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낯선 길 위에서 나를 만나다
한국에서 암스테르담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
옆자리에 앉은 여성이 있었다.
우리는 10시간이라는 긴 시간을 거의 말을 하지 않고 보냈다.
그러다 착륙 한 시간을 앞두고
서툰 영어와 손짓, 그리고 웃음으로
가족과 일, 그리고 인생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녀는 전시회 기획자로 한국에서 일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이었다.
나처럼 아들만 둘을 둔 영국 여성.
말이 완벽하게 통하지 않아도,
그녀의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따뜻함이 느껴졌다.
긴 비행 끝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브루겐에서 암스테르담으로 가는 짧은 비행에서는
또 한 명의 여성을 만났다.
작고 여유로운 비행기 좌석 옆으로
이탈리아 여성 한 명이 앉았다.
보석 디자이너이자, 나와 같은 나이의 그녀는
웃으며 내게 ‘동갑’이라는 단어를 배우고는
하하 호호 웃었다.
착륙 안내가 나올 즈음에 기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착륙이 1시간 지연됩니다.”
주변 사람들은 안절부절못했지만
그녀는 오히려 나를 향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노 프라브럼!(No problem!)”
그 짧은 한마디가
이 긴 여행에서 내가 배운 가장 큰 문장이었다.
모든 일에는 변수가 있었다.
예상치 못한 지연
계획하지 않은 만남
그리고 뜻밖의 사고조차도.
하지만 결국 그 모든 것은
나를 성장시키는 또 하나의 시간이었다.
귀국 후에도 그녀와는 소식을 주고받았다.
언어는 달라도 마음은 통했다.
그녀의 “노 프라브럼”이라는 말은
지금도 내 삶의 작은 주문이 되어 있다.
돌아와 일상으로 복귀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짐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트롤퉁가 정상에서 찍은 사진
세르파와 강아지와 함께 찍은 그 순간
그리고 그녀가 선물해 준 노란 비옷
그 모든 것이 ‘두려움을 넘어선 나’의 증거였다.
살면서 우리는 수많은 변수 앞에 선다.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고
뜻대로 되지 않는 날도 많다.
그럴 때마다 나는
그녀의 웃음을 떠올린다.
“괜찮아요, 노 프라브럼.”
이제 나는 안다.
문제는 늘 존재하지만
그 문제를 대하는 마음의 태도가
나를 지탱한다는 것을.
그 여행 이후로,
나는 두려움을 조금 덜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그 대신
조금 더 단단하고, 조금 더 유연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