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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Dec 21. 2020

머든 하면 된다, 하이팅

letter 3. 엄마가 동생에게 보낸 편지

@최명순


아들 사랑한다 힘내

머든 하면 된다 하이팅

마늘 찧어서 냉장보관

파는 반은 어는데 여고[넣고]

반은 일반 냉장고 보관





동생이 졸업하고 취업을 하기까지, 그 과정은

여타의 다른 취준생들처럼 순탄치 않았다.

이력서 광탈, 면접 탈락의 고배를 연이어 마시고

번번이 어깨가 축 처진 채로 귀가하는 모습을 볼 때면,

딱히 어떤 위로의 말을 건네야 할지 가늠이 되지 않아

꾹 닫힌 입만큼, 꽉 닫혀버린 방문 앞을

똥줄타는 사람 마냥 서성대곤 했다.


 실은, 내 첫 취업의 과정도 쉽지 않았다.

기대치 않았던 -꼭 들어가고 싶었던-출판사 면접이 잡힌 날,

하필이면 몸살감기가 된통 걸리는 바람에

다대 다 면접을 시원하게 말아먹고 돌아왔던 최악의 날,

면접관 앞에서 '어버버'거리며 식은땀만 줄줄 흘렸던 일이,

내내 수치스러움으로 각인되어

후에 면접을 볼 때면 씻을 수 없는 공포의 한 장면으로 재현되곤 했다.

그리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기까지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경력자가 되어서는 경력 이외의 것들

(이력서 사진과 실물이 참 많이 다르시네요?에서부터 결혼 계획 유무,

부모, 형제는 뭐하시노? 와 같은 질문은 애교 수준,

합격 여부에 관계 없이, 자신의 굴곡진 인생사에 대해 일장연설하신 분도 있었지)

딴지를 거는 사람도 있었고

그렇지 않을 때는

수시 때때로 찾아오는 꿈과 현실의 괴리에서 고통을 느꼈다.


슬픈건, 누구와도 고통을 오롯이 나눌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설령, 누군가 위로를 한다 하더라도

상대방의 호의를, 호의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그 시절, 마음은 납작하게 누운 가자미 같았고,

감정은 울퉁불퉁 현무암 같았으며,

그런 상태로는  아무 것도 선선히 받아들이지 못했다.


동생은 지난한 취준생의 시간을 보낸 후 취업을 했고

지금은 성실하게 회사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여느 직장인처럼

매달 나가는 고정비를 걱정하면서,

출근하자마자 퇴근을 기다리면서,

때로 상사 험담을 안주 삼기도 하면서,


지금이야 서로 웃고 넘길 수 있는 해프닝으로

취준생의 시절을 추억하지만,

무언가를  기약하기 어려워진 인생에서

우리는 언제나 '취준'이라는 상황을 잠정적으로 준비해야 하는 세대다 보니,

아주 가까운 자리에서 서로의 고군분투 과정을 지켜보았던 동생과는

수십 년 동안 남모를 전우애가 쌓였음이 분명하다.


그 시절,

부모님은 아주 먼발치에서 우리를 지켜보았다.

딱히 근사한 위로를 건넬 줄 몰랐던 투박한 성향의 부모님은

시시때때로 빈 냉장고를 채워주는 것으로

위로의 말을 대신했다.


"서울로 대학만 보내면 다 될 줄 알았지.
 악착같이 뒷바라지하면 너네 인생은
배우지 못해 죽도록 고생만 했던
우리랑은 좀 더 다를 줄 알았지.
그런데 갈수록 살기가 이렇게까지 팍팍해질 줄, 누가 알았겠니?

과거의 어느 날,

동생이 또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는 연락을 받고,

엄마는 또 그렇게, 자신의 죄인 양 풀 죽은 목소리를 냈다.


그럴수록 부모님의 택배는 더욱더 열심히 날아왔다.

그것이 당신의 본분이라도 된 양,

머든 하면 된다, 하이팅이라는 메시지와 함께.


머든 하면 된다, 하이팅
머든 하면 된다, 하이팅
머든 하면 된다, 하이팅


그 말은 꼭 마법 같은 주문이라서

(동생은 그날의 메시지를,

아마도 까마득히 잊은 채 바쁘게 살아가고 있지만)


나는 여전히

아무 것도 해내지 못할 것 같은 불안에 사로잡힐 때면,

이 말을 꼭 세 번씩 되뇌곤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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