얼굴에 핏기 하나 없이 그 자리에 서있다.


“엄마~~ 나, 핸드폰 두고 왔어.”


“진짜? 진짜 두고 왔어? 주머니에 있는지 잘 찾아봐.”

숙소에 두고 온 핸드폰이 주머니에 있을 리 없다. 화장실 가려고 탁자 위에 올려놓은 핸드폰을 그대로 두고 숙소 문을 닫아버린 것이다. 이미 문은 잠겼고 열쇠 꾸러미는 식탁 위에 있다.


“너 지금 뭔 짓을 한 거야? 엄마 시험하니? 니 엄마 얼마나 젊은지 시험하냐고?”

말도 안 되는 화풀이를 쏘아붙이며 딸내미를 매서운 눈초리로 흘려본다. 딸내미는 그렇지 않아도 자기 잘못이라 불편한데, 엄마에게 그런 질책까지 들으니 죽을 맛이었을 게다.


딸내미 마음 어루만져 주겠다는 여행 목적은 이미 물 건너갔다. 그동안 5센티미터씩 힘겹게 좁혀온 우리의 마음 거리는 순식간에 5미터 멀어지고 만다.


“숙소의 3중 보안 시스템을 뚫고 핸드폰을 손에 넣은 다음, 테르미니 역에서 10시 35분 피렌체 행 기차를 잡아타라. 주어진 시간은 50분.”


극비리에 첩보 훈련을 받은 적도, 실전 투입 경험도 없는 우리에게 이탈리아 로마를 무대로 스파이 미션이 주어졌다. 콜라병 뚜껑도 제대로 못 따는 저질 체력에 이탈리아어는 ‘챠오’ 밖에 모른다. 우리 핸드폰은 여전히 로마 거리에선 먹통이고, 주위엔 공중전화도 없다. 스파이 능력은 제로인데 해결해야 할 미션만 있다.


일단 시몬에게 전화를 해서 문을 열어 달라 얘기해보자. 딸내미에게 짐을 지키라 하고, 몇 번 빵을 사면서 얼굴을 익힌 1층 빵집 아주머니에게 달려갔다. 내 마음은 이리 급한데 빵집 아주머니는 화통 삶아먹은 듯 큰소리로 이탈리아어를 뿜으며 통화 중이다.


“전화 좀 쓰면 안 될까요? 나 몹시 급한데...”


온갖 불쌍한 표정을 다 지으며 영어로 얘기했는데, 참, 하늘도 무심하시지. 아주머니 표정을 보니 ‘telephone’이라는 영어 단어도 모르는 게 분명하다. 전화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시몬의 전화번호를 보여주고서야, 아주머니는 겨우 전화 걸고 싶은 나의 욕망을 이해한다.


뚜우~뚜우~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는다. ‘제발. 시몬~~ 전화 좀 받아줘.’ 토요일 아침이라 늦잠을 자고 있나 보다.

숙소 일층 빵집

시간은 흐르고 딸내미 핸드폰은 숙소에 있고, 시몬은 전화를 안 받는다. 겨우 생각해 낸 단 하나의 희망이 사라졌다. 전화를 힘없이 건네주고 빵집을 나서니 비까지 부슬부슬 내린다. 커다란 캐리어를 꼭 붙들고 있던 딸내미는 아무 성과 없이 돌아온 엄마를 주눅 들고 미안한 얼굴로 쳐다본다. 이탈리아 로마 거리에 아시아인 모녀가 넋을 잃고 서있다.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 봐도 시몬과 연락하는 것 밖에 길이 없다. 다시 빵집을 찾으니 무슨 일인지 아주머니가 나를 보자마자 흥분한다.

“뭐라 뭐라 뭐라...”


이탈리어를 알아듣고 싶은 욕망이 너무도 크다. 귀로 소리는 들리는데 이해가 안 되는 고통을 고스란히 겪는다.

속 터지기 직전, 영어 하는 할머니 구원 투수가 등장한다.

“여기서 1분만 기다리래. 누가 너에게 전화한대.”


시몬이다. 시몬이 빵집에서 걸려온 전화가 내 전화인 것을 알았나 보다. 시몬 전화를 받으니 눈물이 나려 한다. 시몬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시간은 없고 마음은 급하니 한국말을 하는지 영어를 하는지 말이 자꾸 꼬인다. 시몬이 자기는 집이 너무 멀어, 지금 서둘러도 우리가 기차를 탈 수 없다며 숙소 비밀번호를 알려준다. 빵집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소음 속에서 번호를 받아 적는다.

