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만한 가을, 삶의 흐름을 바라볼 수 있는 여유를.
1.
갑자기 머릿속이 하얘졌다. 아침부터 배가 뒤틀리듯 아팠지만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갔는데 예배 중인데 참지 못할 정도로 식은땀이 나며 배가 뒤틀렸다. 화장실로 가서 구역질을 하는데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여보 나 안될 것 같아. 가야 할 것 같아."
예배 중에 나왔는데 서늘한 가을바람 속에서 내 몸은 차가운데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었다. 아이도 나오자 도저히 차 있는 곳까지 걸어갈 수도 없어서 택시를 불렀는데 좀 걷다가 길거리에 주저앉았다. 일어서라는 남편의 짜증과 걱정스러운 말에도 나를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아팠다.
"엄마, 괜찮아?"
택시는 우리를 보지 않고 지나쳐버렸다. 택시 기사분께 전화를 걸었는데 받지 않고 아내는 쓰러져 있고 어쩔 줄 모르는 남편은 평소 같지 않게 흥분한 상태로 위치를 다시 말하고 왜 전화를 받지 않게 설정하셨냐고 따져 물었다. 택시에 올랐는데 택시 기사님도 화를 내며 자초지종을 말하려고 하는데, 거칠게 숨을 내쉬며 울고 있는 나를 보더니 두 사람 모두 침묵으로 사과를 대신했다.
그리고 집에 오자마자 구토를 하고 나는 정신없이 잠을 잤다. 훨씬 나아졌다. 또 똑같은 증상이었다.
식은땀. 구토. 어지러움. 과호흡.
지긋지긋하다. 최근에 크고 작은 이벤트들이 직장과 가정에서 많았다. 무리했나 보다.
"여보 나 좀 지쳐."
몸이 안 좋다고 느껴지더니 구내염과 감기몸살이 같이 왔다. 오늘은 결국 버텨내지 못했다.
2.
아무것도 하지 않고 오늘도 집에 있었다. 장을 좀 보고 B 마트로 주문을 했는데 생각보다 너무 오래 걸리네 생각하고 있을 때쯤 기사님께 전화가 왔다.
"여기 운동장인데 어디로 가면 될까요? 불도 다 꺼졌는데.."
"네? (놀이터를 말씀하시는 건가...) 아 여기로 와 주셔야죠. 다들 집에 올라와주셨는데요. 제가 내려가야 할까요?"
"어디로 가면 되는데요?"
"000동 0000호요."
"문이 다 잠겼는데, 학교인데 몇 호가 있어요?"
"네?"
아뿔싸. 동 학년 선생님들 사준다고 커피를 주문하면서 주소지를 학교로 해 놓고 바꾸지 않은 것이었다. 어쩌지... 오늘 몸도 안 좋아서 거기까지 다녀올 수가 없는 정도인데...
"정말 죄송합니다. 주소지가 잘못 기재되었어요. 집이 직장과 너무 먼 곳에 있어서 갈 수가 없어요. 죄송하지만 고객센터로 저희가 반품 처리할 수 있을까요?"
"네네~ 대신에 빨리 저에게도 전화해 주십시오."
짜증이 조금 섞인 듯하지만, 정말 죄송하다고 연신 푸 말씀드리니 누그러지신듯 했다.
고객센터 상담사는 내가 만나보았던 상담사 중에 최고였다. 어떤 상황인지 알고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지 상세히 전화로 알려주며 반품비용 9000원을 내고 반품 처리를 할 수 있었다. 당황했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는지 남편이 아파서 정신없었나 보다라며 토닥여주었다.
3.
딩동.
'누구지?'
"누구세요?"
"............"
대답이 없어 아이랑 나가 현관문을 열고 보니 앞집 꼬마 2명이 형아 준다고 편지랑 같이 넣어가지고 왔다. 핼러윈에 앞집 아이들이 생각이 났다. 호박 머시멜로우와 호박 젤리를 넣은 호박 바구니에 넣고 아이가 편지를 써서 앞집 현관 앞에 걸어두었다. 핼러윈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가져가지 않아 어디 여행을 갔나 보다 했다.
확인을 늦게 했다며 엄마, 아빠, 꼬마 남자 둘이 찾아왔다. 예쁘게 편지를 쓰고.
하루 종일 아프고, 실수하고 기분이 좋지 않았는데, 작은 꼬마 2명이 찾아온 덕분에 즐겁다.
사진 설명을 입력하세요.
4.
오늘은 아파서 기록하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쓸 정도로는 호전이 되어서(?) 책 리뷰와 일상의 기록을 남겨본다.
나에게 주어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며.
내 주변에 좋은 이들이 많다는 것에 감사하며.
욕심내지 않고, 몸의 소리를 자주 듣고 삶의 흘러감을 바라보는 여유도 가질 수 있도록.
풍만한 가을 조용히 다짐해 본다.
@지혜롭게, 몌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