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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별 Nov 24. 2024

마주할 용기

모든 만남에 떨림이 있었다. 

그 떨림은 용기를 내야 한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교사들에게는 매해마다 새로운 사람들을 마주해야 하는 이벤트가 마련되어 있다. 

학교를 옮기게 되면 새로운 동료와 관리자들을 만나게 되고, 담임교사라면 대략 25-40명 정도의 반 아이들을 만나게 되고, 그 아이들의 학부모들을 만나게 된다. 


19년이 넘어가면, 이러한 만남에 의연해질 법도 한데, 나에겐 늘 익숙지 않은 이벤트다. 그 이벤트를 대충 흘려보내면 1년이 지옥의 시간으로 채워질 수도 있기에 늘 신경이 곤두세워질 수밖에 없는 빅 이벤트다.


작년과 동일한 근무지에서 머무르게 된다면, 그나마 동료교사들의 정보가 있기에 어느 학년에 누가 가고, 어떤 업무를 누가 맡을지 대략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말 그대로 피 터지는(?) 눈치싸움이 일어난다. 근무지를 옮기게 되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학교마다 다르겠지만,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새로운 전입자에게 기존 잔류하고 있는 사람들과 동일한 선택권을 주지는 않는다. 남아있는 것들 중에서 주워 먹기 식이다.




7년 전쯤 근무지를 옮기게 되었다. 첫인상이 중요한지라 나름 깔끔하게 옷을 입고 새로운 학교로 향했다. 교문을 통과하자마자 어디로 가야 할지 사막에 혼자 놓인 기분이다. 운동장을 가로질러 본관 정문으로 보이는 곳으로 걸어갔다. 첫 만남의 장소, 교무실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올해 새로 전입온 교사 000입니다."

"아, 어서 오세요. 여기 앉으세요."


친절하지만 배려가 담긴 가식적인 미소가 온몸을 잔뜩 긴장하게 만든다. 첫 만남에서 묻는 질문의 유형은 거의 똑같다. 경력과 나이의 괴리가 없는지, 자택의 위치, 아이로 인한 휴직 유무. 집은 당시 지하철로 20분 거리에 있어서 근무지와 가까웠고, 육아휴직은 안 할 것이라는 것을 밝히자 만족스러운 듯 교감은 다음의 안내로 들어간다.


"다행이네요. 혹시 5학년을 맡아줄 수 있을까요?"

"네? 저 아이가 어려서 전담을 신청했는데요. 그때 통화할 때 교감 선생님께서 될 것 같다고 말씀하셨는데...."

"아 그게...(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그렇게 됐어요. 근데 5학년을 맡아줬으면 좋겠어요. 5학년은 업무도 없어요. 6학년은 있는데."


뭔가 이상했다. 6학년은 업무도 많고, 사건이 많아 대부분 기피하는 학년이라 업무를 주지 않는 경우는 봤어도 6학년은 있는데 5학년이 업무가 없다고? 학년 업무만 하면 된다고? 뭔가 이상했다. 그래도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반배정은 어떻게 하나요?"

"아, 그게 선생님께서 오시기 전에 다른 반들은 다 배정이 되어서 한 반이 남았어요. 그 반을 맡아주시면 될 것 같아요."

"네.."


몇 가지 안내를 받고 일어서려는데 교감 선생님께서 교장실에 들려 인사나 하고 가라고 말씀하셨다. 어른께 인사드리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했기에 따라나섰다. 교감 선생님께서 교장실 문을 여시며 내가 인사도 드리기 전에 나를 소개하셨다.


"교장 선생님, 이번에 새로 오신 000 선생님이십니다. 올해 5학년 0반 맡아주시기로 했어요."

"아, 아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복 많이 받으실 거예요."

'뭐지......'


