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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몌별 Nov 09. 2024

프롤로그

학창 시절, 누군가 나에게 꿈을 물었을 때 나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피아니스트요."


초등학교 5학년때쯤으로 기억한다. 불의의 사고로 나는 손가락 5개가 절단되어 봉합수술을 받았고, 

수술은 잘 되었지만 피아노를 치다가 실밥이 터져 하얀 건반 위로 피가 흘렀던 게 트라우마처럼 남았다. 

피아노는 칠 수 있었지만 손끝에 전해지지 않는 무감각과 편평하지 못한 손가락을 핑계로, 

나는 그다음 해에 피아니스트 꿈을 접었다.


이후 학창 시절 나는 선명한 꿈이 없었다. 그래서 치열하게 공부를 한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수능날에는 떨려서 먹었던 청심환이 효과가 만점이었는지 3교시 때 잠들어버렸다. 감독관이 답답했는지 20분을 남겨두고 나를 깨워줘서 부리나케 풀었던 것 같다. 망쳤다는 생각에 재수를 생각했다. 


"잘 봤니?"


수능을 마치고 나가는데 담임 선생님께서 기다리고 계셨다. 


"아뇨. 저 재수하려고요."

"뭐? (철썩)"


기다리는 선생님께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한 나는 그 자리에서 뺨을 맞았다. 그리고 부모님과 의논하시더니 생각하지도 않았던 교대를 지원하게 되고 나는 그렇게 선생님이 되었다. 


다른 신규 선생님들처럼 나는 열정이 넘쳤고 거의 매일을 밤늦게까지 업무를 했다. 늘 '언니'라 불리는 한 두 살 많은 선생님들과 남아 저녁을 시켜 먹고 환경미화, 교재 연구, 업무 처리 등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일들을 착실하게 해 나갔다. 


나의 열정과는 달리 외부적 요인들은 내가 하면 안 될 것들이 자꾸 생겨났다. 토요일에 하던 음식 만들기 활동은 금지되었고, 교실 앞에 붙어있는 학급 안내판 사진을 보고 빚쟁이가 아이를 납치하는 사건도 생겼다. 학생 인권을 위해 일기 쓰기가 금지되었고, 스승의 날 카네이션 한 송이, 학생이 주는 사탕 한 개라도 받으면 김영란법을 어기는 청렴하지 못한 교사가 되었다. 


회식자리면 교장, 교감에게 술 한잔 따르기 위해 상 주위로 쪼르르 앉아있는 것이 일상이었고, 

청소년 단체 부교사들은 다 임신한 교사를 넣어 실질적으로 일할 수 있었던 건 주담당 교사였던 나 혼자여서,  홀로 학생 60명을 혼자 이끌고 야영을 데리고 가 텐트 12개를 혼자 친 적도 있었다. 


20대에 젊었을 때에는 "선생님은 애 안 낳아봐서 모르실테지만"이 늘 학부모의 말 서두에 붙었고, 

30대에 결혼을 한 이후에는 임신을 해서 휴직에 들어갈 수 있는 잠재적 예민한 교사가 되었고, 

40대에는 20대 선생님들처럼 신선하고 젊은 느낌이 없는 교사가 되었다. 


그때마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을까 생각했다. 

내 열정이 과한 것일까? 

내가 이 직장에 계속 다녀야 하는 것일까?

나는 이 직업과 어울리는 사람인가?


5년 차 때는 나는 사직서를 늘 가슴에 품고 다녔다. 질문에 대한 답이 나오지 않아 19여 년을 버티고 버텼다. 

내 교직 인생의 방황과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누구나 다 그런 시기를 겪는다. 

처음부터 새로운 영역에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이 있을까? 

그렇게 숨죽이며 잘못된 것은 혼자 잘못된 것이라 외치며 정작 밖으로 표출하지는 않았다.


서이초 사건을 겪으며 이제는 표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신규였을 때 뭐가 옳고 그른지 몰랐을 때, 

누군가 "이건 네 잘못이 아니야."라고 말해줄 수 있는 어른이 필요했던 때를 떠올리며, 잘못된 것을 묵인하며 힘없이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대단한 어른은 아니지만, 보통의 존재인 내가 어떻게 사회의 차가운 시선을 견디고, 

세상이 교사의 존재를 하찮게 여길지라도 스스로를 존중하고 떳떳하게 살아갔는지, 

어떻게 이 냉혹한 교육현장에 10년을 넘게 머무를 수 있었는지 단단한 위로를 건네고 싶다.


교육현장이 냉혹한 게 사실이지만, 가끔씩은 따뜻한 바람도 불어온다는 것, 

그 힘으로 버텨갈 수 있는 모든 날들이 기적이었음을 고백하고 싶다.


밥 로스에 따르면, '빛에는 빛을 갖다 대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어둠을 어둠에 갖다 대면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 빛과 어둠의 명암만이 서로에게 의미를 갖는 것이다.'라고 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아픔과 어두움을 조명하고, 

더불어 교육 현장에서 느낄 수 있는 아이들의 성장의 빛을 밝혀내며, 

당신과 나의 교육자로서의 삶이 얼마나 가치로운 것인지 전하고 싶다.


한 번도 교사가 꿈인 적 없던 내가, 

무언가의 대안으로 교사가 되었던 내가, 

어떻게 20년 가까이 되는 시간을 교육현장에 있을 수 있었을까?

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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