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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사탕 Mar 30. 2022

성취주의적 인간의 임신 극초기

머나먼 우주에서 떨어진 지령




잠이 미친 듯이 쏟아졌다. 가장  번째로 느껴진 몸의 변화였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잠이 급격히 늘어난   임테기를 했던 주말부터였다. 평상시에도 주중에   잠을 주말에 몰아자는 것으로 잠에 대한 한풀이를 하는 유형의 인간인데, 이상하게 자고  자도 끝없이 잠을 잤던 주말이 변화의 시작이었던 것이다.



임신을 인지하고 나서는 회사에서 앉아 있는 게 신기할 정도로 집에 오면 방전된 로봇처럼 오자마자 자기 바빴다. 8시에 자서 6시에 일어나는 생활의 연속이었다. 주말엔 거의 깨어 있는 시간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외관적인 변화는 없었지만 몸 안에서는 엄청난 변화에 많은 에너지가 필요했을 테니 뭐라도 스위치를 하나 꺼야 했을지도 모르겠다. 밥을 먹으면 졸렸고 씻고 나면 졸렸다. 인간이 이 정도로 잘 수 있나 싶을 만큼 자고 또 잤다.


임신 후의 몸의 변화나 준비해야 하는 마음 가짐, 조심해야 하는 음식 등등 아는 것이 전무했다. 조금만 검색을 해도 지식이 쏟아지는 시대에 살고 있으면서 왜 이런 건 꼭 활자로 확인하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 우선, 근처 서점에 가서 임신에 대한 책을 한 권 골랐다.


몇 개 둘러보다가 일자별로 변화가 어떠한지 나온게 마음에 들었다




딸의 임신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닌 모친은 내가 퇴근할 때쯤 매일 같이 전화를 해서 오늘의 컨디션을 물어보곤 했다. 다행인 건 입덧이 없던 모친을 닮아 입덧이라고 느껴지는 그 무언가는 없었다. 약간의 피곤함과 쏟아지는 잠이 변화라면 변화였다. 술꾼이었던 내가 술을 마실 수 없다고 하면, 약이 술이라는 둥, 한 잔만 마시라는 둥, 개가 똥을 끊지라는 둥의 말로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저마다 권하는 술을 거절하는 것도 일이었다. 당분간의 모든 약속은 다 취소하였다.


무엇보다 문제는 회사에서 마시는 커피였다. 팀장은 매일 나에게 커피를 마시러 가자고 하는 사람이었다. 회사에 가면 아침, 점심으로 적어도 두 번의 커피를 마시는데 평소에도 우유 들어간 음료는 입에 대지도 않는 내가 마시는 음료라고는 아메리카노 뿐이었다. 그러던 내가 갑자기 어느 날 아메리카노를 마시지 않고 차를 마신다거나, 어떤 음료도 안 마시거나 하는 걸 분명히 이상하게 여길 팀장이었다. 다음 주에 있을 팀 전체 회식도 문제였다(아니 대체 왜 코로나 시국에 전체 회식을 한다는 건지). 위염을 핑계로 삼았다. 회사에서도 이직을 한지 얼마 되지 않은 내가 임신을 했다고 하면…  또 얼마나 뒷 말이 많을지 아연해졌다. 아직 안심할 수 없는 단계인데 여기저기 임신했다고 알릴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대체 안심이라는 걸 할 수 있는 단계가 있는 건지 싶기도 하다).


위염을 지붕 삼아 대외적으로 커피와 술을 마시지 않았다. 5년을 넘게 다니던 필라테스도 잠시 홀딩을 해두었다. 책에 쓰여 있는 임신 극 초기의 증상 중에 내게 해당되는 건 피곤하고 나른한 상태의 지속이었다. 그것을 빼면 어제와 다를 것 없는 오늘이었다. 임신한 상태라는 걸 잊고 지하철을 놓칠까 봐 뛰어다녔고, 회사에 늦을까 봐 지하철 계단을 두세 개씩 오르내리고, 집에서도 무게가 나가는 물건들을 번쩍번쩍 들고 날랐다. 조심성 없는 행동을 하고 나서야 아 그래 맞다 나 임신했지,라고 자각을 했다. 아직은 이미지로만 인지가 되는 있는 임신이었다.




21.11.24, 열흘  다시 병원. 아기의 심장 소리를 들을  있다고  날이었다. 우리는 행여나, 혹여나 하는 불안함에  조심, 마음 조심을 하면서 결코 짧지 않았던 열흘을 보냈다. 초음파로 보이는 자궁 속에 생긴 커다란 검은색 타원이 아기집라는 것도, 그게  것이라는 것도 믿기지가 않는데 기계를 타고 들리는  소리가 아기의 심장 소리라니,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개의 심장이 되었다는 것에 현실감이 없었다. 되려 초음파 담당 선생님의 감사한 리액션은 눈앞에 실재하는  화면이 사실은 엄청난 일이라는  무덤덤한 임부에게 깨우쳐주는  같았다.



무엇보다 졸업이라는 단어가 가장 기뻤다


앞으로는 산과로 전과를 해도 좋겠다는 담당 선생님의 소견을 들었다. 아이를 가졌다, 라는 사실은 지금까지의 삶을 성취주의적으로 살아온  인간이 이제껏 그래 왔듯이 몸과 마음고생을 겪고  이후에 주어진 트로피처럼 느껴졌다. 내가 드디어 엄마가 되었다, 라는 단어와 문장으로 설명하기 버거운 경이로움이 아니었다. 남들에게는 아이를 가졌다,  사실이 그토록 , 혹은 계획했던 엄마가 되었다, 라는 기쁨으로 보였는데, 나는 2021년에 일어났던  어떤 결과들 중에서도 가장 기쁜 결과라는 사실이, 이토록 결과 지향적인 마음이 드는 것이 괜찮은 건가 싶었다.  마음이 이래도 되나 었다.


엄마의 준비가 안된 인간에게 이제는 엄마가 되어 다른 삶을 경험하고 성장하라는 아득하고도 머나먼 우주에서 떨어진 지령 같았다.


하지만 그러기엔 여전히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인간이 넘어야 할 직장인 임부에 대한 수도 없는 편견과 불안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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