그리고 교장은 나에게 다음 날 나에게 다시 교장실로 와 달라고 하는 것 아닌가? 사실 아이가 어렸고, 어린이집 방학 중이었기에 애 맡길 곳이 없었던 내가 좀 곤란할 것 같다고 말씀드렸음에도 불구하고 꼭 내일 다시 와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아이는 되도록 데리고 오지 말고, 혼자 와 달라고.


'뭔가 쎄한데...?'


아이가 맡길 곳이 없었던 나는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는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모처럼 여행이신데 불편하시지 않을까 염려되어 걱정했지만 손자 사랑이 남다르신 시어머니께서는 감사하게도 걱정 말라며 흔쾌히 아이를 데리고 강원도로 여행을 떠나셨다. 엄마와 처음 떨어져 보는 아이가 걱정은 되었지만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그리고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려고 굳이 다음 날 나만 교장실로 찾아오라는 건지 걱정과 두려움이 들었다. 


한 번 왔을 뿐인데, 두 번째로 방문하는 학교는 사막보다는 들판에 가까웠다. 교장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어제처럼 반가운 얼굴이 아니라 조금은 굳은 얼굴로 교장 선생님께서 앉아보라며 봉투 하나를 내미시며 말씀하셨다. 


"사실은, 선생님 반에 힘든 아이가 하나 있어요. 작년에 담임이 4번이나 바뀌었는데 마지막 선생님이 퇴직한 선생님, 계약직이셨는데 그래도 그분은 두 달을 버텨주셨어요. 그래서.. 에... 그러니까... 이게.. 어떻게 그 아이를 대하면 좋을지 두 달간 관찰한 것을 적은 것인데,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들어가시는 것보다 듣고 들어가시는 게 좋을 것 같아 이렇게 불렀어요."


그분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1학년때부터 시작해서 4학년때까지 계속해서 학폭이 터졌고, 아이도, 학부모도 힘든 상대라는 것. 그랬구나. 그래서 5학년에 업무가 없었구나. 그리고 다 모여 반 배정을 한 게 아니라 콕 집어 한 반만 남겨두었구나. (나중에 부장이 끝날 때서야 오해하지 말라고 정말 반을 뽑았는데 그 반만 남았다고 하던데, 그렇게 믿고 싶다.)



두려운 마음으로 첫날 그 아이를 마주했다. 과밀학급이라 한 반에 41명이었는데 한눈에 누가 그 아이인 줄 알았다. 빼빼 마르고 눈에 다정함보다는 적개심이 가득해 보이던 아이.


첫날은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는데, 둘째 날 일이 터졌다. 체육시간이 되어서 이동하려는데 갑자기 그 아이가 고함을 질렀다. 


"왜!!! 날!!! 쳐다보는 거야?? 아아아아아악!!!!!!!"


삐쩍 마른 아이의 괴성이 그렇게 크게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고, 누가 특별히 그 아이에 대해 험담을 하지도 않았다. 그냥 갑작스레 일어난 일이었다.


"또 시작이네."


아이들은 체념한 듯 멍하니 그 아이를 보다가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그 아이에게 다가가 무릎을 꿇어 자세를 낮췄다. 아이 얼굴을 마주했다. 조금은 두려웠다. 아이의 이런 행동 이후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고학년이면 나에게 순간적으로 공격을 할 수도 있기에.


"가자, 00야. "

"악악!!! 난 절대 움직이지 않을 거야. 선생님은 나한테만 도대체 왜 그래요?"

"00야,  난 오늘 널 두 번째로 만났어. 체육 시간이야. 가자."

"안가. 절대 안 갈 거야. 난 집에 가고 싶어요. 엄마 불러요."

"선생님, 쟤 원래 저래요. 그냥 저희끼리 체육가요."


아이들의 말에 의하면 체육시간만 되면 갑자기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본다면서 안 간다고 떼를 썼고, 교감선생님이나 아이의 엄마가 와서 아이를 케어하고 자기들끼리 체육을 했다는 것이다.


"아니, 그건 아닌 것 같아. 00도 우리 반인데 선생님은 00 기다릴 거야. 00야, 너 없이 선생님은 체육 안 해."


