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류예지 Oct 31. 2024

집으로 가는 길

초단편, "시월의 마지막 날"


 

  


  꽤 크게 싸운 후 오랫동안 연락하지 않았던 언니 수아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은 시월의 어느 날이었다.

시차는 안중에도 없이 새벽부터 단잠을 깨우는 알림음에 미소는 메시지를 확인하기도 전에 문득 뾰족한 마음이 일었다. 어떤 전조도 없는, 그야말로 뜬금포 연락이란 게 있다면 바로 이런 건가, 자신과 제대로 화해부터 할 생각이었다면 시간부터 고려해야 하는 게 아닌가 싶어서.


  미소는 대관절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냐 윽박지를 셈으로 채팅 창을 열었다가 첨부된 사진 한 장을 본 순간 가슴이 덜컹 지하 아래로 내려앉는 기분을 느꼈다. 잠이 완전히 달아난 미소는 숄을 두른 채 서둘러 서재로 들어갔다. 지체할 겨를 없이 수아에게 통화 버튼을 눌렀다.


  -이게 뭐야?


  잘 지냈냐는, 그 흔한 인사조차 생략된 물음. 자매는 그랬다. 거두절미하고 과감히 본론부터 꺼낼 수 있는 그런 관계였다.


  -십 년인가? 아버지 돌아가신 지?


  마치 옆에 있는 것처럼, 물리적인 거리를 인지할 수 없을 만큼 수아의 목소리가 선명하게 들려왔다.


  -응.


  -벌써 그렇게 됐구나.


  -어떻게 이걸 찾은 거야?


  미소의 물음에 수아는 천천히 말문을 이어 갔다. 그날, 마트를 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형부와 말다툼 했다고. 그저 저녁 메뉴로 뭘 먹으면 좋을지 이야기하는 중이었다고. 수아는 날짜를 헤아리다 문득 아빠가 끓여주시던 스타일로 돼지고기가 양껏 들어간 김치찌개가 먹고 싶었다고. 그런데 형부는 김치 냄새가 싫어졌다고 이야기했다는 것이다.


  -악의 없이 말하는 사람이란 건 너도 잘 알 거야. 그런데 말이야. 어떤 전조도 없이 그런 이야길 하니까 서운하더라고. 한국에 살 때는 한국 음식을 그렇게 좋아하던 사람이… 고향으로 돌아오니까 완전 오클라호마 입맛으로 변해버린 거 있지?


  -원래부터 오클라호마 사람이었잖아. 언니만 끓여 먹지, 싫다는 걸 억지로 강요해서 뭐해.


  -저녁 두 번 만드는 일이 얼마나 고역인지, 너도 잘 알잖아?


  -알지. 그래서?


  -한 소리 할까 하다가 그 길로 나왔어. 반 시간쯤 드라이브 하다가 돌아갈 생각이었지. 근데… 이상한 게 말이야. 돌아가는 길이 전혀 생각나지 않는 거야. 집이 어디였더라. 우리 집은 안동인데 여긴 어딘가 싶더라고. 선셋을 한참 바라보고 있는데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어. 너도 보고 싶고, 아빠도 너무 그리운 거야.


  암으로 엄마가 돌아가신 건 미소가 열 살, 수아가 열다섯 살이 되던 해였다. 그때부터 두 자매의 소원은 이런 거였다. 누구도 서로의 곁을 떠나지 않고 영원히 함께하는 일. 스무 살이 되던 해, 수아가 고향을 떠났다. 이어 미소도 떠났다. 수아가 한국을 완전히 떠난 것은 십 년 전, 알츠하이머를 앓던 아빠가 돌아가시던 해였다. 아빠는 시월의 마지막 밤, 잠이 들듯 고요히 세상을 떠났다.


  아빠가 돌아가시고 수아마저 떠나면서 미소는 졸지에 고아가 된 것만 같았다. 남편과 딸아이가 있지만, 오늘의 수아가 길을 잃은 기분을 느낀 것처럼 미소도 이따금 자신이 사는 아파트 단지 앞을 서성거리곤 했다. 이맘때 쯤이면 그 증상은 더 심해졌다. 바닥을 딛고 섰을 때 발바닥에 닿는 찬 기운이 사무치게 다가오는 계절, 뜨거운 커피 한 모금이 아침부터 절실해지는 계절이면.


  -그러다 로드 뷰를 열어보고 싶어진 거야. 그냥, 그렇게라도 한번 집에 다녀오고 싶었어.


  집으로 돌아온 수아는 그길로 검색 창에 집 주소를 입력했다. 한 장씩 한 장씩 차분히 로드 뷰를 열어보다가 깨달았다. 이제는 다른 사람이 사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어버린 집을. 더 이상 두 자매도 아빠도 살지 않는 집을. 돌아갈 곳이 영원히 사라졌다는 자각이 선연히 다가올 때쯤, 햇수로 십오 년도 더 된 로드 뷰에서 원형 그대로 보존된 빨간색 벽돌집을 발견했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개보수하며 살았던 벽돌집이 파란색 대문 너머로 얼핏 드러났다.


  흡, 두 자매가 동시에 숨을 멈춘 것은 집 때문이 아니었다. 대문 앞에 서서 어딘가를 하염없이 바라보는 한 사람을 발견한 후였다. 모자이크 처리가 되어 있었지만, 두 자매는 그것이 아빠임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 아빠는 집을 떠난 적이 없다고. 단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난 적이 없다고 말이야. 우리와 헤어지지 않겠다는 약속을 아빠만은 내내 지켜왔다는 걸 그해에 찍힌 로드 뷰를 보면서 알게 되었지. 그런 생각이 드니까 말이야. 너랑 어떤 이유로 싸웠는지 전혀 기억나지 않더라고. 서운한 감정은 새까맣게 지워지고 다만 한없이 미안한 마음만 선명해지는 거야. 미소야, 미소야. 내 말 듣고 있니? 너는 늘 나를 잘 안다고 생각해서, 너만큼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잘 이해해 줄 거라고 생각해서 그랬던 거야. 그런 마음이 드니까 더는 지체할 수 없었어. 당장이라도 네 목소리를 듣고 싶었으니까. 미안해 그리고 고마워.”


  미소는 알고 있다고, 자꾸만 뭉개지는 발음을 찬찬히 가다듬어 대답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뜨거운 것이 자꾸만 자꾸만 목구멍을 타고 넘어오는 것만 같아서. 집으로 가는 길을 까먹은 어린아이가 어쩐지 자기 혼자만은 아닌 것 같아서.






함께 들으면 좋을 노래 : Janet Suhh(자넷서) - Home(집) (Prod. by Nam Hye Seung(남혜승))

https://youtu.be/2Fx-wVtJKWk?si=cdXxh4cm0kqYM4_-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