“1, 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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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 뒤에 뭘 누르라했는데 놓쳤다. 에라 모르겠다. 뭐라도 누르면 되겠지. 시몬과 통역 할머니와 아주머니에게 땡큐를 외치고 빵집을 뛰쳐나왔다. 숙소 비밀번호를 알았으니 3 중문만 뚫고 들어가면 된다. 건물 입구의 육중한 철문, 실내로 들어오면 양 갈래로 각각 들어가는 까만 철창살문, 마지막 시몬의 아파트 문.


첫 번째 문은 딸내미가 열고 들어가 있으니 이미 통과했다. 두 번째 철창살문이 문제다. 양 갈래로 갈라지는 아파트라 문이 왼쪽, 오른쪽 두 개다. 우리는 왼쪽으로 올라가는 누군가를 기다렸다 함께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토요일 아침이라 아무도 안 온다. 아직 나가지도 않았으니 들어올 리가 만무다. 초조해진다. 시간은 10시를 넘어가고 있다.


배낭에서 첨단 장비를 꺼내, 옥상으로 줄을 던지고 타고 올라가는...... 그런 옵션은 나에겐 없다. 무례하게 인터폰 버튼을 아무거나 누르고 문을 열어달라고 울부짖는 방법밖에 생각이 안 난다.


“영어 할 줄 아나요? 까만 문 좀 열어줄 수 있어요? 열쇠를 집에 두고 왔어요.”

“Open the Black Door Please!”

“O•P•E•N~~~~ BLACK~~~~ D•O•O•R!!!!!!!”


시간은 흐르고 아무도 문을 열어주지 않으니 이제 플리즈고 뭐고 다 생략이다. 누르는 버튼에 대고 늑대처럼 울부짖는다. 얼마나 애절하게 인터폰을 누르고 또 눌렀는지 모른다. 아파트 주민 중 누군가가 잠시 이성을 잃고 낯선 늑대를 아파트 안으로 들인다. 찌컥 왼쪽 철창문이 열린다.

_7232316.JPG 두번 째 철창문

난 겨우 열린 철창문을 꽉 붙들고 이번에는 딸내미를 목 놓아 부른다. 누군가가 잘못 열어준 오른쪽 철창문을 통해 딸내미는 옥상이 서로 통해 있을지 모른다며 옥상으로 올라갔었다. 평온한 토요일 아침, 로마에서 딸을 찾는 한국 아주머니의 비명이 아파트에, 길거리에 울려 퍼진다.


‘미션 수행 중입니다. 로마 시민 여러분! 동요하지 마시고 하던 일 계속하세요.’


딸내미가 비밀번호가 적힌 쪽지를 받아 들고, 단숨에 시몬 아파트 문을 따고 핸드폰을 손에 넣는다.


지금 시간은 10시 15분, 피렌체 행 기차는 20분 후에 떠난다.

캐리어를 끌고 배낭과 크로스백, 과일 가방을 줄래 줄래 메고 로마의 거친 돌바닥을 질주한다. 가방은 자꾸 흘러내리고 온몸이 땀으로 젖는다. 딸내미가 장애물을 헤치며 앞서가고, 헐떡거리며 따라오는 엄마를 재촉한다.

우린 역에 도착하자마자 플랫폼 번호를 확인하고, 떠나기 직전의 기차를 잡아탔다. 미션 클리어.


기차에 무사히 탑승하고 나니 온 몸이 부르르 떨렸다. 옆에 털썩 주저앉은 딸내미도 넋이 빠져있다. 스스로 자초한 일이긴 하지만, 엄마가 미친 여자처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이 집 저 집 인터폰을 누르고 울부짖는 꼴을 본 데다, 바퀴 폭폭 빠지는 로마 거리를 캐리어 끌고 질주 헸으니. 우리는 한참 그렇게 숨만 헐떡거리며 말없이 앉아있었다.


왜 포기하지 못했을까? 딸내미 핸드폰을, 혹은 피렌체 행 기차 티켓을. 내 손에 쥐고 있던 걸 놓기가 그리 힘들었을까?


딸내미는 그런 난리를 피우고도 여행 중 최고의 숙소가 로마라 하고, 아지트 다락방에 꼭 다시 가보고 싶다고 얘기를 하고 또 한다. 35박 유럽 여행을 마치고 시몬에게 미안하고 고마워 이메일을 보냈다. 불길하게 답이 없다. 남편이 내 불안에 불을 지핀다. 한국 아줌마가 부린 난동으로 시몬은 더 이상 그곳에서 에어비앤비 아파트 렌트를 못하고 있는 거라고.


시몬, 너는 들리냐? 내가 미안해하는 소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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