그리고 아이들에게 양해를 구했다.


"얘들아, 정말 미안해. 너희들에게 체육이 어떤 의미인 줄 아니깐, 얼마나 중요한 지 아니까 미안해. 그런데 선생님에게 우리 반은 우리 모두라고 생각해. 오늘 하루만 00을 기다려주는 건 어때? 다음에 이러면 그때는 체육 하자. 근데 오늘은 첫날이잖아. 그래서 너희들에게 이렇게 부탁하고 싶어."


아이들은 일그러진 표정과 안쓰러움의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이 저렇게 부탁하는데 썩 마음에 들진 않지만 들어줘야지 뭐 이런 표정으로 네라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렇게 00 앞에 쪼그려 앉아 아이의 눈을 바라보았다. 10분, 20분, 30분 그리고 40분. 결국 체육시간이 다 흐를 동안 00은 꿈쩍하지 않았다. 


"얘들아, 정말 고맙고 미안해. 다음에 진도가 좀 빠른 게 있으면 선생님이 오늘 못한 체육 시간은 꼭 확보해 보도록 노력할게."


그렇게 아이 앞에서 쭈그려 앉아준 선생님이 고마워서였을까? 집에 간다고 하던 아이는 가지 않았고, 그 사건 이후로 체육 시간마다 생떼를 부리던 행동은 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에도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있었지만, 한 번도 학폭은 없었다. 그 아이의 엄마는 거의 매일을 편지 형식을 빌려 우리 아이가 계속 반 아이들에게 피해를 당하고 있다고 보내왔지만 학교로 와서 난리 치는 행동은 하지 않았다. 내가 아동발달전문가는 아니지만 오랫동안 교직에서 아이들을 봐 온 경험의 눈으로 봤을 때, 분명 00은 자폐나 발달에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보였다. 그걸 인정한다면 아이들도 00의 행동을 조금이라도 이해해 주고 배려해주려 할 테지만, 엄마는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전 선생님들의 말도, 교장, 교감선생님의 말도 듣지 않았고 역시나 나의 말도 듣진 않았다. 나도 딱히 더 이상 설득하진 않았다. 엄마의 마음을 알 것도 같았기 때문이다. 그저 이 엄마에게는 아이에 대한 인정에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한가 보다 싶었다.


그렇게 1년이 흐르고 크고 작은 사건들은 있었지만 무사히 한 해를 보냈다. 그 아이의 엄마가 선생님을 만난 건 행운이라면서 마지막 날에도 편지를 보내왔다. 하지만 감사하진 않았다. 녹음기 사건 때문이다. 녹음기를 아이 편에 보내왔는데 거기에 내가 아이에게 하던 말을 들었다면서, 감동했다고. 너무 감사하다고 말을 전화기 너머로 하는데 나는 소름이 돋았다. 녹음기라니. 녹음기라니. 




한 해가 마무리 되고, 연말 동학년 회식에 관리자들이 같이 참여했다. 나를 따로 불렀던 그 교장은 그 엄마가 선생님을 엄청 칭찬했다고, 어떻게 학폭 한번 터지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냐며 그 비결이 뭐냐고 물었다. 난 그저 썩소를 날리며 "반 아이들 덕분이죠."라고 답했다. 만족스러운 대답이 아니었는지 교장은 몇 번 더 묻다가 본인이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는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다음 해에 나는 몸 곳곳에 부종증세와 통증으로 대학병원을 일 년 동안 다녔다. 참아왔던 스트레스가 터진 것 때문인 것 같았다. 


그 아이를, 그 엄마를 마주할 수 있을까? 

1년 동안 최선을 다했기에 아쉬움은 없다. 

다만 마주할 용기는 나질 않는다. 마주한다면 내가 피폐해질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에.


그저 각자의 삶 안에서 잘 지냈으면 좋겠다. 그 아이도,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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