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병원으로 환자가 전원해야 할 상황에서, 환자 상태가 좋지 않으면 의료진이 동반해서 가야 하는데 이를 '트랜스퍼'라고 부른다.
의학 드라마에서 보면 새햐얗고 빳빳한 가운을 입은 의사가 능숙하게 환자를 데리고 앰뷸런스(구급차)에 타는 장면을 종종 볼 수 있다. 대개 표정은 확신에 가득 차 있다.
그런데 대부분 트랜스퍼를 가는 의사는 인턴이다. 드물게 주치의(담당 전공의, 레지던트)가 환자와 함께 가기도 하지만, 격무에 시달리는 전공의들이 트랜스퍼까지 따라가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해서, 대개는 '환자에 대해 잘 모르고' '의학적 지식은 있으나 임상 경험은 충분하지 않은'인턴 의사가 환자를 다른 병원까지 안전하게 모실 책임 상황에 놓이게 된다.
응급실로 내원한 hanging(목을 매단)환자, 다른 외상은 없지만 의식은 없었고 발견 당시에 시간이 꽤 지난 뒤여서 저산소성 뇌손상(hypoxic brain injury)이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함께 온 배우자가 오열하는 사이, 의료진들은 자가 호흡이 없는 환자에게 빠른 기관내 삽관과 인공 호흡기 연결을 했고, 중심 정맥관을 삽관하여 낮은 혈압과 치솟는 맥박을 잡아 보려고 했다. 응급실에서 처치가 진행되던 중 환자의 다른 보호자들, 그러니까 환자의 부모님과 형제들이 속속 도착했고, 응급실에 환자가 도착한 지 약 1시간여 만에 보호자들은 다른 병원으로의 전원을 강하게 요구했다.
지금 다른 병원으로 가다가는 환자가 위험해 질 수도 있다는 의료진의 만류에도 불구, 보호자들은 지인이 교수로 근무한다는 10여분 거리의 더 큰 대학병원으로 전원하기를 강력히 요구했다. 환자의 형제 중 한명은 화를 내며 침대를 마구 내려치기도 했다. 우리 병원에서 더 이상의 처치를 거부하는 보호자들, 대기하고 있는 사설 구급차. 응급실 과장님은 한숨을 쉬며 해당 병원에 전화를 걸었고, 응급실로 와도 좋다는 대답을 들었다.
하여, 말 그대로 '사경을 헤매고 있는' 환자와 함께 10분간의 트랜스퍼를 할 의사로, 의사 생활을 시작한 지 이제 막 2개월이 된 내가 낙점되었다.
혹여 심정지가 있으면 투약할 수 있도록 승압제(혈압을 올리는 약)를 담은 주사기를 주머니에 넣고, 양 손으로 앰부 백을 열심히 짜며 환자와 함께 다른 병원으로 가던 그 길. 환자가 잘못되면 안 된다는 긴장감과 심하게 흔들리는 구급차 뒷자리 때문에 금방이라도 토할 것 처럼 구역감이 들었다.
다행히 트랜스퍼 과정에서는 환자 상태에 아무 변화가 없었고, 도착한 병원의 응급실 의사들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내게 환자 상태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지만, 나는 하나도 대답하지 못했고 직급이 꽤 높아 보이는 의사 하나가 "에이씨, 아무 것도 모르는 인턴 애를 이렇게 보내면 어떡해." 하더니 환자를 데리고 들어갔다.
나는 혼자 응급실 입구에 황망히 서 있다가, 아무도 더이상 나를 찾지 않아 병원 밖으로 나왔다.
트랜스퍼가 끝나고 나면 사설 구급차가 원래의 병원으로 다시 데려다 주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대부분 이 경우에는 가운을 입은 채로 처음 와 보는 병원에 덩그러니 남겨지게 되고, 트랜스퍼를 갈 때는가방도 없이 가기 때문에 가운을 벗어 둘둘 말아 쥐고 택시를 타고 돌아오게 된다. 택시를 타자 짧은 거리인데 택시를 탔다며 택시 기사가 나를 마구 책망했다. 모든 긴장이 풀리며 눈물이 흘렀다. 일단 울기 시작하자 속절없이 펑펑 울었다.
그 경험 후로 도로에서 구급차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저 안에 혹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인턴 선생님이 한명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한다.
그리고 오늘, 지역병원 파견 근무 중에, 이제 의사가 된지 몇 년이 지나 어느 정도의 '무서운 일'에는 동요하지 않고 처치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짬'이 생긴 내게 또 트랜스퍼를 갈 일이 생겼다. 당직을 서던 중 환자의 혈압이 70/30까지 낮아졌다는 말을 듣고 병동에 달려갔는데,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 폐색전증으로 항혈소판제와 항응고제가 투약되고 있었고, 부정맥도 있었으며, 최근에 혈압약을 증량했는데 아침 혈압약도 그대로 들어간 터였다. 기저질환으로는 파킨슨 병과 뇌졸중 병력이 있어, 눈만 뜨고 있고 발화는 전혀 없는 상황이었다. 하루 정도 지켜볼까 고민했지만, 최근 혈액 검사 결과를 보면 조금씩 혈색소 수치가 낮아지고 있었다. 추가 검사가 필요해 보였다. 그러나 파견 나온 이 지역병원에서는 혈액검사도, 영상검사도 불가능했다. 급한대로 수액을 펑펑 틀어서 주면서 병동 투약장을 다 뒤져 승압제를 찾아 투약했다. 그리고 환자가 원래 입원해 있던 1시간 거리의 대학병원에 중환자실 자리를 어레인지(arrange, 환자가 병원에 도착해서 바로 처치 받을 수 있도록 해당 병원 의료진과 일종의 예약을 해 두는 것)했다.
사설 구급차가 도착했고 출발 전 환자의 몸에 모니터링기를 연결했다. 그런데 산소 포화도가 95%이상 유지되던 분인데 모니터 상에는 20%로 표시되었다. 내 손가락에 모니터링기를 끼웠다. 역시 20 %. 산소 포화도 모니터링기가 고장난 것이다. 이래서야 혈압계도 믿을 수가 없다. 일단 구급차를 출발시키고, 환자 의식상태가 변하지 않는지 보면서 약 40여분간 또 다시 긴장과 멀미 속에서 트랜스퍼를 갔다.
당직실에 돌아오니 새벽 세 시 반이다. 가을밤의 한기가 옷자락에 묻어 당직실에 함께 들어왔다. 툭툭 털어내고 자리에 눕는다. 쿵, 쿵 하고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진다. 놀랐지, 괜찮아, 별 일 아니야. 다 괜찮아 질 거래도. 스스로를 열심히 위로해 본다. 자야 해, 두 시간 뒤에는 회진 준비를 해야 하잖아. 자야 해. 괜찮아, 괜찮다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니, 그 환자가 먹고 있던 약 중에 최근에 증량한 파킨슨 약을 전원소견서에 안 쓴 것 같아. 다시 쿵, 쿵, 심장이 뛰기 시작하고 조금 전에 열심히 털어 낸 한기가 스멀스멀 침대 다리를 타고 기어 올라와 내 옆에 눕는다. 아니야, 썼어. 그런데 왜 아침에 혈압 약을 그대로 주라고 지시했을까? 그때는 수축기 혈압이 110이었잖아. 쿵,쿵. 언젠가부터 이러다가 심장 벽이 강하게 내려앉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VPC(심실조기수축) 나 뭐 그런 거겠지, 별 일 아닐 거야. 일단 오늘은 진정하고 자야 해. 괜찮아.
그런데 정말, 나는 이대로 괜찮은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