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플랑 Jan 13. 2019

아임 낫 파인


지영이가 그만뒀대. 언제? 나도 몰라, 어제 들었어.

인턴, 레지던트라고 불리는 수련의의 사직은 흔한 일이다. 건강상의 이유로 그만 두는 사람들도 있고, 선배에게 지독하게 괴롭힘 당하다가 못 견디고 그만 두는 경우도 있다. 병원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온갖 추문이 일어나기도 하고 대개는 그런 추문은 그 일에 연루된 전공의가 그만 두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때로는 그저 피곤해서, 하룻밤 푹 자고 싶은 마음에 병원 밖을 나섰다가 그대로 돌아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련의를 시작하고 첫 몇 달은 영어를 처음 배우던 때와 비슷했다. “하우 아 유”에는 “아임 파인, 땡큐, 앤유?”라고 답하는 거라고 배운 그 시절. 선생님께 ‘그럼 기분이 좋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해요?’ 라고 용기 내서 묻지 못했던 나는 그저 파인, 땡큐, 앤유? 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배가 아파도 아임 파인, 속이 상해도 아임 파인, 나는 괜찮아요. 잘 지내요. 독감에 걸려도 격리되지 않으려고 약을 안 먹고 해열제 주사를 맞아가며 버티며 일했다. 36시간동안 깨어 있어도 잠에 취해 쓰러지지 않으려고 거즈를 입에 물고 우물거리며 일했다. 생리는 몇 달간 없다가 한번 시작하면 2주 넘게 계속됐다. 병원에서 일하면서도 진료를 받으러는 가지 못했다. 그래도 누가 안부를 물으면, 괜찮아요, 했다.    


 일반 기업에서 사표를 내면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일은 많지 않다. 그러나 수련의가 그만두면 그는 몹시 비난받는다. ‘환자들을 두고 병원을 떠나다니, 이렇게 아픈 사람들을 두고, 책임감 없이.’라든가, ‘남은 사람들이 그만둔 사람의 몫까지 일을 해야 하는데 저 혼자만 편하자고 그만두다니, 정말 이기적이군.’같은 말이 사직한 수련의의 등에 날카롭게 와서 꽂힌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 그만둔 수련의의 동기들은 그저 조용히 고개를 주억거린다. 그 마음이 이해가 되기 때문이다. 누구든 한 번씩은 생각해 본 일이기 때문이다.    


 딸꾹질을 유독 심하게 하던 내 환자가 구토 후 흡인성 폐렴으로 중환자실에 간 일이 있다. 아침부터 딸꾹질을 했었는데, 별 일 아닐 거라고 생각해 그냥 지켜보다가 결국 저녁에 심하게 구토 후 산소 포화도가 떨어질 정도로 심하게 폐렴이 오고 만 것이다. 다행히 환자는 회복되었지만, 그날 이후로 심한 죄책감에 시달렸다.

 숙소처럼 혼자 쓰던 의국에는 방송이 다 꺼져 있었는데, 밤마다 환청을 들었다. ‘코드블루, 코드블루(심정지 방송)’ 하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 잠에서 깨면 대개 새벽 세 시나 네 시였다. 그러면 그대로 일어나 불도 켜지 않고 일을 시작했다. 환자가 잘못될지도 모른다는 근거 없는 불안감에 휩싸여 새벽까지 잠을 못 자다가 세 시쯤 병동에 유령처럼 흘러들어가 자고 있는 환자들의 얼굴을 한번씩 보고 온 적도 있다. 다들 잘 자고 있구나, 다들 괜찮구나. 그런데 자려고 누우면 귀에서 자꾸 중환자실 기계음이 들려. 누군가 딸꾹질하는 소리가 들려. 이 소리는 어디서 나는 소리지. 자고 싶어 미치겠는데 불안에 휩싸여 잠이 오지 않는 날들이 계속됐다. 잠을 자지 못하니 일 하는 속도가 점점 느려졌다. 나중에는 잠이 쏟아져도 일을 다 끝내지 못해서 잠에 들 수 없었다. 사소한 실수를 반복했고 나는 무능한 사람이라는 생각에 늘 괴로웠다. 의무기록을 제대로 쓰지 않으면 ‘미비’기록이 생기는데 그 미비기록 개수가 전체 과를 통틀어 내가 제일 많아졌다. 죄책감과 불안감 속에서 매일이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깨달았다.

죽지 않으면 끝나지 않겠구나.

내가 죽어야 끝나겠구나.

그런 생각에 이르자 갑자기 저 멀리에 밝은 빛이 하나 보이는 듯 했다. 그 빛은 너무나 강렬하고 아름다워서 내 인생의 유일한 목표가 저 빛에 다다르는 것이라고 느껴졌다. 환자들, 가족들, 내가 죽으면 슬퍼할 사람들이 잠깐 뇌리를 스쳤지만 곧 생각 속에서 사라졌다. 나는 죽고 싶다. 그리고 그 생각밖에는 할 수가 없다.  다행히 나는 그 날 밤,실패했다. 그리고 다음 날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님을 찾아갔다.


그로부터 시간이 많이 지난 지금, 이제 나는 파인한가? 그러니까 조금은 괜찮아 진 것 같은데. 아직 완전히 파인하지는 않다. 그러나 이제 나는, 누군가 물어보면, 아임 낫 파인, 하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모래알처럼 먼지처럼 여기저기 흩어진 내 동기들은 파인할까. 누군가 물어보면 자기도 모르게 그냥 괜찮다고 하는 것 아닐까. 어떤 밤 혼자 의국에 앉아 있다가 그들에게도 터널이 나타나면 어떡하지. 하지만 이미 연락도 잘 하지 않고, 그들 모두에게 편지를 쓰기에는 여전히 나는 시간이 없다. 그래서 가끔은 동기들의 얼굴을 떠올려 보며 혼자 작게 읊조려 본다. 아임 낫 파인, 땡큐, 앤유?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 더 버티기 운동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