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예지 Oct 22. 2024

묵묵히, 묵묵히 그렇게

<그리운 날엔 사랑을 지어 먹어야겠다> 속 "꿀밤묵"


엄마가 쑨 묵에는

별다른 재료랄 것이 없었다.

꿀밤 가루와 물이 전부였다.

사실, 진짜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는 걸,

늦은 저녁 엄마가 묵을 쒀대는 모습을 보면서

알게 되었다.



그건 자세히 보지 않으면 알아챌 수 없었다.

엄마는 좋아하는 일일연속극을 보다가도

밥솥을 열어 묵을 저었다.

저녁 아홉 시도 안 돼 입이 찢어지게

하품을 하면서도 묵을 저었다.

멓겋기만 한 묵이 빽빽하게 되질 될 때까지

젓고 또 저었다.



모로 누운 채 깜빡 잠든 엄마가

묵을 젓는다고

부스스 몸을 일으킬 때,

어쩔 수 없이 입 밖으로 끄응차 하며

밭은 숨을 뱉어낼 때,

엄마의 몸은 기름칠이 필요한 낡은 기계 같았다.

곧이라도 운행을 멈춰버릴 것 같은

낡은 기계......


/


<그리운 날엔 사랑을 지어 먹어야겠다> 중에서



------------------


J시에서 밤농사를 짓는다는 어르신과

비슷한 날짜에 수술을 하고

같은 재활병원으로 옮겨 병실까지 함께 쓰게 된 엄마.


두 분 다 무릎에 인공관절을 넣는 대수술을 하셨다.

보행보조기를 끌고 씩씩하게 병실을 누비던 두 사람.


그러고보니 다리가 아프지 않을 때,

엄마는 뒷산에 올라가 밤도 꿀밤도 줍길 좋아했지.


엄마는 그때 진짜

 날다람쥐 같았는데...


우렁우렁한 목소리로 꿀밤 많이 주워왔다고 자랑하던 엄마를

다시 한 번 볼 수 있을까?


울 엄마는 할 수 있을 거야!












작가의 이전글 염치없이 맛있는, 알아서 더욱 무서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