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너 자신의 가치를 믿기를

— 지도로 세상을 볼 수는 없으니까, 직접 걸어야 하니까

by 그라미의 행복일기

— 지도로 세상을 볼 수는 없으니까, 직접 걸어야 하니까


트롤퉁가의 감동이 채 가시기도 전에
나는 쉐락볼튼 트레킹 마지막 하산길에서 아찔한 일을 겪었다.


전날 내린 비로 길은 젖어 있었고
돌산 사이로 난 좁은 오솔길에는 풀이 미끄럽게 젖어 있었다.
조심하려 애썼지만, 어느 순간 발이 미끄러지며
몸이 아래로 굴러 떨어졌다.

그 짧은 몇 초가 얼마나 길게 느껴졌는지 모른다.

한 번만 더 굴렀다면 절벽 아래로 추락할 뻔했다.


지금도 그 순간을 생각하면 숨이 막힌다.

기적처럼, 그곳에는 딱 하나의 돌이 있었다.
내 몸을 멈춰 세운 단 하나의 돌.
그 덕분에 나는 크게 다치지 않았다.
그 자리에 엎드려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손끝이 떨리고, 가슴이 요동쳤다.
살아 있음이 이렇게도 벅찬 일인지 처음 알았다.


“엄마, 유럽의 산은 거의 돌산으로 되어 있으니 조심해.”
출국 전, 아들이 건넸던 그 한마디가 떠올랐다.
그때는 그냥 흘려들었는데,
그 말이 내 귓가에 쿵, 하고 울렸다.

한국에 돌아와 그 이야기를 해주자
작은아이는 눈시울을 붉히며 내게 안겼다.
“엄마, 왜 그렇게 위험하게 굴러?
엄마는 내게 얼마나 소중한데…”
그 말 한마디에,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출장을 다녀온 큰아이는 피곤할 텐데도
“심야 영화 볼래요?”라며 나를 불러냈다.
그 시크한 말투 뒤에 담긴 따뜻한 마음을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날 밤, 영화 알라딘을 함께 보던 중
지니가 알라딘에게 이런 말을 했다.


“너 자신의 가치를 믿기를.

지도로 세상을 바라볼 수 없어요. 세상을 직접 보아야 해요.”


그 말이 가슴을 쳤다.
그건 마치, 이번 여행이 내게 건넨 메시지 같았다.

세상은 책과 지도 속에만 존재하지 않는다.


직접 보고, 걷고, 느끼고, 넘어져야만
비로소 ‘나의 세상’이 된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앞으로의 길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겠다고.
삶이란 결국, 또 한 번의 여행이니까.

그리고 그 여행 속에서
나는 여전히 배우고 있다.


넘어졌던 자리에서 일어서는 법,
사랑하는 사람들의 마음에 감사하는 법,
그리고 무엇보다
‘나 자신의 가치를 믿는 법’을.


인생의 지도는 언제나 미완성이다.
그러나 내가 걷는 한, 그 길 위에는
새로운 선이 계속 그어질 것이다.

토, 일 연재
이전 05화4화. 노 프라브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