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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류예지 Dec 17. 2020

책 열건 팔아 주지

letter 2. 엄마에게 받은 가장 쿨한 편지

@최명순


사랑하는 딸

축하한다

내가 책 열건

팔아 주지

책은 한건이면된다




2018년 6월,

독립출판으로 <내가 딛고 선 자리>라는

제목의 인터뷰집을 냈다.


https://smartstore.naver.com/dasibookshop/products/3202416442?NaPm=ct%3Dkisewe9k%7Cci%3Da7e220289a3cbe6c320cd75aaa857ac0aa021fe7%7Ctr%3Dsls%7Csn%3D574641%7Chk%3D3fcc27861827428064c9f42a862175dd6ebf3eb6


6월, 갑작스레 여름이 찾아온 날씨

 다마스에 실려 책이 배달되었고,

인쇄소 직원분과

엘리베이터도 없는 돌계단을 낑낑 오르내리며 박스를 날랐던 기억이 난다.


70권씩, 총 5박스를 받았으니,

 좁다란 거실은 그야말로 '책무덤'이 되었다.

그래도 '무언가 해냈다'는 벅참과

뒤이어 '이제 끝난 건가?' 하는 공허함이 동시에 몰려와

한참 멍을 때리다가

 허겁지겁 집에 전화를 걸었다.


"엄마, 오늘 책 나왔어!"

"오냐, 축하한다."


무미건조하고 단출한 한 마디가

수화기를 타고 건너왔다.


나의 실용주의 엄마는,

비실용주의 딸내미가

허공에 서까래를 세우고 지붕을 올리며

 집 하나를 짓겠다고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때로는 걱정스럽게

때로는 못마땅하게 바라보곤 했다.


어느 결에는 그런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었지만,

그렇다고 자식을 향한 엄마의 걱정이 쉽게 사그라들까.


하고 싶으면 해야지.
그렇지만 말이야.
하고 싶은 것이 모든 것을 해결해주진 않아.

며칠 후,

예정에 없던 택배 한 박스가 도착했다.

발신인은 집,

박스 안에는 진미채, 멸치볶음, 양념고추부각 등,

스트레스로 떨어진 입맛을 돋울 만한

반찬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새하얀 봉투 덤,

그 안에는 오만 원짜리 두 장이

다섯 줄의 편지와 함께 동봉되어 있었다.


마치, 드라마  <시크릿가든> 속 현빈의

차진 대사를 닮은 말투.

책 열 권 값을 

애틋한 마음 하나와 퉁쳐버리는 일.


나는 늘 남는 장사를 하지 못해 안달복달하는데,

늘 밑지는 장사만 하면서도

엄마는 왜 이렇게 여유가 넘치는 걸까?


태평양처럼 한없이 넓은 엄마 앞에 서면,

내 마음 가뭄 든 시냇물처럼

쪼그라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명순의 레피시' 이전 글 : https://brunch.co.kr/@anding-credit/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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